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삼성전자가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에 133조원을 투자하는 한편 1만5000명의 전문인력 채용을 골자로 하는 삼성 반도체 비전 2030을 24일 선언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업황악화의 길을 걷는 가운데, 삼성전자의 플랜B가 빠르게 가동되는 분위기다.

▲ 삼성전자 클린룸이 보인다. 출처=삼성전자

어려운 메모리 시장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수퍼 사이클이 종료된 가운데, 업황 악화에 대한 우려는 커지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 종료는 세계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도 주목하고 있다. 협회는 시장 전망 보고서를 통해 올해 기준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장비 지출액이 총 557억8000만달러를 기록, 지난해와 비교해 약 7.8% 줄어들 것으로 봤다. 불과 4개월 전 올해 글로벌 반도체 기업의 장비 지출액이 지난해와 비교해 7.5%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전망이다.

국제무역연구원이 발간한 ‘2018년 수출입 평가 및 2019년 전망’ 보고서도 비슷한 주장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반도체 수출액은 지난해 초부터 10월까지 36%를 넘겼으나 올해는 이러한 수치를 장담하기 어렵다. 2017년 57.4%를 기록한 국내 반도체 수출증가율은 올해 5.0%까지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D램과 낸드플래시 가격 모두 하락 일변도다.

삼성전자 반도체 위기론이 커지는 이유다. 시장조사업체 디램익스체인지는 2018년 기준 글로벌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약 49조1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해 점유율 43.9%로 1위, SK하이닉스가 약 33조1000억원을 기록해 점유율 29.5%로 2위라고 발표했으나, 업황 악화에 따른 실적 하락을 경고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의 올해 1분기 잠정실적은 매출 52조원, 영업익 6조2000억원에 불과하다. 영업익은 전년 동기 15조6400억원과 비교해 반토막이 났다.

메모리 반도체 업황 악화가 이어지는 가운데 국내 수출 지수도 하락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2일 국내 정보통신 기술 수출이 5개월 연속 하락세를 기록해 3월 기준 ICT 수출이 158억5000만달러, 수입은 91억9000만달러, 수지는 66억5000만달러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메모리 반도체 업황 악화에 따른 ICT 수출 부진이 직격탄을 날렸다는 해석이다.

삼성전자는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강자로 군림하고 있으나, 업황 악화에 따른 실적 저하는 피할 수 없는 수순이 되고 있다. 당장 메모리 반도체 가격 하락과 수요와 공급 불일치 현상이 장기화되는 장면도 연출된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 등에 따르면 새롭게 가동되는 300mm 웨어퍼팹만 모두 9곳이며 이는 2007년 12곳에 이어 두 번째로 최대 규모다. 올해 인텔에 전체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왕좌를 내어줄 가능성도 높다.

▲ 화성 캠퍼스 EUV 라인이 보인다. 출처=삼성전자

삼성전자의 플랜B

메모리 반도체 중심의 삼성전자 포트폴리오가 업황 악화의 직격탄을 맞은 가운데, 삼성전자는 시스템 반도체 역량을 키워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하고 나섰다. 그 중심에 파운드리가 있다.

삼성전자는 2005년 파운드리 사업을 처음 시작해 2009년 로직 공정 연구소를 신설하고 2012년 미국 오스틴 S2 라인 가동으로 파운드리 생산을 크게 확대했다. 2015년에는 처음으로 14나노 핀펫, 2016년에는 10나노 핀펫으로 진격했고 2017년 10나노를 거쳐 지난해 2월 7나노 공정시대를 선언했다. 파운드리에서 충분한 강점이 있고, 압도적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메모리 반도체에 비해 성장의 여백도 크다. 삼성전자 반도체 전략에서 충분히 플랜B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성과도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50%에 가까운 점유율을 가진 대만 TSMC를 맹추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상반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약 8%의 점유율을 유지했으나 최근 이를 20%까지 끌어올렸다. 매물로 나온 글로벌파운드리가 7나노 공정을 포기한 상태에서 공급선 관리에 충실히 나설 경우 TSMC에 도전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감지된다.

초기술 격차도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달 7나노 제품을 출하하고 올해 내에 양산을 목표로 6나노 제품 설계를 완료했다. 초미세 공정 포트폴리오 확대를 통해 파운드리 기술 리더십를 주도한다는 계획이다.

5나노 로드맵도 빠르게 나왔다. 삼성전자는 5나노를 두고 설계 최적화를 통해 기존 7나노 공정 대비 로직 면적을 25% 줄일 수 있으며, 20% 향상된 전력 효율 또는 10% 향상된 성능을 제공한다고 설명했다. 7나노 공정에 적용된 설계 자산(IP)을 활용할 수 있어 5나노와의 호환성도 높은 편이다. 삼성전자의 7나노를 활용했다면, 자연스럽게 5나노를 선택할 수 있다는 뜻이다.

삼성전자는 최신 파운드리 생산시설인 화성캠퍼스 S3 라인에서 EUV 기반 최첨단 공정 제품을 생산하고 있으며, 현재 건설 중인 화성캠퍼스 EUV 전용 라인을 2020년부터 본격 가동해 고객과 시장의 요구에 대응해 나갈 계획이다.

삼성전자가 삼성 반도체 비전 2030을 통해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는 한편, 국내 팹리스 업계와 공동전선을 형성한 후 정부의 강력한 지원을 중심으로 글로벌 무대에 나설 경우 시스템 반도체 전반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미국의 글로벌 파운드리가 7나노 공정을 포기한 상태에서 삼성전자가 추후 강력한 인수합병 전략까지 마련한다면, 새로운 전기가 펼쳐질 수 있다는 평가도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