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건축학과 생물학의 크로스오버로 지어진 건축물로 잘 알려진 짐바브웨 이스트게이트 쇼핑센터. 출처= The Zimbabwe Sphere 트위터

[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모든 산업이 각자의 분야에만 갇혀있었다면, 우리의 인생은 얼마나 지루했을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 피터 라트하우저스(Peter Lathousers), 나이키 유럽지사 비즈니스 인텔리전스 부문 이사 -

이전까지 크로스오버가 하나의 현상으로 시작된 문화 콘텐츠 영역의 사례를 살펴봤다. 그러나 앞서 전제에서 이야기했듯 크로스오버는 몇 가지 영역에만 국한돼 적용된 개념은 아니다. 크로스오버는 기업의 경영 전략 혹은 첨단 기술의 발전에도 활발하게 적용되고 있다.

메디치 효과

작가이자 경영 컨설턴트인 프란츠 요한슨(Frans Johansson)은 자신의 저서 <메디치 효과>(2004)에서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영역의 지식들이 결합해 새로운 혁신이 일어나는 것’을 일컬어 ‘메디치 효과(Medici Effect)’라고 명명했다. 여기서의 메디치는 15세기 이탈리아 피렌체 공화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높았던 시민 가문으로 잘 알려진 ‘메디치가(家)’에서 따온 것이다.

메디치 가문은 자신들의 주요 거처에 예술부터 학문, 경제에 이르기까지 전혀 다른 분야의 지식을 가진 전문가들이 서로 교류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고 그들의 아이디어를 구현하는 데에 금전적, 정치적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는 곧 유럽 문화의 부흥기로 불리는 ‘르네상스 시대’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당시 메디치가의 후원을 받은 인물로는 천재 예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 그리고 <군주론>으로 잘 알려진 사상가 마키아벨리 등이 있다. 메디치가의 후원은 다양한 지식의 영역을 융합해 새로운 가치를 만든 크로스오버였다.

메디치 효과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바로 아프리카 대륙의 국가인 짐바브웨의 이스트 게이트 쇼핑센터(Eastgate Shopping Center)다. 짐바브웨 건축가 믹 피어스(Mick Pierce)는 어느 날 한 의뢰인에게 “아프리카에는 전기가 부족하니 에어컨이 없어도 내부가 시원한 쇼핑센터를 설계해 달라”는 다소 황당한 요구를 받는다. 이 황당한 의뢰로 고민하던 피어스는 어느 날 우연히 만난 한 생물학자에게 자연 조건을 활용해 내부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는 흰개미의 집 짓는 방식에 대해 듣게 됐고, 이를 활용해 정말로 에어컨 없이도 시원한 온도를 유지하는 쇼핑센터를 지었다. 바로 이것이 1996년에 지어진 이스트 게이트 쇼핑센터다.

기업 경영의 크로스오버

미국 버클리대학의 헨리 체스브로(Henry Chesbrough) 교수는 기업들이 조직의 발전을 위해 경영 혁신이나 연구개발 활동을 조직 외부로 확장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고 이를 적용하는 행위를 ‘개방형 혁신(Open Innovation)’이라고 표현했다. 조직의 내부로 한정될 수밖에 없는 사고의 한계를 벗어나 다양한 분야의 아이디어들을 취합해 이를 통해 경영 혁신의 성과를 올리는 경영의 크로스오버라고 할 수 있다. 각 기업들은 경영에 직접적으로 연관이 되지 않는 별도의 연구 기관을 두거나 아예 기업과 관계가 없는 외부의 연구 기관 혹은 연구자와 지식을 공유하고 협력하는 크로스오버를 통해 혁신을 추구한다.

대표적인 예로는 글로벌 OTT 기업 넷플릭스(Netflix)의 영화 추천 알고리즘 개선 콘테스트가 있다. 2006년 넷플릭스는 자사의 영화 추천 시스템을 보완하는 아이디어를 회사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찾기 위한 콘테스트를 열었다. 넷플릭스는 자사가 보유하고 있는 약 1만7000편에 이르는 영화에 대해 이용자들이 직접 매긴 점수 데이터의 절반을 공개했다. 나머지 절반의 수치를 정확하게 산출해내는 알고리즘을 만들어 기존 체계 대비 정확성을 가장 빠르게 10% 높이는 연구팀에게 100만달러(약 11억3610만원)의 상금을 수여하는 것이 콘테스트의 목적이었다. 이 콘테스트는 열린 지 약 3년 만인 2009년 6월 통계학자, 인공지능학자, 컴퓨터 엔지니어들로 구성된 연구팀이 알고리즘 정확도 10.06% 향상을 이뤄내 우승을 차지하면서 끝났다.

넷플릭스는 내부에서는 해결이 어려운 문제를 다양한 분야의 지식들이 융합된 아이디어를 구하는 크로스오버를 유도해냄으로 해결했다. 이는 동시에 넷플릭스에 대한 시장의 관심을 유발하며 기업홍보라는 부가적 효과도 얻을 수 있었던 시도였다.

기술 혁신 크로스오버 전형 ‘자율주행차’

미래의 첨단기술 중에서 현재 전 세계 글로벌 기업들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분야가 있으니 바로 자율주행 자동차(Autonomous Car)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그야말로 기술 분야에서 확인할 수 있는 크로스오버의 가장 전형적인 사례다.

과거의 자동차가 연료 기관의 가동과 물리적 조작 기술의 적용 정도에 머물렀다면 자율주행 자동차는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기술들이 융합된 결정체다. 현재까지 연구된 자율주행 자동차에는 차량 간 안전거리 자동 유지(HDA) 기술부터 시작해 차선유지 지원 시스템(LKAS), 차선이탈 경보 시스템(LDWS), 차선유지 지원 시스템(LKAS), 후측방 경보 시스템(BSD), 어드밴스트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ASCC), 자동 긴급제동 시스템(AEB) 등 외에도 수백 가지 이상의 기술들이 연결되고 접목된다.

▲ 첨단ICT기술 크로스오버의 결정체 자율주행자동차. 출처= SK텔레콤

물론 이것마저도 아직까지는 사람들이 기대하는 완벽한 자율주행 혹은 무인 운전을 구현하지는 못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 자율주행 자동차에는 더 많은 첨단기술이 적용될 예정이다.

자율주행 자동차는 기술 외에 산업에 대한 응용 측면에서의 크로스오버를 구현할 수 있는 주체로도 평가되고 있다. 이는 자율주행 자동차의 기술이 이뤄진 후 다양한 산업에서 응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를테면 24시간 가동이 가능한 물류 운송 시스템의 구축, 이동식 숙박 시설의 운영 그리고 차량공유 서비스 운영은 자율주행 자동차의 적용으로 가능해진다. 이는 곧 자율주행 자동차를 중심으로 한 산업군의 크로스오버를 의미하기도 한다.

제품 개발의 크로스오버

크로스오버는 소비재 제품 개발의 영역에서도 다양한 형태로 적용되고 있다. 특히 유명 IP 디자인을 의류나 식품, 마케팅 상품에 적용하는 것은 이제 아주 흔한 일이 되고 있다. 대표적으로는 일본의 SPA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UNIQLO)의 티셔츠 디자인 라인업인 ‘UT’가 있다. UT는 당대의 유명한 브랜드 디자인이나 의미가 있는 콘텐츠 IP를 티셔츠에 새겨 넣어 매년 새로운 제품들을 선보인다.

최근 유니클로는 미국의 인기 애니메이션 <미니언즈>, 올해로 방송 40주년을 맞은 일본의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 닌텐도의 인기 비디오 게임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디자인을 적용한 티셔츠들을 선보이며 수많은 콘텐츠 마니아들의 주목을 받았다. 비슷한 맥락으로 최근 편의점 CU는 에너지 드링크 브랜드 ‘핫식스(HOT SIX)’ 디자인을 적용한 반다이사의 조립 모형 건담 프라모델 한정판 제품의 판매를 발표하면서 이른바 건프라(건담 프라모델의 줄임말) 마니아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 샤오미 라인프렌즈 에디션 스마트폰. 출처= 라인프렌즈

그런가하면 최근에는 중국의 소비재 업체들도 크로스오버를 적용한 제품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지난 4월 9일 중국의 전자기업 샤오미는 콘텐츠 브랜드 ‘라인프렌즈(LINE FRIENDS)’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라인프렌즈 캐릭터 디자인이 적용된 전자기기 제품을 출시했다.

샤오미는 라인프렌즈의 오리지널 캐릭터 ‘브라운 앤 프렌즈’를 적용한 스마트폰 단말기, 캐리어, 보조배터리 등 다양한 제품을 선보였다. 제품 출시에 앞서 지난 4월 1일, 샤오미는 미디어 행사와 레이 쥔(雷軍) 샤오미 회장 개인 SNS채널을 통해 제품을 선공개했고 현지와 외신 미디어, 전 세계 소비자들의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