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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진의 기업과 커뮤니케이션] 넓은 듯 보여도 세상은 좁다
   

회사 사람들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러 간 자리에서 웬 낯이 익은 중년 남자를 만났다. 그런데 생각을 이리 꿰고 저리 꿰어도 어디서 봤는지 생각이 나질 않았다. 기자일 리는 없고, 투자자나 주주도 아니고 금융사나 애널리스트도 아닌 것이 분명했다. 그런 사람들이 회사 근처까지 왔으면 내게 연락을 하지 않았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너무 낯익은 사람이어서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한참을 생각해도 도무지 회사 관련으로 마주친 적은 없었던 것 같았다. 그렇다고 낯선 동네에 아는 얼굴이 있다는 것도 이상했다. 그러던 와중에 화장실을 다녀오던 그 사람과 내가 눈이 딱 마주쳤다. 어쩔 줄을 몰라 하고 있는 내게 다가와서는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는데, 그때까지도 생각이 나지 않아서 곤란해 하고 있던 참이었다.

“편의점에서만 늘 보다가 여기서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그 중년 남자는 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던 선생이었는데, 교편을 접고 잠깐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그 몇 개월간 아침마다 내가 들러서 담배나 음료 같은 것을 구입했던 기억이 났다. 잠시 후에 그 사람은 식당 냉장고 문을 열고서는 맥주를 한 병 꺼내서 내가 있던 테이블로 가져와 한 잔 권했다. 그러면서 ’이 집 사장님이 처형되는데, 오늘은 안 사람이랑 저녁을 먹고 한잔 하러 왔다’는 것이었다.

 

단골 편의점, 단골 식당, 다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

같이 갔던 사람들에게 그 상황을 설명하자니 대화가 장황해졌다. 아침마다 들르는 편의점이 늘 같은 곳이었고, 거기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직원이 여러 번 바뀌었는데, 그 중에서 그 사람이 몇 개월간 일을 하면서 나랑 안면이 익었던 것이다. 거기다 내가 자주 가는 단골 식당 여사장과는 처형 매제 관계였다. 아닌 밤중에 맥주 한 병 얻어먹으면서 부연 설명한 그 상황 동안 머릿속으로 알고 보면 사람들 관계가 생각보다 아무것도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이 스쳤다.

커뮤니케이션 담당으로 오랫동안 일해 오면서 소홀해 하지 않은 것이 있다. 출입처가 바뀐다든지 인사 이동으로 다른 부서로 가버린 사람들도 일년에 한 번쯤은 얼굴을 보는 것이다. 일선 기자가 될 수도 있고, 부장급 데스크가 될 수도 있고 그 보다 더한 경우도 있었다. 챙길 곳도 많고 사람도 많은데다 예산은 늘 부족했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사람들까지 어떻게 챙기냐고들 하지만 사실은 크게 돈 들어갈 일도 없다.

예전에 모 경제지에서 알던 부장이 있었다. 평기자에서 시작해서 차장을 거쳐 증권부, 유통부 그리고 산업부장까지 요직을 두루 거쳤다. 그런 커리어를 가지고 있다면 재계나 금융권이나 거의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폭넓은 인맥을 소유하기 마련이고 안목도 남달랐다. 사실 그런 데스크와 점심이라도 한번 하기 위해서는 두어 달 전에 미리 연락을 해서 날을 잡아야 했다. 여기 저기서 찾는 사람들이 워낙 많은 사람이기에 골프 스케줄과 저녁 약속은 거의 서너 달 이상 꽉 차 있을 때가 많았다.

나와는 차장 시절부터 오랫동안 함께 해 왔기 때문에 그런 바쁜 와중에도 특별한 이슈도 없이 그저 얼굴 한번 보고 밥이나 같이 먹자는 제안에도 흔쾌히 응했다. 그러던 어느 날, 광고 담당으로 발령이 났다. 증권부나 산업부의 데스크로 있을 때면 회사 기사와 관련해서는 이런 저런 권한도 많았지만, 광고 담당으로 가면 일단 기사에 대한 영향력은 줄어들 뿐만 아니라 광고 영업까지 했다. 광고 예산이 거의 전무했던 내 입장에서는 보통 부담스럽지 않은 관계가 된 것이었다.

그래도 일년에 한 두 번 정도 점심을 같이 했다. 예산이 없어서 광고를 진행할 수가 없으니 먼저 양해부터 구했다. 오히려 기업 재무 개선중인 뻔히 아는 살림에 그런 소리 말라며 안심시키기부터 했다. 부서가 바뀌고 부담되는 상황에서도 먼저 연락해서 연을 지속해 나가고자 하는 나의 모습에 오히려 감사하다는 말을 연신 했다. 그러면서 굳이 광고를 청탁하려 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마주치고 연락하는 것 조차 부담스러워들 한다고 했다.

 

끈 떨어져 홀대하던 사람, 나중엔 더 크게 될 수도

소주 한 병씩을 반주 삼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니 점심 시간이 한 시간 반이나 이어졌다. 술김에 한 말은 아니었지만, ‘산업부장으로 있었을 때 몇 달치씩 골프 약속이 잡혀 있었고 식사 약속도 많았는데, 광고국으로 발령 나고 나선 그런 약속이 다 취소됐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는데, 그 말 끝에 나온 말에 모골이 송연해졌다. “절대로 그런 사람들 잊지 않을 겁니다.”

식사도 거의 끝나가고 분위기도 싸 해져서 화장실 핑계를 대고 나왔다. 다시 들어가면서 계산대에서 식대를 계산하기 위해 카드를 내밀었는데, ‘이미 계산 하셨습니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순간 ‘아, 화장실 간 틈에 계산을’ 하는 생각을 하면서 황급히 자리로 되돌아 왔다. 그리고 함께 나왔는데,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광고국장은 내가 화장실 갔던 틈이 아니라 애초 식당에 들어서면서 카드를 식당 사장에게 맡겨둔 것이었다. 우리가 자리에서 일어서서 나오는 것을 보고 식당 사장이 영수증을 막 뽑아서 건네줬다.

“아니, 대접해 드리려고 제가 식사를 청했는데, 왜 계산을?”
“기자, 산업부장 시절에 많이 얻어 먹었는데, 광고국은 접대 예산도 있어서 제가 꼭 대접하고 싶었습니다.”

불과 2년만에 광고국장에서 편집국으로 화려한 컴백을 했다. 편집국에서 가장 중요한 데스크 자리에 부국장으로 잠시 있다가 편집국장으로 승진했다. 광고국으로 발령이 났을 때 매몰차게 대했던 사람들이 어떻게 했을 것이라는 것은 직접 보지 않았지만 훤히 짐작이 됐다. 다시 편집국으로 온 것을 축하하는 전화 연락에 수화기 저편에서 건너온 말은 ‘내가 도와줄 일 있으면 뭐든 말만 해요’였다. 하지만 그런 관계에서는 수많은 기업 리스크 상황에서도 굳이 도움을 청해야 할 난처한 상황까지 가는 일도 생기지 않았다.

지금까지 근무한 곳이 여러 곳이지만 일정한 패턴이 있다. 근무를 시작한 초창기에는 점심 식사 후 비는 시간이나 좀 일찍 퇴근을 하게 되는 경우에는 그 주변을 이리 저리 다녀본다. 주변의 작고 많은 골목길이며 편의점, 식당, 하다 못해 세탁소 같은 곳도 알아두고 기왕이면 주기적으로 방문을 한다. 인사도 건네고 그렇게 낯이 익으면 대접이 달라진다.

회사에 십년을 근무한 사람보다 이직한 지 일년 남짓한 내가 회사 주위에 아는 사람이 훨씬 더 많다. 퇴근할 때 길을 가다 보면 가게 앞에 나와 있는 식당 주인들이 반갑게 아는 체를 한다. 그래 봐야 그런 식당에 한두 달에 한번 갈까 말까 하지만, 내가 팀원들과 삼겹살이라도 먹으려 가면 옆 테이블과는 다른 대접을 받는다. 좀 더 가면 그 옆에 세탁소 여사장님이 ‘수요일은 할인되니까 드라이 할 거 있으면 가져오세요’라고 또 아는 체를 한다. ‘담 주에 가져올게요’라고 맞장구치고 간다. 겨우 한두 블록 지나는 길이지만 심심치 않다.

‘그게 뭐’라고 할 수 있다. 그 가게 주인들은 손님을 조금이라도 더 끌어들이려고 낯이 익다 싶은 사람에게는 먼저 말을 거는 영업이라 할 수도 있다. 담배 한 개비 더 끼워 주지도 않는다. 한 때 커뮤니케이터 초창기에는 기자 한 명 더 알기 위해서, 술 마시고 자정이 넘은 시각에 귀가해놓고도 다시 술집으로 달려가곤 했다. ‘니네 출입도 아닌데 뭐 하러 피곤한 몸을 이끌고 거기까지 가냐?’고 핀잔도 많이 들었다. ‘팀 예산도 없는 놈이 생각 없이 낭비하고 다니냐?’고 구박 받기도 했다.

처음 5년 동안은 아무런 티도 나지 않았다. 몸만 고달프다는 생각도 들었다. 10년쯤이 되자 주위에 아는 사람이 많아지고 나를 응원해주고 지원해준다는 느낌이 들었다. 15년이 되자 상황이 달라짐을 느꼈고, 그렇게 20년을 한결 같이 해오고 보니 어느새 간달프가 되어 있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난쟁이 호빗을 구하기 위해 도움이 될 무리를 찾아와서 떡 하니 구해주는.

케빈 베이컨의 6단계 법칙에 따르면 지구상에서 여섯 단계만 거치면 모든 사람이 다 연결된다고 한다. 지금은 SNS를 통해서 지구 반대편에 있는 사람과도 친구가 되어 있는 세상이다. 서로 다른 언어에 생활영역도 다른데 가끔씩 친구를 맺자는 알림이 오곤 한다. 그렇게 나도 모르는 새에 지인 또는 친구의 범위는 넓어지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친구의 개념이 SNS상의 친구와는 다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이 내게 비결을 묻는다. ‘어떻게 그런 친분을 가질 수 있냐?’고. 10년 넘게 그렇게 서로 알고 지낸 결과일 뿐이다.

구동진 칼럼니스트·홍보인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9.04.23  15:2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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