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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주의 워치블랙북] 영원한 생명력, 짭 시계의 모든 것
   
스톰룰러로 짭 시계를 처분하는 모습

짭, 짝퉁, 가품, 이미테이션. 모두 모조품을 이르는 단어다. 짝퉁은 무려 국어사전에 등록된 단어로, 짭은 짝퉁을 줄여서 이르는 명칭이다. 명품 가방에서부터 전자제품, 장난감과 같은 물건에서부터 애니메이션, 게임 등 문화에 이르기까지 짭이 존재한다. 심지어 비행기에 짭 나사를 사용해 비행기가 기체 고장으로 추락한 일도 있을 정도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짭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에서도 깊고 심오하기로 유명한 것이 바로 짭 시계 시장이다. 무려 ‘역사’가 있다고 주장하는 짭 브랜드도 있고, ‘오마주’라는 이름으로 이제는 인정까지 받으며 팔리는 짭 시장도 자리를 잡았다. 이쯤에서 우리는 한 번쯤 정리해볼만 하다. 짭 시계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 것일까. 

 

짭 시계의 역사

   
중국 가품시계시장의 가판대 일부

초창기 짭 시계는 1900년대 중반, 이탈리아 남부 지방 마피아에서 시작됐다고 알려져 있다. 제2차세계대전 후 패전국으로 전락한 마피아들이 환금성이 강한 롤렉스사의 시계를 카피한 것이다. 롤렉스 시계는 금보다 복제하기 힘들지만 환금성은 금보다 좋고, 감별하는 것은 금보다 더 어려웠다. 이후 마피아들의 시계는 아시아로 건너와 암시장인 마카오와 홍콩에 자리를 잡게 된다. 암시장에서 판매되던 짭 시계들은 순식간에 소문을 타고 인기를 끌게 되었다. 한몫 제대로 챙길 수 있는 사기 아이템으로 ‘시계’만한 것이 드물었기 때문이다. 암시장을 잡으려는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암시장은 하나의 산업이 되었다. 실제로 80년대까지 홍콩은 시계공장으로 불릴 정도로(물론 가짜 시계를 생산했지만) 규모가 거대한 짭 시계 공급원이었다. 80년대 이후 인건비 문제로 홍콩의 공장은 모두 중국으로 넘어가게 되었고, 저렴한 인건비를 배경으로 중국의 시계 산업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발전하게 됐다. 그렇게 짭 시계 제조를 배경으로 갖춰진 공장과 기술력은 시계회사들이 중국을 돌아보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80년대까지 세계 최대의 시계 생산국가는 일본이었으나, 순식간에 중국이 그 왕좌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중국은 지금까지 세계 최대의 시계 생산국가이자 세계 최대의 짭 시계 생산국가로서 2관왕(?)을 차지하고 있다.

 

짭과 아님의 모호한 경계

   
스테인하트사의 빈티지 롤렉스 데이토나 모조품. 로고가 다르기 때문에 법적으로 문제는 없지만, 명백한 디자인 모조품이다.

짭 시장의 역사가 100년이 넘다 보니 짭 시장도 구조화되었고, 짭과 정품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하게 자신의 브랜드를 유지하고 있는 경우도 꽤 존재한다. 특히 마이크로브랜드의 경우 회사를 키우는 방법 중 하나가 인기 있는 브랜드 시계의 디자인을 카피해서 로고만 바꿔 저가형으로 출시한 후, 카피 제품을 판매한 돈으로 자신들의 아이덴티티를 담은 디자인의 시계를 출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한국 같은 경우 마이크로브랜드의 디자인 카피를 인정해주는 것 같은 모호한 경계와 PC주의가 결합되어 ‘카피를 카피라 말하지 못하고 짭을 짭이라 말하지 못하는’ 현상이 생기곤 한다. 세계에 통용되는 기준으로 경계를 나눈다면 명확하다. 세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1. 브랜드와 디자인 모두를 따라 한 제품은 짭이다.

2. 디자인이 모두 똑같고 브랜드 로고만 다르다면 짭이다.

3. 정품 부품에 가품 부품을 섞어 만든 제품은 짭이다.

특히 마이크로브랜드 같은 경우 어려운 환경에서 자신들만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고, 하나의 시계 회사로 성장하기 위해 편법을 쓰지 않는 회사도 많기 때문에 이들 브랜드들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브랜드 로고만 바꾼 카피 제품들은 개인적으로 즐길 순 있으나 결코 공개적으로 인정될 수 없는 명확한 ‘짭’이기도 하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으니 개인적으로 짭으로서 카피제품들을 즐기는 것은 비난받을 일도 아니고 나쁜 일도 아니지만, 베낀 디자인에서 브랜드만 바꾼다고 짭이 아니라는 안일한 생각은 자위에 불과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는 에어팟 디자인을 똑같이 베낀 중국산 에어팟을 ‘오마주’라고 부르지 않는다. ‘에어팟 짝퉁’이라고 부른다. 디자인을 베낀 모조품은 영어로 이미테이션이고, 이는 가품을 뜻하는 단어로 통용된다.

 

짭의 구분

   
STELTH사의 DLC코팅 커스텀 시계. 유명한 커스텀 전문 회사는 커스텀시 다이얼에 자사의 로고까지 새겨넣을 정도로 인지도가 높다.

앞서 나열한 세 가지는 명확하게 짭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짭인지 아닌지 경계가 모호한 부분들이 있다. 정품 부품과 가품 부품을 섞어 만든 프랭큰(1)과 같은 경우 명확히 짭이라고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그것보다 더 규정하기 힘든 부분들이다. 이를테면 정품에 DLC코팅 등으로 도색한 커스텀 모델이다. 구매자가 정품을 샀고, 돈을 들여 커스텀을 했지만 정품이라고 부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컬래버레이션 커스텀과 같은 경우도 그렇다. 개인 아티스트들이 정품 시계에 두 가지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섞어서 커스텀을 하는 경우인데, 이 경우도 시작과 본체는 100% 정품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경계가 모호해지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예민한 마니아들은 시계를 수리할 때 같은 브랜드의 부품일지라도 시대가 다른 제품을 쓰는 것만으로도 정품이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이 부분은 해외 커뮤니티에서 종종 ‘커스텀’이냐 ‘짭’이냐로 게시판에 불이 붙곤 한다.

 

진짜 짭은 얼마?

   
eBay에서 가품 시계를 판매하는 판매자의 예

1000만원이 훌쩍 넘는 시계를 산다는 것은 확실히 일반 직장인들의 월급으론 쉬운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짭의 유혹에 빠지게 된다. 짭 시계는 브랜드에 따라 다르지만, 일반적으로 유명 브랜드의 SA급이라 불리는 모델이 시장에 형성되어 있는 가격은 40만원에서 많게는 100만원을 훌쩍 넘긴다. 실제로 짭 시계의 가격은 얼마나 될까? 우리가 손에 넣는 40만원짜리 시계가 한국 가품 사이트에 들어올 땐 1/10 가격인 4만원 선에 수입된다. 4만원짜리 시계는 상하이 시장에서 다시 1/3 정도의 가격인 1만3000원 수준으로 공장에서 나온다. 믿을 수 없는 가격이지만 현실이 그렇다.

 

믿을 수 없는 짭의 경계

   
인스타그램의 유명한 가품시계헌터 fakewatchbusta

고가의 시계에 짭이 존재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저렴한 시계라고 해서 안심을 하면 안 된다. 짭 시장의 세계는 여러분이 알고 있는 것보다 훨씬 방대하고 넓기 때문이다. 엔트리 모델 500만원에서 1000만원대로 형성되어 있는 롤렉스는 짭 시계가 많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100만원 이하의 모델인 티쏘 같은 경우도 짭 시계가 정교하고 양이 많기로 유명하다. 티쏘뿐만이 아니다. 알마니와 같은 경우 40만원대의 쿼츠 시계로 짭으로 만들어져 온라인에 10만원 선에 버젓이 판매되고 있다. 온라인에서 10만원이라면 공장 제조가는? 말을 안 해도 충분히 상상 가능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알마니가 끝이 아니다. 판매가 10만원 이하의 지샥도 필리핀에 가면 8000원대에 짭이 진열되어 팔린다. 더 무서운 것은 개당 3만원 선의 카시오도 짭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내 브랜드는 짭이 없겠지’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랜드세이코가 유일하며, 모든 시계는 짭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현명하다. 인터넷에서 판매하는 짭은 정품 사진을 걸어놓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정품 대비 가격이 터무니없이 싸다면 일단 의심해보는 것이 좋다. ‘싼 게 비지떡이다’라는 말은 옛날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가격 문제뿐만이 아니다. 빈티지 시계도 짭이 존재한다. 특히 빈티지 시계의 가치가 높은 롤렉스 시계의 경우 빈티지 가품이 많은데, 마치 가품 유물을 만들듯이 오래되어 보이는 가공을 한 시계들도 시장에 유통되고 있다. 때문에 명망 있는 셀러브리티들도 짭 시계의 유혹에 넘어가거나 쉽게 속곤 하는데, 이를 전문으로 사냥하는 인스타그램 계정 ‘fakewatchbusta’가 매우 유명하기도 하다.

 

우리 삶을 진품으로

   
가품시계를 소비하는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오뜨오를로지의 광고. “가품시계는 가짜인생들을 위해 존재한다. 진짜가 되자. 진짜를 사자.”

가품을 즐기는 사람들이 모두 가짜인생을 산다든지, 돈이 없는 것이 아니다. 경제적인 여유가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가품을 재미 요소로 즐기는 사람들이 있고, 소양이 깊은 마니아들은 공부를 위해 가품시계를 구입하기도 한다. ‘오마주’라는 이름으로 디자인 카피 가품을 구입하는 사람들도 ‘저렴한 가격에 똑같은 디자인을 즐기기 위해서’라는 나름의 이유를 갖고 있다. 다만, 내가 산 가품 시계가 남들 앞에서 부끄럽게 느껴진다면 바로 벗어서 쓰레기통에 넣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내가 남들 앞에서 떳떳해지지 못해 스스로를 속이게 만드는 물건을 갖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가품의 진정한 폐해다. 시계는 결국 물건이다. 나를 먼저 진품으로 만드는 삶이 나의 시계를 가장 가치 있게 만드는 길이다.

참고문헌: Bob’s Watches deals with spotting fake Rolexes / a blog to watch / rolex / Fake watch busta

사진출처: @fakewatchbusta / ablogtowatch / Rolex Passion Report / Telefraph / steinhertwatches.de

김태주 시계 전문 페이지 <블랙북> 운영자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9.04.15  15:2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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