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드 카펫은 홈시어터 시스템이 있는 집에 개봉 영화를 1500달러에서 3000달러에 대여해 준다. 출처= Christian Northeast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미국의 티켓 예매 회사 티켓마스터(Ticketmaster)를 창업하고 그곳에서 은퇴한 프레드 로젠은 할리우드의 고급 호텔 산 비첸테 방갈로(San Vicente Bungalows)에서 햄과 브리치즈 샌드위치를 먹으며 벨트에 대해 열심히 설명했다.

“그래, 사람들이 바지를 붙들어 매기 위해 뭘 사용하지? 월마트에서 4달러짜리 벨트를 하나 살 수 있겠지. 하지만 구찌에서 1500달러짜리 벨트를 살 수도 있어.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제품에는 럭셔리 버전이 있기 마련이지. 영화라고 안 될 게 있나?”

이 아이디어는 지난 몇 년 동안 이 기업가의 마음을 사로잡은 아이디어다. 요즘 흔히 볼 수 있는 기술 억만장자, 월스트리트의 거물들, 프로 운동선수들, 러시아 집권 정치인들, 그리고 그 밖의 슈퍼 부자들에게, 최신 영화가 극장에 개봉하자마자 집에서 볼 수 있도록 영화를 높은 가격에 대여하는 것이다. 사실 그런 금액의 1%도 안 되는 돈으로 넷플릭스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에 말이다.

75세의 로젠과 그의 동년배 골프 친구인 할리우드 최고의 영화 배급 전문가 댄 펠먼은 마침내 어떻게 하면 그 일을 해낼 수 있을지를 알아냈다. 그들은 소리 소문 없이 레드 카펫 홈 시네마(Red Carpet Home Cinema)라는 회사를 설립하고 영화 한 편당 1500달러에서 3000달러를 받고 개봉 영화를 대여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레드 카펫은 워너브라더스(Warner Bros.), 파라마운트(Paramount), 라이온스게이트(Lionsgate), 안나푸르나(Annapurna), 디즈니의 20세기 폭스(20th Century Fox), 폭스 서치라이트(Fox Searchlight) 등과 계약을 맺고 <아쿠아맨>(Aquaman)이나 <스타이스본>(A Star Is Born)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를 포함해 연간 40여 편의 영화를 대여한다.

그들이 그런 파트너십을 맺을 수 있었던 것은 두 사람이 수십 년 동안 엔터테인먼트 산업에서 쌓아온 관계 때문이다. 대부분의 스튜디오는 그들을 실리콘밸리에서 온 파괴자로 보지 않는다. 이를테면 스크리닝 룸(Screening Room) 같은 스타트업들은 2016년부터 프리미엄 가격으로 신속하게 가정에 개봉 영화를 소개하려고 시도했지만 그다지 재미를 보진 못했다(스크리닝 룸은 페이스북의 초대 CEO를 지내고 냅스터(Napster)를 창업한 숀 파커가 창업한 개봉영화 스트리밍 회사다).

레드 카펫은 영화 산업이 전면적인 변화를 겪고 있는 시점에 출현했다. 알다시피 영화 산업 변화의 핵심에는 전통적인 영화 개봉 방식에 도전하고 있는 넷플릭스가 있다. 대부분의 경우, 극장주들은 새로운 개봉 영화에 대해서는 최소 3개월간의 배타성을 주장한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로마>(Rome)나 <버드 박스>(Bird Box) 같은 영화에 대해 극장에게 독점 기간을 3주도 채 주지 않으면서 그런 관행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이 분야의 교과서로 불리는 <엔터테인먼트 산업 경제학>(Entertainment Industry Economics)의 저자 해롤드 보겔은 “대부분의 스튜디오들은 이런 광범위한 유통 변화를 불가피한 흐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면서 “소비자들은 더 많은 통제력을 갖기를 원한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드 카펫에 대한 스튜디오들의 반응은 조심스럽다. 레드 카펫 파트너로 계약한 영화사들 중 아무도 이 모험적 사업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유니버설, 소니 픽처스, 디즈니의 다른 레이블 등 몇몇 영화 제작사들은 아직 레드 카펫과 관계를 맺지 않고 있다.

로젠은 “많은 스튜디오 파트너를 갖게 돼 마음이 편하다”며 “우리는 말 그대로 틈새시장이다. 우리는 시장을 뒤집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스튜디오들이 우리에게서 연간 2500만달러에서 5000만달러를 번다고 해도, 그 정도면 괜찮은 것 아닌가요?”

극장주들도 레드 카펫에 대해 관망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미국의 주요 극장 체인인 AMC 엔터테인먼트(AMC Entertainment)의 아담 아론 최고경영자(CEO)는 구독 티케팅 서비스를 제공하는 무비패스(MoviePass) 같은 스타트업에 대해서는 비판의 날을 세웠지만 “레드 카펫에 대해서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고 말했다.

▲ 댄 펠먼(왼쪽)과 프레드 로젠은 그들의 레드 카펫 홈무비 서비스가 소수 부유층을 위한 틈새 시장이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출처= 뉴욕타임스(NYT) 캡처

로젠과 펠만은 로스앤젤레스의 힐크레스트 컨트리클럽(Hillcrest Country Club)에서 골프를 치면서 레드 카펫에 대한 계획을 세웠다. 힐크레스트 컨트리클럽은 개인 클럽처럼 운영되는 고급 클럽이다. 가입 신청자는 최소 5만달러 이상의 한도를 가진 신용카드를 소지해야 하는 등 가입 절차도 까다롭다. 또 이 클럽의 고객이 된 사람들은 반드시 1만5000달러짜리 홈시어터 시스템을 구입해야 한다(물론 기술자가 설치해주고 무단 복제 보호 장치도 장착되어 있다).

영화 대여료는 파트너 스튜디오에 의해 책정된다. <샤잠!>(Shazam!) 같은 블록버스터 영화의 대여료는 좀 높고, <셰이프 오브 워터:사랑의 모양>(The Shape of Water) 같은 드라마는 좀 저렴하다. 한 번 대여 기간은 36시간이고 그 안에 두 번 볼 수 있다.

레드 카펫이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까? 우리 주위에는 생각보다 여유가 있는 사람이 많다. 미국 사회보장국(Social Security Administration)의 2017년 자료에 따르면, 미국에서 연간 200만달러(23억원) 이상의 소득을 올리고 있는 사람은 4만6000여명이었다. 그러나 로젠과 펠만은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시장 규모에는 관심이 없다고 주장했다.

로젠은 “1만명의 고객을 원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한다. 4000명 정도의 고객만 있다면 레드 카펫은 연간 3억달러의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파라마운트의 전 CEO인 셰리 랜싱도 투자에 참여한 레드 카펫은 지난해 12월부터 베타 테스트(Beta Test,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를 공식적으로 발표하기 전에 오류가 있는지를 발견하기 위해 미리 정해진 사용자 계층들이 써보도록 하는 테스트)의 일환으로 약 25가구를 대상으로 운영하고 있다. 레드 카펫 웹사이트에는 랜싱이 “친구들에게 이 서비스를 강추합니다”라는 동영상이 올려져 있다.

펠먼은 “우리는 극장 경험을 파괴하는 사업을 시작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다. 아마도 뉴욕이나 LA 같은 대도시에 400개의 가정을 고객으로 확보하고, 미국의 30대 도시에 각각 100개의 가정을 확보하는 정도면 충분하다”고 말했다.

사실 일부 유명 인사들과 할리우드 거물들은 이미 오랫동안 벨에어 서킷(Bel-Air Circuit)이라는 서비스를 통해 개봉 영화를 자신의 집에서 볼 수 있었다. 스튜디오들은 사전 승인된 소수의 제한된 VIP 들에게만 개봉 영화의 복사본을 ‘빌려’준다.

“우리는 스튜디오들에게 ‘당신이 판매 가격을 정하라’고 말합니다. 그들은 우리의 그런 접근 방식을 높이 평가했지요. 할리우드에서는 통하지 않던 방식이 ‘바로 이렇게 하는 거야’라는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