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현수 기자] 마비노기의 아버지로 불리는 넥슨코리아 데브캣 스튜디오 김동건 총괄 프로듀서(PD)가 마비노기의 옛이야기를 꺼냈다. 게임의 미래를 위해서는 게임의 과거를 이야기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김동건 프로듀서는 24일 오후 판교에서 열린 NDC(넥슨 개발자 컨퍼런스)에서 <할머니가 들려주신 마비노기 개발 전설>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했다. 세션의 제목은 마비노기 테마곡 <어릴적 할머니가 전해주신 옛 전설>에서 따왔다.

▲ 넥슨코리아 김동건 총괄 PD가 발표를 진행하고 있다. 출처=이코노믹리뷰 전현수 기자

이날 김 PD는 “요즘 옛날 게임을 수집하는 취미를 즐기고 있다”며 운을 뗐다. 이베이 등 인터넷을 통해 출시된 지 30년도 넘은 게임들을 수집하고 즐긴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게임들 중 소스가 모두 공개된 경우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한국 게임에는 이런 자료가 부족하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우리나라도 패키지 게임을 만들던 시절의 자료는 남은 게 거의 없고, 온라인 게임 위주로 성장한 국내 게임 시장 특성상 게임의 서비스가 중지되면 더 이상 즐길 수 없이 완전히 사라지는 게 현실이다. 모바일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마비노기가 더 유실되기 전에 옛날이야기를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면서 “앞으로 다른 게임들도 옛날이야기를 많이 해주길 기대한다”고 연단에 선 이유를 설명했다. 

김동건 PD는 고등학교 시절 재미있다는 이유로 게임 개발을 시작했다. 대학교에 입학 후 ‘둠2’를 플레이하며 네트워크 게임에 눈을 떴으며, 이후 온라인 게임 개발에 욕심이 생겨 2000년 1월 넥슨에 입사했다. 당시는 인터넷의 태동기였으며, 일본에서 넘어온 콘솔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넥슨에서 마비노기 기획서를 제안했고, 기획서가 통과돼 데브캣 스튜디오가 만들어졌다. 개발 과정에서 3D 그래픽 구현, 개발 DB 도입, 카툰렌더링, 자체 개발 엔진 사용 등 다양한 불안 요소가 있었지만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해결해나갔다. 당시엔 넥슨에도 관련한 개발 데이터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새로운 길을 개척해나가다시피 개발을 이어갔다.

게임플레이 요소는 명작 MMORPG로 꼽히는 ‘울티마 온라인’을 해본 경험을 적극 반영했다. 이를 통해 김동건 PD는 나름의 법칙이 있는 실제로 존재하는 것 같은 세계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다만 김 PD는 “울티마는 다소 불친절한 게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마비노기를 만들 때 ‘다정한 게임을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 이를 위해 탄생한 요소들이 빵을 챙겨주는 NPC, 캠프파이어, 캠프쉐어링 등이다. 유명 NPC ‘나오’도 이런 맥락에서 등장했으며, 다정한 게임을 만들자는 모토는 마비노기의 스토리, 작곡 시스템 등 콘텐츠에 영향을 줬다. 

김동건 PD는 개발 과정에서 넥슨의 전체 사원들에게 ‘마비일보’라는 신문 형식으로 회사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이메일을 보내곤 했다고 회상했다. 그는 “지금은 상상도 못 할 일이지만 그땐 그런 식으로 우리의 개발이 잘되고 있음을 알렸다”고 말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유저들에게 마비노기 소식을 전달하는 소식지 ‘에린워커’가 탄생하기도 했다. 

마비노기 출시 과정이 순탄하진 않았다. 우선 마비노기의 클로즈베타 당일 문제가 생겼다. 게임 내에서 전투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김 PD는 “당시 새벽까지 점검을 통해 문제를 고쳤고 유저들에게 사과를 했는데, 유저들이 보내준 응원에 큰 힘을 얻고 서비스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출시 이후에는 육체적 피로가 극심해졌다. 김 PD는 “팀원들이 주7일 회사에서 살다시피 하며 야근과 밤샘을 반복했고 서버가 다운되면 새벽에도 달려나갔다”면서 “팀 구성원들이 한 명씩 번아웃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게임 운영에 대한 유저들의 지적도 이어졌다. 이런 맥락은 그에게 ‘세계를 만드는 것과 그것을 유지하는 건 다르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전환점이 됐다. 그 뒤로 마비노기는 넥슨 라이브 본부로 이전됐고 김동건 PD는 디렉터에서 프로듀서가 됐다. 

김동건 PD는 현재 데브캣 스튜디오에서 마비노기의 2번째 도전을 이끌고 있다. ‘마비노기 모바일’을 개발하고 있다. 그는 “마비노기 모바일은 PC 마비노기의 충실한 복각이 목적은 아니다”면서 “과거의 마비노기가 현재까지 이어지듯 마비노기 모바일이 미래로 연결되기를 바란다”고 언급했다. 

김동건 PD는 마지막으로 한국 게임 업계에서 종종 지적되는 화두에 나름의 답을 내놓았다. 그는 “한국 게임들이 발전이 없다는 말이 나오는 건 과거가 너무 빨리 유실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면서 “개발자들의 기억, 경험 속에 있는 것들을 기록하고 나누는 것이 앞으로 더 나은 게임을 만드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과거의 게임들이 각각의 점으로 존재하고 있고, 그 점들이 각자 사라져가고 있는데, 우리는 각각의 점을 이어서 미래의 게임으로 선을 이어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