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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동진의 기업과 커뮤니케이션] 발칵, 경악, 충격, 아찔, 상상밖, 파격, 역대급
   

우리 나라가 드라마는 참 잘 만든다. 웬만한 드라마에서는 매 회 웃음과 긴장과 박진감을 자아내며 전개가 되는데, 작가의 능력도 뛰어나지만 그것을 최단 시간에 영상으로까지 만들어 내는 능력은 더 출중한 것 같다. 매 회마다 작은 기승전결에 궁금증을 자아내는 마무리로 구성되어, 잠시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는 전개 때문에 해외에서까지 인기를 끌게 되는 모양이다.

예전에 동남아시아의 한 외국인이 예능프로그램에서 나와서 한 말이 인상 깊다. ‘한국 드라마는 특별히 재미 있기는 하지만, 한국 사람들은 어떻게 그렇게 많은 불치병들을 안고 살아가는 지 신기하다.’ 한국에서 인기가 좀 있다 싶은 드라마는 예외 없이 불치병과 기억상실, 출생의 비밀 같은 재료들이 섞여 있다. 이런 원한 관계가 복수에 복수를 낳으며 극적인 전개를 이끌어 간다.

소위 막장 드리마다. 실제로 막장이라는 갱도의 막다른 곳을 일컫는 말인데, 그런 곳에서 일하는 분들께 죄송하게도 이미 갈 데까지 가서 더할 것이 없는 그런 것들을 지칭하는 드라마를 말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이상한 소재들을 중심으로 개연성 없이 진행되는 드라마들이라 욕이 나오지만 안 보고는 못 배길 정도로 궁금하다. 때문에 시청률에 목을 매는 사람들은 무관심 보다는 욕을 먹더라도 높은 시청률을 바라고 또 바란다.

드라마만 그런 것이 아니라 글로 쓴 기사도 마찬가지다.
- 스포츠인과 연예인의 결혼은 ‘예상 못한 결과’다.
- 재혼한 모 연예인 부부는 한달 만에 결국 … ‘충격 소식’
- 예전의 잘 나가던 가수인데, 상상도 못한 근황,,,,파격 행보
- 모 스포츠선수가 고의성으로 가격을 당해 부상으로 ‘아찔’
- 웹툰 작가 그만 두나 …. ‘상상 밖 근황’
- 또 모 가수 한 명은 북한에서 사상문제로 끌려가 ,,, ‘발칵’
- 잘 나가는 스포츠스타의 슈퍼카,,,, ‘헉!’

불과 하루 이틀 사이에 매체 온라인 기사로 올라온 제목들을 추려본 것이다. 물론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기사의 제목은 이렇게 나왔어도, 실제 내용은 별 볼일 없다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사람의 심리는 묘해서 이런 제목을 일단 접하게 되면, 입으로는 ‘또 이런 쓸 데 없이 제목만 요란한 기사들’이라고 하면서도 손가락으로 클릭해서 내용을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이 들게 만든다.

 

발칵, 경악, 충격, 파격, 역대급으로 던져지는 미끼들

내용인즉슨 스포츠인과 연예인이 사귄다는 루머에 소속사도 아직 뚜렷한 입장을 내지 못했다. 재혼하고 모 프로그램에서 활동하던 차에 학업으로 인해 프로그램을 더 이상 진행하지 못할 뿐이었다. 지금도 유명한 가수이지만 연기에 한번 도전한단다. 아직 어린 선수인데 외국 선수가 고의로 다치게 한 것 아닌가 싶다 했고, 한 웹툰 작가는 방송 활동을 많이 하다 보니 소속사까지 생겨서 방송활동을 지원해준다고 했다. 또, 게스트로 나온 가수가 예전 방북 때 사상적으로 곤란을 겪었던 추억을 얘기했다. 영국의 프리미어리그에서 뛰어난 활약을 보이고 있는 축구 선수의 차가 아주 비싼 차종이었다.

누가 이런 것을 볼까 싶지만, 알고 보면 의외로 클릭수가 높다. 웬만한 언론사 치고 이런 연예 관련 뉴스를 메인 창에 내걸지 않은 곳이 없다. 이미 클릭해봐야 별 내용 없다는 것을 무수히 겪어서 알고 있지만, 그래도 내용을 한번 확인은 해 보고 싶어들 한다. 이른바 ‘낚시’다. 이렇게 낚시에 걸려든 네티즌들의 상당수는 그 사이트에 머물며 다른 비슷한 연예기사 아니면 다른 기사들을 둘러보게 된다. 때문에 미끼의 향기가 강할수록 많은 물고기가 잡히듯, 제목이 한눈에 띌 정도로 자극적인 것이 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게 된다. 별 거 아닌 게 효자 노릇 하는 셈이다.

요즘 사람들은 웬만한 것들에는 눈도 꿈쩍 하지 않는다. 튀지 않으면 살아 남기 힘들다. 미디어 세상에서 게스트들은 인신 공격적 발언이라도 해서 조금이라도 주목을 끌어 보려 애쓰고, 글로 승부를 걸어야 하는 기사는 제목에 온갖 낚시 밥을 걸어 놓는다. 과장되게 얘기하고 남의 얘기도 슬쩍 각색해서 마치 자기가 생생하게 경험한 것마냥 너스레를 떤다. 그런 모습에 사람들은 반응한다. 셀럽의 경험은 동경의 대상이다. 그러다 보니 요즘 뉴스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단어는 ‘발칵, 경악, 충격, 아찔, 상상 밖, 파격, 역대급’ 같은 과장되게 강조하는 말들이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일 잘하는 사람이 보상받고 승진하는 것 같지만 사실 알고 보면 일 잘하는 사람보다는 일 잘하는 듯 보이는 사람이 보상받고 승진한다. 입만 들고 다니면서 눈에 띄게 떠드는 사람들이 많다. 다 된 밥에 눈에 띄게 숟가락 잘 올리는 사람들이다.

지금은 은퇴했지만 예전에 모셨던 모 부사장이 기억난다. 그룹 회장단이 참석하고 각 계열사 핵심 임원들이 참석하는 그룹 행사를 서울의 모 유명 음식점 홀 전체를 빌려서 진행했던 적이 있었다. 당연히 그 식당은 회장이 단골로 자주 가는 곳이었고, 메뉴와 술도 회장 입맛에 맞는 것들로 준비했다. 선물도 비용은 저렴하지만 눈에 띄는 것으로 마련했고, 회장 만을 위한 옷도 한 벌 준비했다.

 

기가 막힌 타이밍이 보상과 승진을 부르는 현실

실무진들은 몇 시간 전부터 미리 가서 주차장부터 홀 안쪽에까지 청소 상태를 점검하고 테이블 배치, 현수막, 접수대, 음식 등등 챙길 수 있는 것들은 모두 챙겼다. 당연히 주차장에서부터 식당 입구 그리고 내부 홀 구석구석까지 직원들이 직접 쓰레기를 줍고 비질을 했다. 대여섯 명의 팀원들이 허리 한번 제대로 펴지 못한 채로 꼼꼼히 챙겨가며 일을 했다.

행사 시작 몇 십분 전에 부사장이 도착했다. 오자 마자 이리 저리 구석구석을 챙기더니 여기 저기에 입을 대기 시작했다. 줄을 잘 맞춰둔 테이블들을 이쪽으로 옮기라고 하더니 다시 원위치 시키는 가 하면, 바로 붙어 있는 현수막도 귀퉁이를 잘 붙여야 한다며 양쪽 끄트머리를 뗐다가 다시 붙였다. 그리고는 빗자루를 들고 홀 구석에서 비질을 시작했다.

“봐, 이렇게 구석에 먼지까지 깨끗하게 해야지.”
“….. 아까 저희들이 쓸고 닦고 했습니다.”
“그래도 이런 구석까지 꼼꼼히 봐야지, 봐 먼지가 있잖아?”

그때였다. 그룹 회장을 직접 수행하는 비서실장과 핵심계열사 대표 몇몇이 식당에 먼저 도착을 했다. 안으로 들어서면서 비질을 하고 있는 부사장을 보면서 한 마디씩 던졌다.

“어이구, 부사장님께서 직접 비질까지 하시고, 고생이 많으십니다.”
“회장님 모시는 행사인데, 제가 직접 챙겨야죠.”
“빗자루는 두시고 차나 한잔 하시죠? 회장님은 아마 좀 있어야 오실겁니다.”

나를 비롯한 팀원들은 ‘캬, 역시 다르구나. 빗자루 든 지 딱 1분만에, 절묘하다 절묘해!’라고 감탄해 마지 않았다. 그렇게 핵심 임원들과 함께 가면서 부사장의 멀어져 가는 목소리 몇 마디가 들렸다.

“바닥부터 테이블에 현수막까지 제가 신경 쓰지 않으면 제대로 되질 않아요.”
“역시 꼼꼼하고 일을 잘 챙기세요. 하하하”
아마도 회장의 비서실장과 핵심 계열사 대표들은 회장석에서 이런 보도 내용을 전달하지 않았을까 싶다. ‘잘 나가던 모 계열사 부사장, 상상도 못한 근황,,,,아찔 행보’

웬만한 사람들은 직장 내에서 사내 정치와 무관하게 그냥 일 열심히들 하고 지내고 싶어한다. 칭찬 받을 일이 있어도 ‘뭘 굳이’라며 뒤로 한 발짝 물러서고, 힘든 일이 있으면 ‘도와줄게요’라며 앞으로 나선다. 때로는 도움 주기 위해 거들던 일들이 오히려 일을 주도하던 실무진들은 나가 떨어지고, 대신 일을 떠맡게 되기도 한다. 일이 잘 되면 나가 떨어졌던 사람들에게 보상이 돌아가고, 잘못 되기라도 하면 원망만 잔뜩 사게 된다. 그걸 잘 알기에 사람들은 힘든 일을 도맡기 보다는 입만 들고 하는 시늉만 한다.

예전에 가수 싸이의 뮤직비디오 동영상이 한국 가요 중 처음으로 1억 조회를 돌파 하는 데에 52일이 걸렸는데, 최근에 나온 모 걸그룹의 신곡은 공개된 지 2일 14시간 만에 1억 조회를 넘어섰다. K팝의 위력이 상당하다. 덕분에 이런 뮤직비디오에 붙는 광고 단가도 올랐단다. 1,000회 광고 노출당 가격인 CPM이 2달러에서 3달러로 무려 50%나 인상되어 연예기획사의 수입도 늘어났다. 시장조사업체인 이마케터에 따르면 글로벌 유튜브 이용자 수가 올해는 16억명을 훌쩍 넘어설 것이라 한다. 잘 낚은 이용자들 덕분에 수입도 는다. 사람 사는 세상에 미끼와 낚시질이 없어질 순 없겠지만, 조직의 리더라면 ‘헉, 발칵, 파격, 역대급’ 같은 미끼 보다는 내용을 잘 봐야 한다. 그리고 기왕에 보는 거 내용과 함께 행간의 의미도 읽을 줄을 알아야 하겠다.

구동진 칼럼니스트·홍보인  |  expert@econovill.com  |  승인 2019.04.16  15: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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