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5년 세계적인 식품업체 하인즈의 경영진은 솔깃한 보고를 하나 받았다. 틀니를 착용한 노인들이 거버 유아식을 구입해 먹는다는 것이다. 당시 2300만명에 이르는 60세 이상 노인시장을 겨냥할 신제품을 궁리하고 있던 하인즈 경영진은 무릎을 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사주간 타임지에 이런 기사가 나왔다. “지난주 하인즈는 노인을 위한 통조림 식품(으깨 놓은 영양식)을 새롭게 선보인다고 발표했다. (중략) 아기는 대략 2년동안 이유식을 먹지만 노인은 15년 이상 이 신제품을 소비하리라고 본다.”

그런데, 대대적 홍보와 언론의 장밋빛 전망을 비웃듯 슈퍼마켓 선반에 올려진 하인즈의 노인식 통조림은 철저히 외면된 채 먼지만 쌓여갔다. 이유는 단순했다. 씹는 것이 불편한 노인들은 슈퍼에서 거버 이유식을 살 때 “손주 먹이려고 산다”라고 둘러댈 수가 있었다. 하지만 하인즈 노인식은 그럴 수가 없었다. 더구나 노인식은 모양도 역겨웠고, 맛도 없었다. 노인의 자존심을 외면한 노인식은 곧 생산 중단됐다.

1974년 노인을 위한 응급용 목걸이가 출시됐다. 목걸이에 달린 펜던트의 비상 버튼을 누르면 응급 구조대가 호출되는 제품이다. 노인이 개인응급응답시스템(PERS)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이런 장비를 구매해야 한다. 하지만 미국이나 일본에서도 가입자가 거의 없었다.
1974년 거버도 실패를 피할 수 없었다. 거버는 하인즈의 실패를 보고는 ‘노인’이라는 단어를 일부러 피했다. 제품명도 ‘거버 싱글즈(Gerber Singles)’로 정해 독신자들과 함께 노인을 노렸다.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알고 보니, 노인들은 죽음이 임박했다는 표시를 목에 족쇄처럼 걸고 다니기가 싫었던 것이다. 이후 남의 눈에 잘 띄지 않는 팔찌형으로 바꿨지만 언제든 응급콜이 가능한 핸드폰이 등장하면서 그 마저도 소용없게 됐다. 노인의 필요성만을 따진 이 제품도 끝내 노인에게 선택되지 못했다.

<노인을 위한 시장은 없다>(부키 펴냄)에 따르면, 노인 대상 상품이 실패하는 것은 노인 개념이 잘못된 때문이다. 기업들은 노인을 디자인이나 다른 요소는 따질 겨를이 없는 중환자와 동일시한다. 그러나, 노인도 젊은이와 마찬가지로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키고 싶어 한다. 시니어 마케팅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노인의 관점에 서서 욕구를 읽어야 한다.

퓨리서치센터 조사(2009년)에 의하면, 75세 이상 미국인의 35%만이 자신이 늙었다고 여긴다. 다수의 노인은 자신이 노인이 아니라고 여긴다는 얘기다. 이들에게 '노인전용'이라고 적힌 제품을 팔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