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테일의 미래> 황지영 지음, 인플루엔셜 펴냄.

소매산업은 지난 30년간 폭발적으로 성장해왔다. 지난 1989년 상업적 이메일을 보내는 것이 가능해진 이후 확장일로였다. 그런데, 2017년 이상한 조짐이 나타났다. 그해 9월 7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세계최대 유아용품업체 토이저러스가 파산을 신청했다. 2017년 한 해 문 닫은 미국 내 소매업 매장이 8053개에 달했다. 파산 신고한 유명 브랜드는 50여개나 됐다. 연간 파산기록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였다. 오프라인 소매업의 매출 급감과 연이은 폐점은 영국 독일 등 유럽과 한국 등 아시아 지역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를 두고 ‘소매업의 종말’(리테일 아포칼립스, Retail Apocalypse)이라는 극단적 진단까지 나왔다.

美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마케팅 전공 교수인 저자는 지금 소매업이 ‘대전환’을 맞고 있는 것이라고 정리한다. 그 배경 원인으로 ▲모바일로의 이동 ▲소비세대의 교체 ▲기술혁신 등 세 가지 요소를 꼽는다.

저자에 의하면 시어스, 메이시스, 일반 쇼핑몰 등 기존 리테일 브랜드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은 무엇보다 신세대의 소비성향에 어필하지 못한 때문이다. 밀레니얼 세대(현재 23~38세)는 2020년 이후 세계 노동인구의 35%를 차지하고, 소비력 측면에서는 베이비부머를 뛰어넘을 전망이다. 이들 ‘디지털 네이티브’는 온라인 쇼핑을 선호한다. Z세대(1997년 이후 출생. 현 22세 이하)는 첨단 기술이 녹아든 새롭고 놀라운 오프라인 매장, 즉각적인 쌍방향 커뮤니케이션이 가능한 디지털 스크린, 셀프 체크아웃, 증강현실 등 다채로운 흥미 요소가 가미된 환경에 열광한다.

중국의 신흥 부유층으로 부각되고 있는 ‘주링허우’(90後. 1990년대 이후 출생)는 첫 디지털 세대로 자라났다. 이들은 데이터에 대한 의존도가 굉장히 높고, 정보의 질과 양 모두를 중시한다. 브랜드, 인플루언서, 가족, 친구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정보를 얻어 쇼핑에 적극 이용한다. 위챗, 바이두, T몰 등 SNS 플랫폼에서 주로 생활한다. 글로벌 컨설팅사 액센츄어의 조사 결과 주링허우 세대의 약 40%가 당일 배송을 원하고, 27%는 반나절 배송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밀레니얼·Z·주링허우… 소비 세력 ‘교체’

소매업의 첨단기술화는 강력한 소비세력이면서 새로운 소비경험을 원하는 밀레니얼과 Z세대, 주링허우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경쟁과도 맞물려 있다. 소매분야에서는 인공지능 비서, 소비 빅데이터, 언택트(Untact) 리테일, 더 섬세한 옴니채널, 가상 리테일, 캐시리스(Cashless) 리테일, 챗봇, 초저가 자체 브랜드(PB), 스마트 물류, 블록체인 등 신기술이 속속 도입되고 있다.

기술혁신은 아마존과 알리바바 같은 혁신적인 글로벌 리테일러들에 의해 주도된다. 이들은 소비-유통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아마존이 2018년 1월 선보인 무인매장 ‘아마존고(Amazon Go)’는 머신 러닝과 컴퓨터 비전, 인공지능 기술의 결합체다. 알리바바는 신선식품 매장 ‘허마셴셩’(Freshippo)을 통해 유통-소비-물류를 결합한 ‘신(新)유통’ 실험을 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3㎞ 이내 30분 배송’이 이뤄진다.

이들 기업은 물류 시스템도 혁신중이다. 물류 창고의 공간적 제약을 줄이고, 임대료뿐만 아니라 창고 속 상품 정리에 투입되는 비용까지 획기적으로 줄이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아마존은 우주를 창고로 활용하는 ‘데스 스타’, 비행선에 상품을 싣고 날아다니는 공중 물류센터, 드론이 벌처럼 날아서 접근하는 벌집형 다층 물류타워 등의 특허를 진행하고 있다.

택배용 드론을 싣고 다니는 아마존의 공중창고 ‘에어쉽’ 상상도. 출처=구글

 

 

 

 

 

 

 

 

 

 

심지어 바다나 호수, 수영장을 활용할 수 있는 수중 물류창고까지 고안했다. 수중창고에는 상품들이 방수 포장된 특수 패키지에 담겨 보관된다. 패키지 속에는 무게 중심을 잡아주는 밸러스트, 압축 공기 탱크, 풍선 주머니, 수중 청음기가 설치돼 있다. 배송을 위해 물 속으로 음파를 쏘면 청음기가 감지해 압축 공기를 발사하며 풍선 주머니가 부풀어 패키지를 물 위로 올리는 방식이다. 경쟁 업체인 월마트는 물에 뜨는 물류창고 특허를 신청했다.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보이스(Voice) 쇼핑’ 시대에 관한 대목이다. 아마존 고객들은 요즘 인공지능 음성비서 알렉사(Alexa)가 탑재된 스마트 스피커 ‘에코’를 통해 목소리로 쇼핑한다. 한국에서도 KT 기가지니가 설치된 가정에서는 목소리로 롯데슈퍼의 신선식품과 생활용품 등을 주문하는 ‘음성 장보기’가 시작됐다.

호기심에 그칠 것이라던 초기 예상과 달리 스마트 스피커 사용자의 쇼핑 구매량은 아마존의 일반 소비자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검색쇼핑 가고 보이스 쇼핑 온다”

2017년 컨슈머 인텔리전스 리서치 파트너스가 미국 소비자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아마존의 일반 소비자들은 연평균 1000달러어치를 구매했고, 프라임 멤버들은 1300달러를 소비했다. 반면 아마존 ‘에코’ 소유자들은 1700달러어치를 사들인 것으로 나타났다.

보이스 쇼핑 시대에는 어떤 브랜드나 상품을 선택할지에 대한 정보 탐색과 비교 결정을 음성비서가 대신 수행한다. 보이스 쇼핑에서는 특정 브랜드나 구체적 모델명으로 주문하는 비율이 그리 높지 않다.

예를 들어, 알렉사에게 배터리를 주문할 때 “알렉사, 듀라셀 AA 퀀텀 파워 배터리를 주문해줘”라고 말하는 이는 드물다. 대부분은 “알렉사, AA배터리를 주문해줘”라고 말한다. 음성비서의 결정 알고리즘이 소비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게 된 것이다. 소비자가 특별히 선호하는 브랜드가 없다면, 알렉사는 아마존스 초이스(Amazon’s Choice) 제품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앞으로는 브랜드 카테고리를 장악하는 것이 소매업에서 가장 중요한 목표라고 강조한다. 각 브랜드는 해당 카테고리를 선점하고 소비자에게 ‘1순위’로 인지되는 각고의 노력을 기울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시장조사업체들에 따르면, 음성 검색은 2020년까지 모든 인터넷 검색의 절반을 차지하게 되고, 음성비서 서비스는 2021년까지 18억명이 사용하게 될 것으로 예측된다. 바야흐로 ‘검색 쇼핑’은 가고 ‘보이스 쇼핑’이 오고 있다. ‘보이스 커머스(Voice Commerce)’의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