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빵과 술이 있는 정물 1991, 캔버스에 유화, 72.7×72.7㎝(Still Life with Bread and Alcohol 1991, Oil on Canvas, 72.7×72.7㎝)

비례가 반드시 심리적인 불안이나 시각적인 불편함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어딘지 예외적이어서 낯설다는 인상이다. 전체적인 화면에 비해 현저하게 작은 부분에 소재들이 자리함으로써 공간적인 깊이가 커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그렇다. 이와 같은 필요이상으로 커지는 듯한 공간해석은 소재를 향한 시각적인 집중 및 심리적인 안정감을 준다. 무엇보다도 상대적으로 시거리가 멀어짐으로써 시각적인 부담감을 덜어 준다.

이렇듯이 시거리가 멀어질 경우 소재의 형태적인 아름다움에 근접할 수 없다는 문제는 있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소재 하나 하나의 형태미보다는 하나의 군집을 이루는 상황이 빚어내는 새로운 조형적인 해석의 아름다움을 주시하려는 것이다.

그림에서 형태를 만든다는 즉, 조형이라는 것은 반드시 형태를 묘사한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소재를 어떻게 배치하고 어떠한 구성 및 구도를 만들어가는가 하는 문제도 조형의 하나인 것이다. 그러기에 그가 보여주는 소재의 배치방식 또한 조형적인 해석의 하나로 간주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공간의 설정방법 또한 조형의 범주에 들어간다. 소재는 공간 속에서 존재하는 것이기에 소재의 크고 작음 및 화면상의 비례 따위에 의해 공간의 의미가 달라진다. 그가(ARTIST KOO CHA SOONG,具滋勝,서양화가 구자승,구자승 작가,구자승 화백,KOO CHA SOONG) 추구하는 공간의 해석은 동양화의 여백개념에 근거하는 것이다.

△글=신항섭/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