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협상의 승리를 장담하는 트럼프 대통령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외교적 수사 같은 것을 사용하지 않는다. 언제나 직설적이고, 대놓고 노골적이다. 주변국이나, 상대국 눈치 같은 것은 아예 볼 생각이 없다.

세계의 이목이 주목된 미중 무역협상과 관련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중국과의 협상이 진행되는 내내, 트럼프 대통령은 하고 싶은 말을 전부 다 했다. 어쩌면 그것이 트럼프 대통령 식 외교 전략일 수도 있겠지만, 중국으로서는 불쾌하기 짝이 없을 것이다.

2019년 4월 15일, 미네소타주 번스빌에서 한 발언도 그런 경우이다. 경제 및 세금 개혁을 주제로 한 비즈니스 라운드 테이블에 참석한 트럼프 대통령은 미중 무역협상과 관련해서 거침없이 속내를 털어놓았다. “우리는 어느 쪽으로든 승리할 것이다.”

협상은 항상 실무자 선에서 타협이 이루어지고, 정상들은 보통 타협된 내용에 대해 서명을 하는 방식으로 협상을 마무리 짓는다. 그렇다면 실무진에 의해 막바지 타협이 진행 중인 미중 무역협상에 관해 트럼프 대통령이 이렇게 무지막지한 단정적 선포를 하는 것은 도대체 어떤 의도가 있는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선제압 자신만만.

로이터 통신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는 협상을 성사시켜 이기거나 아니면 협상을 성사시키지 않음으로써 이길 것”이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원하는 조건이 아니면, 협상을 틀겠다는 뜻이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이 들으라고 이 말을 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담력이 센 것일까, 중국을 우습게 여기는 것일까? 역대 미국 대통령 중에 이렇게 노골적으로 협상국에 대해 직설적이고, 노골적인 사람은 없었다. 어쩌면 앞으로도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성격의 미국 대통령은 출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세계 역사를 바꾼 미국 대통령들의 독트린

독트린(doctrine)은 종교의 교리나 교의(敎義)를 뜻하는 말이다. 하지만 학문적 용어로 사용될 때에는 주의나, 이념, 혹은 신조를 나타내는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그리고 국제정치적 관점에서 사용될 때에는 강대국 외교 노선의 기본 지침으로 쓰인다.

제45대 트럼프 대통령에 이를 때까지, 주목할 독트린을 발표한 대통령이 몇 있다.

최초로 미국의 외교 노선을 밝힌 사람은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이다. 1823년 12월, 먼로 대통령은 의회 연설을 통해 먼로 독트린을 피력했다. 먼론 독트린은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미국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선언이었다. 미국과 유럽은 상호 불간섭 원칙을 가지며, 유럽 제국이 라틴 아메리카에서 식민지 건설을 막는다는 내용이었다.

1947년 3월 선포한 제33대 해리 트루먼의 트루먼 독트린도 유명하다. 트루먼 독트린은 공산주의 세력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서 자유와 독립 유지에 노력하며, 소수자의 정부지배를 거부하는 의사를 가진 여러 나라에 대하여 군사적·경제적 원조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트로먼 독트린을 근거로 해서, 미국은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6.25 한국전쟁에 유엔(UN, United Nations)군의 일원으로 남한의 방어를 위해 참전했다.

2001년 9월 11일, 항공기 테러 사건이 발생하자, 테러와의 전쟁 수행을 위한 원칙을 담은 제43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천명한 부시 독트린도 주목할 만하다. 부시 독트린은 테러리스트들을 지원하는 국가나 단체를 미 테러작전의 잠재적 공격대상으로 삼는다는 것이었는데, 테러 배후 인물로 지목된 빈 라덴에게 은신처를 제공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경고의 의미도 포함하고 있었다. 부시 독트린은 의회 연설을 통해서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2002년 9월 발표된 국가안보전략 문서로 공식화되었다.

 

1919년 윌슨 독트린과 1969년 닉슨 독트린

미국 대통령의 외교 노선의 기본 지침, 즉 독트린 가운데 한국에 영향을 끼친 것이 3개 있다. 공교롭게도 1919년부터 50년 간격으로 3차례 발표되었다. 이 3번의 독트린은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한반도 주변에 영향을 끼치면서, 한국을 변화시켜왔다.

1914년 7월 28일 오스트리아가 세르비아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면서 시작된 제1차 세계대전. 4년간 지속된 전쟁으로 인해, 3,200만 명의 군인 사상자와 1,900만 명의 민간인 사상자가 발생했다. 그리고 1918년 11월 11일 독일의 항복으로 끝이 났다.

1919년, 제1차 세계대전의 뒤처리를 위해 열린 파리 강화회의. 미국 제28대 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했다. 한 민족이 그들 국가의 독립 문제를 스스로 결정짓게 하자는 원칙이었다. 이것은 식민지 상태에서 해방과 독립을 열망하는 약소민족들에게 큰 희망을 안겨 주었고, 한국의 3·1운동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1919년 3.1운동을 계기로, 독립운동 세력은 4월 11일 상하이에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그 후 항저우, 자싱, 난징, 창사, 광저우, 충칭 등 일제의 감시를 피해 6군데에 임시정부를 세웠다. 그리고 1945년 8월 15일 광복의 순간까지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그리고 1969년 7월 26일, 미국의 37대 대통령 리처드 닉슨이 밝힌 닉슨 독트린은 한반도의 위기감을 고조시켰다. 베트남 전쟁의 수렁에 빠진 린드 존슨 대통령의 뒤를 이은 닉슨 대통령은 태평양 국가들의 군사적, 정치적 과잉개입을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아시아 각국의 자주적 행동을 측면지원 한다는 일종의 고립주의였다.

닉슨 독트린은 이후 1971년 4월 10일 미국 탁구 선수단이 베이징을 방문하는 핑퐁외교로 이어졌다. 그리고 1971년 6월 10일 닉슨 미국 대통령은 20년 넘게 계속되어 오던 중국에 대한 무역금지 조치를 해제하면서 대 중국 유화 정책을 시도했다. 이로 인해 중국은 개혁개방을 추진하게 되었고, 1992년 8월 24일 한국은 중국과 수교했다.

 

2019년 트럼프 독트린과 예상 못한 역설적 상황

2019년 4월 17일, 미국의 블룸버그 통신, 중국의 신화통신은 미중 무역협상 타결이 임박했다는 보도를 내보내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현재 비디오 화상회의를 통해서 마지막 조율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전체적인 내용으로 보면, 중국이 양보하는 형태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는 어느 쪽으로든 승리할 것이다.”라고 밝힌 대로이다. 문제는 이번 협상 과정에서 실추된 양국이 어떻게 명예를 찾아가느냐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협상 상대 중국에 대해 마음대로 발언을 쏟아냈지만, 중국은 이렇다 할 자기표현이 없었다. 따라서 중국의 속내는 알 수 없지만, 미국 일방주의에 끌려 다닌 셈이다.

그런데 2019년 4월 16일,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예상하지 못한 보도를 내보냈다. 미중 무역 전쟁이 끝날 기미를 보이자, 중국-인도 무역 전쟁이 시작될 조짐이 보인다고 보도한 것이다. 보도는 심각한 중국-인도 무역 전쟁 대신, 중국 경제 의존도가 높은 인도가 중국의 이해를 구하는 상황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인도 무역 전쟁의 위기는 주변국으로 이어질 것이다. 미국에게 당했듯이, 중국 역시 무역 상대국에게 미국식 일방주의를 전개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전개되면, 한국, 말레이시아, 태국, 필리핀, 타이완 등 중국 무역 상대국들은 중국 경제에 꼼짝 못하고 예속된다. 트럼프 독트린은 중국을 구석으로 몰아놓고 원하는 것을 충분히 얻겠지만, 아시아 지역에서 중국 영향력 극대화하는 의외의 결과를 불러오는 것이다.

1919년 윌슨 독트린과 1969년 닉슨 독트린, 2019년의 트럼프 독트린. 복잡한 상황을 한국으로만 집중하면, 지난 100년간, 50년 간격을 두고 3명의 미국 대통령이 발표한 독트린은 한국을 미국보다 중국의 영향력 아래 점점 더 예속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그런데 여기에 한 술 더 떠 북한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노력까지 결실을 맺으면, 한국은 시진핑 주석이 추진하는 일대일로의 출발점이 되는 상황이다. 남북통행이 이뤄져 중국에 바로 연결되면, 한중관계의 깊이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