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rdern'이라는 말을 떠올려보자. 모던, 그래 바로 ‘현대’라고 번역되는 그 단어 말이다. 현대? 지금의 시대? 지금을 말하는 건가? 지금의 무엇을 떠올리라는 거지? 아마 이런 생각이 들 수도 있겠지만, 내가 지금부터 말하고자 하는 모던은 용어로써의 현대다. 이쯤 말하면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생기겠지. ‘그래, 현대. 어쩌라고?’

이야기가 벌써 조금은 답답해졌을 당신을 위해 논의를 조금 더 진전시켜보자. 모던은 사실 늘 모던이 아니었다. 또한 모던은 언젠가 모던이 아니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중세 혹은 근대라고 부르는 시대는 누군가의 모던이었으며, 우리의 모던 또한 언젠가는 모던이 아닌 다른 말로 불리게 될 날이 올 것이라는 말이다. ’현대’는 늘 변하게 마련이다.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모던의 어원인 라틴어 mordernus는 중세 초기인 5세기 말에 등장한 용어다. 당시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다지 아마. ‘아니, 저들은 하나님도 믿지 않았다니! 우리 ‘현대’인들에 비하면 저들은 얼마나 미개하단 말인가!’

굳이 이렇게 생각하지 않은 사람들도 무언가 자신들의 시대가 이전과는 ‘다름’을 느낀 것만은 분명하다. 이들은 결국 지금 혹은 현재를 뜻하는 라틴어 부사 ‘modo’를 변형시켜 ‘modernus’라는 새로운 용어를 만들었으니 말이다.

이 말은 이후 1500년 넘게 그당시의 ‘현대’인들이 자신의 시대와 이전의 시대를 구분하는 용도로 사용되어 왔다. 중세가 한창 진행 중이던 10세기에 현재와 과거를 비교하며 우열을 따지기 위해 사용되었고, 이후에도 12세기의 베르나르, 14세기의 페트라르카 등이 이 용어를 통해 자신들이 살고 있는 시대가 바로 중세라는 암흑기를 뚫고 나아가는 기점임을 엄숙하게 선언했다.

그렇지만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세 혹은 그 즈음의 시기는 우습고 한심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많다. (물론 지금도 그런 사람이 아주 없는 건 아니지만)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무언가에 자신의 전부를 다 바쳤고, 주로 그 존재의 증명을 위해 자신들의 온갖 지식과 지혜를 총동원했으니 말이다.

유럽 혹은 서양 문명의 1000년을 집어삼킨, 신이라 불리는 그 거대한 존재는 영화 <이웃집에 신이 산다> 속에선 고작 브뤼셀의 한 아파트에 살며 인간들을 골탕먹이기나 좋아하는 배 나온 아저씨일 뿐이다. 인류는 그가 심심해서 만든 피조물이며, 몰려오는 권태를 참지 못한 그는 집에 불을 내고, 홍수를 일으키고, 비행기를 떨어뜨리는 행동을 소일거리 삼는다. 빵이 꼭 잼을 바른 면으로 떨어지는 이유도, 접시가 꼭 설거지가 끝난 뒤에 깨진 이유는 모두 그가 만든 ‘보편짜증유발의 법칙’ 때문이다.

만약 이 이야기를 중세, 아니 그러니까 그 시대의 현대인들이 봤다면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아마 누군가는 불경하다며 잔뜩 화가 난 목소리로 고래고래 소리를 지를 거고, 또다른 누군가는 내가 그리 믿었던 존재와 자신들의 시대가 이런 취급을 받는 것이냐며 놀람을 금치 못할 게다.

이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천 년, 혹은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지난 뒤 지구 혹은 다른 행성에서 살고 있을 우리의 후손들은 지금 우리들의 현대를 무어라 평가할지 궁금했다. 아마 이쯤 되지 않을까? ‘제 잘난 줄 알고 과학문명이니 어쩌니 하며 환경파괴를 일삼다가 멸망 직전까지 갔던 무능한 시대’, ‘타인을 깎아 내리고 제 이익만을 취하는 것이 본성이라 믿었던 미개한 시대’, ‘자본주의가 인류 발전의 최종 단계라고 본 한심하기 짝이 없는 시대.’

이대로면 우리는 언젠가, 누군가의 중세에 불과해질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