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CJ엔터테인먼트

[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지금까지 이런 맛은 없었다. 이것은 갈비인가 통닭인가." 1600만명의 관객들을 불러들이며 국내 영화 흥행순위 2위에 오른 영화 <극한직업>에 나온 이 대사는 극중에서 나오는 ‘갈비’와 ‘통닭’이라는 조합으로 탄생한 ‘왕갈비 통닭’이라는 메뉴를 알렸고 이는 식품·외식업계에 새로운 트렌드를 만들었다. 단순하게 해석하면 두 음식을 ‘섞은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르게 생각하면 전혀 범주가 다른 어떤 것들이 별도로 존재할 때보다 이를 서로 합침으로써 가치가 훨씬 커져버린 사례로 볼 수 있다.

영역이 다른 두 개체의 조합으로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부가적 가치를 만들어내는 것. 이는 소위 ‘4차 산업혁명’에서 가장 강조하는 ‘융합’이라는 키워드의 의미와 일맥상통하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개념이 아예 없던 시대부터 이미 다양한 형태의 융합을 목격해왔고 이는 문화·경영 등 다양한 영역에서 끊임없이 구현되고 있다.

고정된 영역을 넘어서고자 하는 창조적 파괴의 시도이자 이제는 우리 일상 속에서 너무 흔해서 그 특별함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가 된 ‘크로스오버(Cross-over)’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퓨전 재즈, 서태지와 아이들 그리고 4차 산업혁명?

서로 다른 영역의 주체를 교차 또는 융합하는 시도를 특정 현상을 ‘크로스오버’라고 설명하기 시작한 분야는 바로 ‘음악’이다. 1960년대 미국에서는 재즈 음악에 강렬하고 빠른 록 음악의 박자와 느낌을 응용한 새로운 음악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이런 음악들은 ‘재즈-록’이나 ‘록-재즈’ 혹은 ‘퓨전 재즈’로 불렸다.

이것이 문화 영역에서 나타난 융합의 시작이었다. 이후 음악의 다양한 장르들은 서로 다른 영역의 특성을 조합하고 반영하는 시도가 활발하게 일어났고 이 흐름은 나아가 전 세계의 대중문화, 경제, 산업 등에 적용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다양한 영역에서 벌어지는 조합의 시도들을 1980년대부터는 ‘어떠한 활동이나 스타일이 두 가지 이상의 분야에 걸친 것’이라는 의미의 영단어인 ‘크로스오버’라는 하나의 현상으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크로스오버는 우리나라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고 재미있게도 우리나라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크로스오버의 사례는 음악 분야에서 나타났다. 그 주인공은 바로 90년대 초 우리나라의 가요계를 뒤흔든 그룹 ‘서태지와 아이들’이다. 발라드·록음악·트로트·포크 등 비교적 단조로운 장르 구분으로 고착화돼있던 우리나라의 가요계에 서태지와 아이들은 힙합과 랩이라는 장르를 도입해 이전에 없었던 음악을 보여주며 국내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특히 서태지와 아이들의 노래 ‘하여가’는 우리나라 전통 국악에 힙합의 랩을 조합한 시도로 음악계에서 큰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이후 우리나라의 가요계는 서태지와 아이들의 음악 전과 후로 시대를 구분하기 시작했다. 일련의 사례는 모두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세상에 있기 전부터 크로스오버가 추구한 융합을 통한 가치 창조였다.

<어벤져스>가 보여준 ‘크로스오버의 힘’

크로스오버의 적용과 효과가 가장 눈에 띄는 분야는 단연 ‘문화 콘텐츠의 영역’이다. 이는 소비자들의 선호나 취향이 가장 빠르게 변화하고 가장 다양한 유형들이 나타나는 산업군이 문화 콘텐츠 분야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문화 콘텐츠 영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보여준 크로스오버는 무엇일까? 멀리서 찾지 않아도 된다. 전 세계 수억 명의 팬들이 약 10년을 넘게 기다려온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으로 대단원의 막이 내려지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시리즈는 문화 콘텐츠 영역에서 가장 거대한 크로스오버의 성공 사례다.

MCU 영화들의 원작인 마블의 코믹스(만화 단행본)의 크로스오버는 “만화 속 슈퍼 히어로들이 같은 공간에 있으면 무슨 일이 생길까?”라거나 “히어로들끼리 서로 싸우면 누가 이길까?”라는 작은 호기심에서 시작했다. 이러한 호기심은 마블 코믹스에 등장하는 수많은 영웅들의 세계관을 하나로 합쳐 에피소드들을 교차하는 시도로 이어졌고 그렇게 해서 슈퍼 히어로들의 팀을 뜻하는 ‘어벤져스(Avengers)’라는 크로스오버 콘텐츠가 탄생했다.

▲ MCU 10년 대단원의 막을 내리는 작품 <어벤져스: 엔드게임>과 MCU 영화상영 수익. 출처= MARVEL STUDIO

만화에서 시작된 마블의 발상은 영화로 옮겨져 수십 편에 이르는 히어로 영화들을 공통의 세계관으로 묶었다. 이러한 시도는 각 히어로들의 단독 콘텐츠 팬들을 끌어들임과 동시에 <어벤져스>라는 크로스오버 콘텐츠 자체로 새로운 팬덤이 생겨나게 만들었고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미국의 영화전문 사이트 박스오피스 모조(Box Office Mojo)가 파악한 2008년(아이언맨)부터 2016년(캡틴 아메리카 3: 시빌 워)까지 MCU 영화의 전 세계 상영 수익(콘텐츠 활용 부가가치 배제)은 100억2500만달러다. 이를 한화로 환산하면 약 11조7748억원이다. 이는 세계에서 단일 영화 시리즈로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린 기록(심지어 이는 2016년까지의 수익이며 이후 개봉된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를 포함한 8개 작품의 수익은 포함되지도 않았다!)으로 등재돼있다.

게임 크로스오버의 대표주자 ‘일본’

어벤져스 시리즈가 영화라는 영상 콘텐츠가 보여준 크로스오버 성공 사례였다면, 그 다음으로 콘텐츠의 크로스오버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분야는 게임 콘텐츠이며 이는 콘솔(가정용 게임 기기)용 게임을 만드는 일본의 게임사들이 가장 많이 시도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는 SRPG게임 ‘슈퍼로봇대전’ 시리즈가 있다. 슈퍼로봇대전이라는 게임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 게임은 수많은 로봇 만화에 등장하는 주인공 로봇들이 크로스오버된 세계관으로 모여 악당을 쓰러트리고 ‘지구의 평화를 지킨다(?)’는 콘셉트다.

▲ 크로스 오버 게임의 대명사 <슈퍼로봇대전>의 최신작 <슈퍼로봇대전T>.출처= 슈퍼로봇대전 공식 홈페이지

이 게임의 시작도 마블의 어벤져스와 다소 유사한데 일본의 인기 로봇 애니메이션 작품인 “건담과 마징가Z가 싸우면 누가 이길까?”라는 발상에서 출발했다. 이러한 발상이 구현돼 1991년 닌텐도의 휴대용 게임기용 타이틀 ‘제1차 슈퍼로봇대전’이 발매된 이후 2019년 약 60여개 이상의 게임 타이틀로 발매됐으며, 2019년 현재까지도 매년 평균 1~2개씩 새로운 작품들이 나오고 있을 정도로 메가 콘텐츠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슈퍼로봇대전의 성공 이후 일본의 게임사들은 자국에서 보유하고 있는 수많은 콘텐츠 IP들을 조합해 수없이 많은 크로스오버 작품들을 만들어 냈다.

이를테면, 디즈니의 캐릭터 콘텐츠를 활용한 RPG게임 ‘킹덤 하츠’ 시리즈, 닌텐도의 게임 캐릭터들이 난투 대결을 벌이는 ‘대난투! 스매시브라더스’ 시리즈 그리고 마블 코믹스의 캐릭터들과 캡콤사 게임 캐릭터들을 활용한 대전격투 게임 ‘마블 VS 캡콤’ 시리즈도 대표적인 게임 크로스오버의 사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