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영국이 화웨이 5G 장비를 선택적으로 활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핵심 인프라에는 자국 장비를 사용하고 그 외 장비에는 화웨이 장비를 쓰겠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업계에서는 영국이 화웨이 장비 백도어 논란을 일부 의식했다는 점에 무게를 두고 있다. 이미 영국에 깔린 4G 네트워크와의 연동성을 의식해 일부 장비에 화웨이 장비를 활용하지만, 핵심 장비에는 화웨이 배제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주가 발언하고 있다. 출처=화웨이

화웨이 “나 못믿어?”

미중 무역전쟁이 막바지를 향해 달리는 가운데, 미국이 경제전쟁의 승자며 중국은 일대일로의 승자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초반 두 수퍼파워의 틈에서 고통받던 화웨이는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타깃으로 부상했다. 5G로 대표되는 중국의 기술굴기를 대표하는 기업이 바로 화웨이기 때문이다.

초반 화웨이는 몸을 바짝 낮추고 타협을 통한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했다. 그러나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이 체포되고 이란 제재 위반 등의 현안이 불거지는 한편 미 연방수사국의 화웨이 현지 연구실 압수수색까지 벌어지자 반격에 나서기 시작했다.

‘아메리카 퍼스트’ 주의에 입각한 보호 무역주의의 발로로 미국과 미국의 오랜 동맹국인 유럽이 2차 세계대전 후 구축된 전통적인 유대관계를 스스로 흔드는 가운데, 화웨이는 유럽과 손을 잡는 영악한 모습을 연출했다.

유럽과 손잡은 화웨이의 자신감은 최근 궈핑 화웨이 순환회장의 발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는 미국이 화웨이 장비 배제 이유로 꼽는 백도어 논란을 일축하며 “백도어는 자살행위”라는 격한 단어과 함께 “단 한 건의 백도어 사건도 없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 국가안보국이 운영했던 프로젝트 프리즘 도청사건까지 거론하며 미국의 도덕성을 비판하는 한편 “미국의 네트워크는 안전하다고 볼 수 있나”는 말로 반격에 나서기도 했다. 일종의 도발이다.

화웨이는 미국 국방수권법(NDAA) 제 889조가 위헌이라고 미 연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소장에 따르면 국방수권법 제889조는 그 어떤 행정 또는 사법 절차를 거치지 않으며 모든 미 정부기관이 화웨이의 장비 및 서비스를 구매하는 것을 금지했을 뿐 아니라, 화웨이 장비나 서비스를 구매한 제 3자와도 계약 체결이나, 자금 지원 및 대출을 금지했다. 이는 미 헌법 중 사권박탈법 및 적법 절차 조항을 위반하는 것이며 국회가 입법뿐 아니라 법 집행 및 판결까지 수행한 것은 미 헌법 삼권분립 원칙에도 어긋난 처사라는 주장이다.

궈핑 순환회장도 “미 국회는 지금까지 화웨이 제품 제한을 위한 어떠한 근거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화웨이는 어쩔 수 없이 법적조치를 통해 대응하기로 했다”며 “해당 제한 조치는 위헌일 뿐 아니라 공정 경쟁에서 화웨이를 배제함으로써 궁극적으로 미국 소비자들이 손해를 보는 것이다. 화웨이는 법원이 신뢰할 수 있는 판결을 내려 미국 국민과 화웨이 모두에게 혜택을 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송 리우핑 화웨이 수석 부사장 겸 최고법률책임(Chief Legal Officer)도 “제889조는 많은 오류나 입증되지 않고 검증되지 않은 주장에 기반하고 있다. 법안의 전제는 사실이 아니며, 화웨이는 중국 정부 소유가 아닐 뿐더러 정부의 통제도 받지 않으며, 영향을 받지도 않는다. 특히, 화웨이는 탁월한 보안 성과와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 지금까지 그 어떤 보안문제와 관련한 증거가 제시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존 서포크(John Suffolk) 화웨이 글로벌 사이버 보안 겸 프라이버시 총괄 책임(GSPO)도 “화웨이는 전세계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투명하며 철저하게 조사를 받는 회사"라고 강조했다.

화웨이가 강하게 나올 수 있는 배경 중 하나가 바로 유럽과의 연합, 특히 영국과의 협력이다. 브렉시트 정국에서 극도의 혼란상태가 이어지는 영국 입장에서 막대한 자본을 가진 중국 화웨이와의 협력은 뿌리칠 수 없다는 평가다. 이에 영국은 일찍부터 내외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화웨이 장비 도입을 시사한 바 있다. 그리고 영국은 24일(현지시간) 테레사 메이 총리 주재로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어 화웨이 장비 일부 도입을 결정했다. 자세한 가이드 라인은 5월 나올 것으로 보인다.

▲ 궈 핑 화웨이 순환 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출처=화웨이

영국의 아슬아슬한 줄타기?

영국이 화웨이 장비 일부를 네트워크에 도입하기로 결정했지만, 화웨이 입장에서는 ‘모호한 반응’이라는 말이 나온다. 미국의 주요 동맹국인 ‘파이브 아이즈’ 중 하나인 영국이 미국이 반대하는 화웨이 장비 도입을 결정한 사실은 그 자체로 의미있으나 실상은 아슬아슬한 줄타기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영국이 화웨이 장비를 도입하기로 결정한 지점은 Access network다. 네트워크는 크게 core network와 Access network로 나뉘며 영국은 Access network에만 화웨이 장비를 도입하기로 결정한 셈이다. 일부 외신들이 Non-core network라고 부르는 지점이다.

core network와 Access network 중 핵심은 전자다. 영국이 미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보여준 ‘화웨이 사랑’을 고려하면 다소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화웨이가 영국의 선택을 두고 “영국이 지속적으로 증거에 기반한 접근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매우 기쁘게 생각하며 앞으로도 영국 정부와 산업계와 협력을 지속해 나갈 예정”이라고 반색하는 한편, “영국 정부가 화웨이의 Core Network 장비를 금지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으나, 업계에서는 영국이 미국과 중국 모두를 충족시키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는 쪽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업계에서는 영국 정부가 이미 국토에 4G 네트워크 망을 보유한데다 산업계를 중심으로 저렴한 화웨이 장비를 허용해달라는 요청이 나오자 이를 뿌리치기 어려웠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결국 핵심 네트워크에는 백도어 논란이 여전히 나오는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그 외 네트워크에 화웨이 장비를 사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화웨이가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통해 균형을 잡았으나, 향후 상황은 언제든 돌변할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미국 국가안보위원회의 수석 사이버 안보 담당 고문인 롭 조이스는 영국의 화웨이 장비 선택 도입을 두고 “화웨이가 서방의 안보에 위협이 되고 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면서 “미국은 영국처럼 화웨이에 장전된 총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오주의자로 잘 알려진 런정페이 창업주가 이끄는 화웨이를 둘러싼 백도어 논란이 여전히 여진을 일으키는 가운데, 미국의 압박이 거세질 수 있다는 신호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