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동규 기자] “어떤 산업에서 연간 40%대의 성장률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정책의 영향이 큰 걸 부정할 수 없지만, 배터리, PCS, PMS와 같은 ESS의 핵심 요소에서 경쟁력이 없었으면 한국은 ESS시장 주도국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화재로 잠시 중단된 ESS산업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묘안이 지금 필요한 겁니다.” 한 ESS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ESS시장에서 말 그대로 기록적인 성장을 기록한 한국 ESS시장은 어떻게 신화 같은 이야기를 쓸 수 있었을까.

세계시장에서 ESS는 납축전지, 양수발전, 압축공기 등으로 다양하게 분화돼 있지만 흔히 국내에서 말하는 ESS는 배터리 기반, 정확히는 리튬이온 배터리 기반 ESS가 대부분이다. 고출력의 빠른 응답속도를 보유한 리튬이온배터리(LiB)를 선호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ESS의 4대 핵심요소(배터리, BMS, PCS, PMS) 중 세계적으로 뛰어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는 배터리 분야에서 LG화학, 삼성SDI, SK이노베이션과 같은 회사가 있다는 점도 리튬이온 배터리 기반 ESS가 국내서 활성화된 이유로 꼽힌다.

▲ ESS컨테이너. 출처=삼성SDI

정부, 정책으로 한국 ESS 시장 키우다

한국 ESS시장은 정부가 주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2017년부터 2018년 사이 한국의 ESS시장은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했는데 정부의 각종 지원책이 큰 역할을 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8년 상반기에 국내에 보급된 ESS용량은 1800MWh(메가와트시)였는데 이는 직전연도인 2017년 상반기 보급량인 89MWh 대비 20배 이상 증가한 규모다. 2018년 상반기 피크저감용 ESS는 1129MWh로 2017년 동기 대비 226배나 증가했다.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연계용은 683MWh가 구축됐다.

최근 2년간 국내 ESS시장이 성장한 가장 큰 이유는 피크저감용 ESS와 신재생연계용 ESS의 경제성을 높이게 한 정부 지원책이다. 정부는 2015년부터 피크저감을 견인한 특례요금제를 도입했다. 골자는 ESS에 의한 피크감축 추정량에 해당하는 기본요금을 최대 3배까지 할인해 주는 것이었다. 충전을 위한 경부하 시간대 전력 요금의 50%를 할인해 준 것도 피크저감용 ESS 시장 확대를 이끌었다.

신재생에너지 연계ESS에 대한 REC 가중치 적용도 신재생에너지 ESS시장의 성장의 촉매가 됐다. 정부는 2012년부터 발전사업자에게 총 발전량의 일정비율을 신재생에너지로 공급하도록 의무화한 제도인 RPS(Renewable Portfolio Standard)를 도입했다. 이 제도 안에는 REC(Renewable Energy Certificate)라는 인증서가 있는데, 발전사업자들은 자체발전으로 RPS 공급량을 채우지 못할 경우 시장서 거래되는 REC를 구매해 의무량을 채워야 한다.

2016년 9월 정부는 태양광·풍력 연계 ESS를 장려하기 위해 REC 가중치를 4.5에서 5까지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기존에 100원에 일정량의 전기를 구매했다면 가중치에 따라 최대 500원에 전기를 구매해 주는 것이다. 이에 신재생에너지 연계ESS의 경제성이 크게 향상되면서 ESS시설이 급속도로 설치됐다.

삼성증권의 분석에 따르면 2016년 가중치 부여 이전 REC기준으로 1MW의 태양광 발전소와 2.8MWh의 ESS를 설치하면 투자비는 약 35억원이 들어가고, 매년 나오는 매출액은 2억원에서 3억원 정도, 순이익은 4000만원에서 1억원대로 투자금 회수까지 최대 80년 이상 걸리는 경제성을 보여줬다. 그러나 2017년 이후 REC가중치가 5로 변경된 이후 동일한 설비를 설치하면 투자회수기간은 6년 반 정도로 줄어들게 돼 ESS의 경제성이 크게 개선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REC 가중치는 2020년 이후 풍력은 4.5에서 4로, 태양광은 5에서 4.5로 다소 줄지만 여전히 가중치가 높은 편이어서 신재생연계 ESS 수요는 꾸준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세계 ESS시장도 커진다

전 세계 ESS시장도 꾸준히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ESS 수요는 2017년 19.5GWh에서 2025년 121GWh로 8년 만에 6배 이상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이 중 리튬이온 배터리 기반 ESS는 같은 기간 4.5GWh 규모에서 77.6GWh 규모가 될 것으로 예상됐다. 지역별로 보면 2019년까지 한국이 주도하고, 2020년부터 2025년까지는 미국이 주도하는 시장이 될 것으로 나타났다.

세계 ESS시장이 커지는 이유는 국가별로 다양한 ‘전력수급 안정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전력계통 노후화로 인한 정전 대비, 일본은 지진으로 인한 비상전원 확보, 독일은 신재생에너지 확대가 ESS를 필요로 하는 이유로 각각 꼽힌다.

조현렬 삼성증권 연구원은 “블랙아웃(정전)은 필요한 전기를 제때 공급하지 못해서 발생하는데, 이를 방지하려면 필요 계통마다 수급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리하는 전력관리시스템이 필요하다”면서 “특히 전력 수요가 많은 계절에 전력 수요 피크 상황을 공급자가 적극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ESS가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국내외 수요가 증가하는 ESS시장은 한국 ESS업계가 놓칠 수 없는 시장이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불난 뒤에 업계 경쟁력이 더 강화된다면 한국 ESS산업은 다시 한 번 반등을 노릴 수 있다. 정부와 업계의 현명한 판단과 결정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 SK이노베이션 울산CLX ESS 전경. 출처=SK이노베이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