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계는 어떻게 하면 게임을 이기는지, 또 어떻게 하면 인간이 내린 판단과 일치하는 판단을 내리는 지를 배우는데 점점 더 능숙해졌지만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는 능력은 4살짜리 아이만 못하다.    출처= TOMASZ WALENTA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본 기사는 버클리대학교의 심리학자 엘리슨 고프닉(Alison Gopnik)이 월스트리트저널(WSJ)에 기고한 글을 전면 게재한 것임.

모두가 인공지능(AI)에 대해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AI가 말 그대로 불멸이나 세계의 종말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두 가지 모두 적어도 가까운 장래에 도래할 가능성이 있어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AI가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고, 인간 지능을 가진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느냐에 대한 논쟁은 여전히 그치지 않는다.

존 브록만(John Brockman)이 편집한 <가능한 생각들: AI를 바라보는 25가지 방법>(Possible Minds: 25 Ways of Looking AI)이라는 새 책에는 AI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미래에 무엇을 의미할 수 있는지에 대한 다양한 큰 그림의 에세이가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의 필진 25명 중에는, AI가 지시하는(AI-directed) 새로운 종류의 로봇을 설계한 앤카 드라간 (Anca Dragan), 로봇 청소기 롬바(Roomba)를 발명한 로드니 브룩스(Rodney Brooks) 같은 컴퓨터 과학의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다니엘 데넷(Daniel Dennett) 같은 철학자, 스티븐 핑커 (Steven Pinker) 같은 심리학자, 그리고 유명한 큐레이터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Hans Ulrich Obrist) 같은 미술 전문가들도 포함되어 있다.

나도 왜 AI가 4살짜리 아이도 쉽게 숙달할 수 있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지에 대해 한 장을 썼다. 구글 딥마인드(Deep Mind)의 알파 제로(Alpha Zero)는 컴퓨터 체스에서 고수들을 모두 격파했지만, 내 3살짜리 손자가 하는 게임 버전 아티 체스(Attie Chess)에서는 그 실력이 형편없다.

아티 체스에서는 모든 장기말을 휴지통에 몰아넣고, 하나씩 꺼내 보드에 올려놓은 다음 모두 다시 휴지통에 넣어 버린다(바둑판의 ‘알까기’ 같은 게임과 유사하다). 그런데 이런 단순한 신체 작업이 가장 정교한 로봇에게도 놀랄 만큼 도전적이라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이 책의 모든 장을 하나씩 읽어보면서 인간의 지능에는 인공지능과는 다른 보다 심오한 방법이 있으며, 인공지능이 애티 체스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중요한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최근 AI가 발전한 이유 중 하나는 인간은 AI 개발에 특정 목적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체스 게임에서 이기거나 인터넷에서 고양이와 개의 사진을 구분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때로는 어느 예술 작품이 박물관에 소장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법정에 선 피고가 징역형을 받을 만한 죄를 지었는지 판단하는 것과 같은 더 중요한 것일 수도 있다.

인공지능을 개발하는 기본 기술은 컴퓨터에게 수백만개의 게임, 이미지 또는 이전 판단의 사례를 입력하고 그에 대한 피드백을 제공하는 것이다. 어느 동작이 높은 점수를 받았는가? 어떤 그림들에 대해 사람들이 개라고 인정했는가? 큐레이터나 판사가 특정 사건에서 어떻게 결정했는가? 이런 사례들을 무수히 입력하면 컴퓨터는 머신러닝이라는 학습 기법을 사용해 입력한 사례와 동일한 목표를 달성하는 방법을 알아낼 수 있다.

▲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뿐만 아니라 그것이 진정으로 원할 만한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체는 우리 인간뿐이다.   출처= Towards Data Science

사실, 기계는 어떻게 하면 게임을 이기는지, 또 어떻게 하면 인간이 내린 판단과 일치하는 판단을 내리는 지를 배우는데 점점 더 능숙해졌다. 심지어 그들은 방대한 데이터에서 종종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미묘한 통계적 단서까지 감지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원하면 언제나 자신들의 목표를 바꾸기로 결정할 수 있다. 위대한 판사는 (과거에는 합법적으로 여겨졌던 노예제도가 불법화되어야 한다거나 과거에는 불법시 여겨졌던 동성애를 더 이상 불법화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할 수 있다. 위대한 큐레이터는 입체파나 추상적 표현주의 같은 전례 없는 새로운 종류의 예술에 대해 새로운 판단 사례를 만들 수 있다. 그런 것들은 과거 그 어떤 것과도 매우 다르기 때문이다.

우리는 새로운 게임을 발명하고 새로운 방식으로 게임을 한다. 실제로 아이들이 노는 것을 보면, 그들은 스스로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는 연습을 한다. 심지어 아디 체스에서처럼, 어른들의 관점에서 보면, 그러한 목표들은 꽤 바보처럼 보일 때도 말이다.

사실, 새로운 세대들이 등장할 때마다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는 것은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들은 새로운 게임 방식, 새로운 카테고리, 새로운 판단 기준을 만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된 일인지 우리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세대가 바뀌어도 단순한 상대주의에 빠지지는 않는다. 인간은 (비록 세대가 바뀌면서 가치관도 바뀌지만) AI가 할 수 없는 방식으로 무엇이 가치가 있는지를 결정한다.

모든 새로운 기술은 예상치 못한 위험과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한 기술들을 규제하고 통제하는 것은 각 세대의 가장 큰 과제 중 하나이지만, 그것이 성공할 것이라는 보증은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인공지능보다는 인간의 타고난 어리석음에 대해 더 많은 두려움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적어도 지금까지는, 우리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 뿐만 아니라 그것이 진정으로 원할 만한 것인지를 판단할 수 있는 유일한 생물체는 우리 인간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