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애플과 퀄컴이 벌이던 세기의 특허 대결이 극적인 합의를 이뤘다. 두 회사는 특허 라이선스 문제로 지난 2년간 법적공방을 벌였으며, 이 과정에서 상대의 제품에 대한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까지 난무하는 신경전까지 벌인 바 있다.

17일 더버지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애플과 퀄컴은 두 회사의 특허 분쟁과 관련해 모든 소송을 중단하고 전격적인 합의를 이뤘다. 애플이 퀄컴에 대해 일회성으로 특허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는 한편 2년 연장 옵션의 6년 단위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알려졌다. 합의는 4월1일 기준이다.

업계에서는 두 회사가 극적인 합의를 이뤘으나 사실상 퀄컴의 승리로 보고 있다. 5G 정국에서 퀄컴의 모뎀칩을 수급받지 못하는 애플의 조급함이 결국 퀄컴의 특허 라이선스를 인정하게 됐다는 분석이다.

▲ 퀄컴이 인텔과 손을 잡은 애플과의 분쟁에서 사실상 승리했다는 평가다. 사진=이코노믹리뷰 최진홍 기자

퀄컴의 승리?

두 회사의 분쟁은 2년 전 애플의 문제 제기에서 시작됐다. 통신 네트워크 시장에서 퀄컴이 시장 지배자적 위치를 활용, 제조사들에게 일종의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왔기 때문이다. 퀄컴은 막대한 연구개발 비용을 투자해 라이선스 기반 비즈니스를 추구하며 애플과 협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특허 라이선스 비용을 지나치게 높게 책정한다는 것이 애플의 불만이다.

두 회사의 충돌은 초반 애플의 공세로 설명된다. 애플은 자기와 비슷한 상황에 처한 퀄컴의 제조사 파트너들을 규합해 일종의 여론몰이에 나섰고, 이 과정에서 국내 공정거래위원회가 퀄컴에 시장 독과점을 두고 과징금을 부과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후 애플은 모뎀칩 수급에 있어 퀄컴과 인연을 끊고 인피니온을 인수한 인텔과 협력, 새로운 전선을 구축하고 나섰다. 인피니온은 초기 애플 아이폰에 모뎀칩을 제공하던 곳이다.

퀄컴도 물러서지 않았다. 특허 라이선스 비즈니스의 특성을 강조하며 적극적인 공세에 나섰다. 이 과정에서 소프트웨어 특허계약 위반 논란도 불거졌다. 퀄컴은 2017년 7월 애플을 상대로 소프트웨어 특허계약을 위반했다고 주장하는 한편 기밀자료를 빼갔다고 주장했다.

두 회사는 이후 몇 차례 세계를 무대로 한 공방전을 벌이며 올해 3월 진검승부에 돌입했다. 라이선스 특허 공방의 전초전이 법원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기 때문이다. 전초전의 승자는 퀄컴으로 결론났다. 주요 외신에 따르면 3월 15일 미국 샌디에이고 연방지방법원 배심원단은 2주간의 심리를 마친 후 “애플이 퀄컴의 특허 3건을 침해한 사실이 인정된다”면서 “3100만달러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관건은 스마트폰을 켜면 인터넷에 바로 연결되는 기술, 그래픽 처리 및 배터리 수명 보장 기술, 앱과 데이터의 호환 등이다. 퀄컴은 애플이 자사 특허권을 침해해 해당 기술들을 활용한 아이폰을 판매했으며, 2017년 중반부터 2018년 가을까지 판매된 아이폰 한 대당 1.41달러의 배상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리고 이번 판결로 퀄컴의 주장은 대부분 받아들여졌다.

전초전이 퀄컴의 승리로 종료된 후 4월 본게임이 시작되는 가운데, 두 회사는 결국 극적인 합의에 이르렀다. 업계에서는 이를 특허 라이선스의 가치를 인정받은 퀄컴의 승리로 해석하고 있다.

5G 시대를 맞아 퀄컴은 현재 전방위적 비즈니스 생태계 확장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부터 중국 제조사들과 협력해 플랫폼 활성화에 나서는 한편, 5G 정국에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퀄컴이 이미 5G 2세대 모뎀칩을 발표한 대목이 대표적이다. 스냅드래곤X55는 아직 샘플링 단계지만 다운로드 속도가 7Gbps에 이른다. 5G 네트워크까지 모든 장치에서 실행되며 최대 2.5 Gbps의 속도를 낼 수 있는 카테고리 22 LTE를 지원한다. 퀄컴은 스냅드래곤 X55와 함께 새로운 5G mmWave 안테나 모듈도 출시하며 속도전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애플은 5G 정국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퀄컴과의 분쟁으로 5G 모뎀칩을 구하지 못하는 가운데 인텔의 5G 모뎀칩 XMW 8160은 빨라야 2020년 물량이 풀리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애플은 2월 조직개편을 통해 자체 5G 모뎀칩 제작을 타진했으나 별 소득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애플이 삼성전자에 5G 모뎀칩 조달을 조심스레 타진했으나 퇴짜를 맞았다는 말도 나온다. 폰아레나는 지난 4일 애플이 삼성전자에 5G 모뎀칩 공급을 요청했으나 물량 부족을 이유로 거절당했다고 보도했다. 삼성전자는 갤럭시S10 5G 등 자체 물량에 5G 모뎀을 탑재해야 하기 때문에 애플에 추가 물량을 공급할 수 없는 상태기 때문이다.

▲ 삼성전자의 갤럭시S10 5G가 순항하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중국의 화웨이가 5G 정국에서 느리게 가는 애플의 구세주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주는 15일(현지시간) 미국 CNBC 인터뷰에서 애플에 자사의 5G 모뎀칩을 판매할 수 있다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는 애플에 열려있다"면서 다소 적극적인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다.

화웨이는 5G 정국에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기린980이라는 모바일 AP와 더불어 5G 모뎀칩 바롱5G01, 바롱 5000을 가지고 있다. 애플이 모바일 AP인 기린980을 원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5G 모뎀칩인 바롱 5000은 애플 입장에서 강력하게 원할 수 있다는 말이 나왔다. 다만 화웨이가 미중 무역전쟁의 혼란속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견제를 받고있기 때문에, 애플이 화웨이의 손을 잡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중론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애플은 퀄컴과 다시 손을 잡으며 간신히 전열을 수습하는 모양새다.

▲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주는 최근 애플에 5G 모뎀칩을 제공할 용의가 있음을 밝혔다. 출처=화웨이

애플, 예상보다 빠르게 5G 데뷔하나

현재 애플 아이폰은 위기에 직면했다. 특유의 고가 정책으로 매출을 유지하고 있으나 지속적인 판매량 하락은 큰 고민이다. 최근 애플 TV 플러스 런칭 등으로 콘텐츠 시장에 큰 관심을 두는 이유다.

아이폰의 최신 트렌드 논란도 문제다. 현재 프리미엄 스마트폰 업계는 6개 카메라를 탑재하는 수준까지 갔으나 아직 애플은 듀얼 카메라에 머물러 있다. 삼성전자와 화웨이 등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의 강자들이 폴더블 스마트폰을 공개하며 하드웨어 폼팩터 경쟁을 선도하고 있으나, 이 대목에서도 애플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다.

퀄컴과의 분쟁으로 5G 정국에서도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 1위 사업자인 삼성전자가 지난 5일 갤럭시S10 5G 출시에 성공하며 기선 제압에 들어가자 애플은 퀄컴과의 화해로 최소한의 속도전을 담보하려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미중 무역전쟁의 핵심인 기술 경쟁에서 자국 기업의 불필요한 출혈을 염려한 트럼프 행정부의 중재설까지 나오는 가운데, 애플이 퀄컴의 특허 비즈니스 권리를 인정하는 선에서 최소한의 5G 시대 레이스를 시작하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르면 올해 말 아이폰 5G 모델이 출시될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