[이코노믹리뷰=전현수 기자] 청소년 게임 과몰입의 원인이 게임을 하는 행위 자체보다 부모의 과잉 간섭과 기대로 인한 자기통제력 감소 탓이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이는 한국의 입시 문화와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청소년 게임 중독의 문제는 게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닌 환경에 있다는 설명이다. 

건국대학교 정의준 교수는 25일 NDC(넥슨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4년간의 여정-청소년과 게임에 대한 2천가지 기록>이라는 주제로 연단에 섰다. 정의준 교수는 디지털 게임의 인지·심리적 효과와 소셜미디어의 사회·문화적 영향, 문화기술의 활용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선임연구원을 거쳐 미국 미시건주립대에서 텔레커뮤니케이션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바 있다. 

▲ 건국대학교 정의준 교수가 NDC에서 발표를 하고있다. 출처=이코노믹리뷰 전현수 기자

정 교수는 5년간 게임을 즐기는 2000명을 추적 조사했다. 초등학생 651명(32.6%), 중학생 681명(34.1%), 고등학생 668명(33.4%)을 대상으로 2014년부터 2018년까지 해마다 게임 이용 행태를 알아봤다. 

연구는 질의응답을 통한 게임 과몰입 수준을 도출하는 방식이었으며, 도출된 결과를 바탕으로 인과관계 모델을 만들고 각 변수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분석했다. 질문에는 심리적, 게임 관련, 부모 관련, 사회적 환경 관련 등 내용이 포함됐다.

우선 게임 중독 증상을 보이더라도, 이 문제는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것이 확인됐다. 매년 50~60%의 게임 과몰입군 청소년들이 중독 치료 등의 별도 조치가 없었음에도 일반군으로 이동한 것이다. 5년간 해마다 진행한 조사결과 불과 1.4%(11명)의 학생들이 5번 모두 과몰입에 해당됐다. 66.6%(519명)은 단 한 번도 게임 과몰입에 해당되지 않았다. 

▲ 5년간의 조사결과 519명(66.6%)의 청소년이 단 한번도 게임 과몰입에 해당되지 않았고 11명(1.4%)의 학생들이 5번 모두 과몰입에 해당됐다. 출처=정의준 교수 발표 자료 갈무리

연구 대상 청소년들은 게임 과몰입 판단된 횟수가 많을수록 고독감, 공격성, 학업스트레스 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행복, 자기통제, 교사의 지지, 친구의 지지, 사회적 기술 등은 낮았다. 

변수 중 게임 과몰입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건 자기통제와 부모의 양육태도였다. 조사에서 처음에는 과몰입 지수가 높았는데 시간이 갈수록 떨어진 그룹의 변수를 살펴본 결과 부모의 과잉 간섭·기대와 비일관성이 확연히 떨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고독감도 떨어졌다. 학업 스트레스 또한 떨어졌다. 반면 자기통제력은 대체로 증가하는 경향을 보였다. 부모의 간섭과 기대가 낮아질수록 게임 중독 지수가 떨어진 셈이다. 

▲ 시간이 갈수록 과몰입이 자연스럽게 줄어든 그룹(클래스4)에서 부모의 과도한 기대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모습. 출처=정의준 교수 발표 자료 갈무리
▲ 시간이 갈수록 과몰입이 자연스럽게 줄어든 그룹(클래스4)에서 부모의 과도한 참견이 떨어지는 모습. 출처=출처=정의준 교수 발표 자료 갈무리
▲ 시간이 갈수록 과몰입이 자연스럽게 줄어든 그룹(클래스4)에서 학업 스트레스가 급감하는 경향을 보였다. 출처=정의준 교수 발표 자료 갈무리

정의준 교수는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 문제에 부모가 어떤 영향을 주는 것인지 독립적으로 살펴봤다”면서 “그 결과 부모 스스로의 자기통제, 우울, 고독, 스트레스, 공격성 등의 증가는 결국 자녀의 게임 과몰입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말했다. 

연구에 따르면 게임 이용량의 변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비슷한 수준으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용량이 높은 상위 30%, 중간 40%, 하위 30% 간의 간격은 5년 차에 접어들며 1년 차보다 크게 줄었다. 이 기간동안 특별한 의료적 조치는 없었다. 게임 이용량이 많았던 집단에서 자연 치유가 일어났다는 의미다. 

▲ 게임이용량에 따른 집단 구분과 이후 게임 이용량 변화.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럽게 간격이 줄어들었다. 출처=정의준 교수 발표자료 갈무리

현재 전문가들은 게임 중독을 두 가지 관점으로 보고 있다. 병리적 문제이냐, 인지적 문제이냐인데, 쉽게 말하면 게임 자체가 문제다는 관점과 사회·심리적 요인에 따른 영향이 주요하다는 관점이다. 

정의준 교수가 연구한 결과는 게임 중독은 게임 자체의 문제가 아닌 자기통제력과 사회·심리적 요인 때문이라는 주장의 근거를 제시했다. 

해당 조사에 따르면 1차연도부터 5차연도까지 게임 과몰입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게임시간보다는 자기통제력이었다. 이는 회차가 지날수록 더욱 두드러졌으며, 5차연도에서는 자기통제가 주는 영향이 게임시간이 주는 영향보다 압도적으로 높은 게 확인됐다.

그렇다면 자기통제에 영향을 주는 건 무엇일까? 학업스트레스가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 교수는 “학업스트레스는 한국과 중국의 대학입시 문화와 관련이 있다”고 말했다. 양국은 청소년 게임 중독 문제가 가장 많이 다뤄지는 나라다.

학업스트레스에 영향을 주는 요인까지 분석하면, 부모의 감독과 과잉간섭, 과잉기대, 교사의 지지 등이 많은 영향을 주는 것으로 조사결과 나타났다. 즉 이번 연구 결과에 따르면, 청소년 게임 중독의 시작은 게임 그 자체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입시 문화에 따른 부모들의 과잉 기대와 간섭 등이 자녀의 자기통제력을 낮추고 이는 게임이라는 콘텐츠에 과몰입하게 만드는 것이다. 

▲ 인과관계 모형 분석 모델(N=968). 게임과몰입과 자기통제, 학업스트레스, 부모 감독, 과잉간섭, 과잉기대, 교사 지지 등은 연쇄적인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정의준 교수 발표자료 갈무리

정의준 교수는 “혹자는 중독을 일으키는 게임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게임이 없어지더라도 스마트 과몰입, 유튜브 과몰입 등이 나올 것”이라면서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정 교수는 이날 WHO의 게임 질병등재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그는 “WHO는 충분한 연구결과가 없는 상태에서 게임 중독 질병 등재를 주장하고 있다”면서 “그들 스스로의 논리도 조금이라도 문제가 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을 질병으로 등재해 사람들의 관심을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충분한 논리를 가지고 주장하는 게 아닌 경고를 위한 환기일 뿐이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