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전현수 기자] 네오플의 창업주인 허민 전 네오플 대표가 18번의 게임 흥행 실패 이후 ‘던전앤파이터’를 개발했다는 건 업계 유명 일화다. 던전앤파이터 흥행으로 네오플은 이제 연간 매출액 1조원 이상을 기록하는 기업이 됐으며, 허 대표는 2008년 넥슨에 네오플을 매각하며 수천억원의 자산을 가진 부호가 됐다.

이처럼 게임 산업은 신작이 흥행만 하면 회사가 이전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변신하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단일 게임의 행보가 중요하다. 실패했을 때의 타격이 크지만 성공했을 때의 성과는 달콤한 셈이다. 

올해 기사회생 주인공은?

올해 기업을 구할 ‘구원투수’는 어떤 게임이 될지가 관건이다. 위메이드는 2018년 매출액 1271억원, 영업손실 362억원, 당기순손실 485억원을 기록했다. 전년에 비해 매출액은 증가했지만, 더불어 늘어난 비용 탓에 결국 적자를 냈다. 국내에 내놓은 MMORPG ‘이카루스M’이 기대 이하의 성적을 보여준 탓이 컸다.

위메이드는 ‘미르의전설’ IP로 재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오래된 인기 IP에 기대를 걸고 있다는 점에서 지난해 라그나로크M으로 성공을 거둔 그라비티와 닮았다. 위메이드는 올해 미르의전설 IP를 활용한 자체 개발 모바일 게임 ‘미르4’, ‘미르M’, ‘미르W’를 연내 순차적으로 출시하는 게 목표다. 미르 IP에 대한 수요는 중국에선 이미 검증된 상태이고 국내에서도 미르의전설의 향수를 가지고 있는 게이머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가능성은 열려있다.

1세대 모바일 게임 업체 게임빌도 최근 몇 년간 영업손실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신작 성과가 신통치 않았고 게임빌 프로야구 등 기대작의 출시가 미뤄지고 있다. 올해 기대를 걸어볼 게임은 해외 순차 출시를 이어가고 있는 MMORPG ‘탈리온’과 수집형 RPG ‘엘룬’ 등이 있다. 특히 탈리온은 앞서 론칭한 일본·동남아 등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두며 매출 확대에 기여하고 있다. 또한 게임빌 프로야구의 새로운 시리즈인 ‘게임빌 프로야구 슈퍼스타즈’를 3분기 출시할 예정이다. 글로벌 누적 7000만 다운로드를 넘긴 시리즈인 만큼 기대감은 크다.

네시삼십삼분(433)의 부활이 가능할지도 관심사다. 433은 2015년부터 연결 기준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서며 인고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다행히 지난해 7월 149개국에 출시한 모바일 게임 ‘복싱스타’가 19개 나라 앱스토어에서 1위를 달성하고 출시 100일도 되지 않아 누적 1000만 다운로드를 달성하는 성과를 얻었다. 복싱스타의 흥행으로 네시삼십삼분 별도 실적으로는 2017년 영업손실 187억원에서 2018년 영업손실이 12억으로 크게 줄었다. 다만 종속 기업을 포함한 연결 기준으로는 전년과 비슷한 영업손실 432억원을 기록했다.

433은 올해 모바일 자체 개발작 2종으로 실적 회복을 노린다. 턴제 RPG 데빌크래셔와 ‘프로젝트F’를 연내 출시 목표로 준비 중이다. 또한 오는 6월 모바일 게임 ‘검협’을 퍼블리싱할 것을 검토하고 있다.

재도약을 노리는 게임 업체들이 신작 게임에 사활을 걸고 있는 가운데, 올해 흥행의 영광은 어떤 게임에게 갈지 귀추가 주목된다.

힘들던 기업을 일으켜준 효자 게임들의 활약은 지난해에도 눈에 띄었다. 그라비티의 ‘라그나로크M’과 펍지의 ‘배틀그라운드’ 등이 그 예다. 

실패 거듭하다 탄생한 ‘배틀그라운드’… 새로운 장르 개척

▲ 배틀그라운드. 출처=펍지

지난 2017년 3월 스팀에 혜성처럼 등장한 국산 게임이 있었다. 30명 남짓한 인력이 만든 이 FPS 게임은 출시 3일 만에 100억원이 넘는 매출을 기록했다. 대박의 시작이었다. 이 게임은 펍지의 ‘배틀그라운드’다. 당시 얼리엑세스로 선보인 배틀그라운드는 같은 해 12월 정식 출시했다. 11월엔 카카오게임즈를 퍼블리셔로 PC 온라인으로도 서비스됐다.

배틀그라운드의 성과는 게임 업계뿐만 아니라 유저들에게도 익히 알려져 있다. 슈퍼데이터에 따르면 배틀그라운드는 2017년 7600억원의 수익을 냈고 2018년엔 1조1500억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집계됐다. 전 세계 유로 게임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또한 지난해 통계는 새로 출시한 배틀그라운드의 모바일 버전의 매출을 반영하지 않은 결과다.

배틀그라운드의 성공은 지난해 4월 블루홀(현 크래프톤)이 펍지 직원에게 1인당 최대 50억원의 성과급을 지급한다는 소식이 나오며 시선을 더욱 집중시켰다. 배들그라운드의 기획 단계부터 참여한 멤버 약 20명은 10억원에서 50억원 수준의 인센티브를 지급받았고 게임 출시 이후 입사한 직원 약 300명에게도 평균 3000만원 수준의 성과급을 지급했다.

배틀그라운드의 성공은 국내 게임 업계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다. 우선, 기존에 한국에서 나오지 않았던 유형의 성공 사례다. 배틀그라운드는 부분유료화 모델이 아닌 유료 패키지 게임 형태로 스팀에서 성공을 거뒀다. 물론 게임 내에 스킨 등 부분 유료화 아이템 추가 결제가 있지만, 2018년 6월 기준으로 PC·콘솔 누적 판매량이 5000만장이 넘은 걸 보면 그 자체로도 초대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일부 지역이 아닌 전 세계 시장에서 유저들의 선택을 받았다는 의미다.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는 것도 포인트다. 배틀그라운드는 사실상 현재 대세가 된 ‘배틀로얄’ 게임 장르의 유행을 이끌었다. 새로운 FPS의 재미를 제시했다는 점은 이 게임의 주요 성공 요인으로도 꼽힌다. 배틀그라운드 이후 포트나이트에 배틀로얄 모드가 추가되고, 에이펙스 레전드 등 인기 게임이 출시돼 인기를 끌고 있다.

펍지는 배틀그라운드로 국내 e스포츠 게임의 가능성을 열었다. 우리나라는 글로벌 e스포츠 강국이지만 정작 국내산 게임이 세계에서 e스포츠 종목으로 인기를 끄는 경우는 드물었다. 펍지는 배틀그라운드를 통해 글로벌 e스포츠로의 위상을 다지고 있다. 아직은 대회의 파급력이 리그오브레전드, 스타크래프트 등에 견줄 정도는 아니지만 관련 시도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배틀그라운드의 등장 이후 펍지의 모회사인 크래프톤(구 블루홀)의 실적은 크게 변했다. 크래프톤은 펍지 지분 100%를 가지고 있다. 크래프톤은 2017년 매출액 3104억원, 영업이익 266억원을 기록했지만 다음해인 2018년 매출액이 1조1120억원으로 수직 상승하며 ‘매출 1조 클럽’에 이름을 올렸다. 영업이익은 3003억원으로 집계됐다. ‘테라’의 성공 이후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던 크래프톤을 살린 셈이다. 

▲ 크래프톤 실적 추이. 출처=DART

배틀그라운드의 성공 이전에도 많은 실패가 있었다. 펍지의 대표이자 배틀그라운드 개발을 총괄한 김창한 PD는 15년간 온라인 게임 3개를 만들었지만 모두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고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 있다. 김 대표는 인터뷰를 통해 “(배틀그라운드 개발을 통해)성공은 결과일 뿐이지 목표가 되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면서 “가능성에 집중해야지 성공에 집착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라그나로크 IP 포기 안 한 그라비티 고집, ‘라그나로크M’으로 결실

▲ 라그나로크 온라인 이미지. 출처=그라비티

그라비티는 2000년대 초반 PC 온라인 게임 라그나로크를 성공시키며 크게 성장한 게임사다. 회사는 라그나로크 성공을 발판으로 국내 게임사 최초로 나스닥에 상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라그나로크를 잇는 별다른 신작이 없어 회사는 정체를 겪었다.

2012년 그라비티는 모바일 게임 사업에 뛰어들었다. 키워드는 라그나로크였다. 그라비티는 자회사 네오싸이언을 통해 ‘라그나로크 발키리의 반란’, ‘라그나로크 길드마스터즈’, ‘라그나로크 컨커’, ‘라그나로크 바이올렛’, ‘라그나로크 베르사르크’ 등 모바일 게임을 쏟아냈다. 유명 IP 게임인 만큼 출시 초반엔 주목을 받았지만 모두 오래 가진 못했다. 과거에 영광을 누린 라그나로크 IP를 활용했음에도 게임은 연이어 흥행에 실패했다.

그라비티의 실적은 자연스럽게 내리막을 탔다. 그라비티는 2012년 매출액 520억원, 영업이익 727원을 기록했지만 2013년부터 영업이익이 적자로 돌아섰다. 영업손실은 3년간 이어졌다. 매출액은 그사이 69% 급감했다.

▲ 그라비티 실적 추이. 출처=딥서치, 그라비티

그라비티는 라그나로크를 이용한 게임 개발을 이어가는 한편, 중국 개발사와 손을 잡는 것으로 전략을 바꿨다. 이로써 중국의 드림 스퀘어와 심동 네트워크가 합작해 ‘라그나로크M(중국 서비스명: 선경전설 RO)’을 개발하고 2017년 3월 중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라그나로크M은 중국 지역에서 성과를 보이며 같은 해 10월 대만으로 출시 영역을 넓혔다. 대만 현지에선 구글플레이와 앱스토어 양대 마켓에서 10주간 매출 1위를 차지할 만큼 눈에 띄는 성과를 냈다.

라그나로크M의 중국·대만 지역 성과로 그라비티는 살아났다. 2017년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각각 132%, 254% 급증한 514억원, 39억원을 기록했다. 기세를 이어가 라그나로크M은 한국 시장에 들어왔다. 중국과 대만 지역 흥행에 성공한 만큼 한국 시장에서 먹힐 가능성도 높았다. 게다가 라그나로크는 우리나라에서 유력 IP로 통한다. 과거 라그나로크 유저들의 호응을 이끌어내며 라그나로크M은 국내에서 다시 한 번 도약했다.

국내의 성과가 더해져 그라비티는 지난해 매출액 1987억원, 영업이익 405억원, 순이익 327억원을 기록했다. 이는 설립 이래 최고의 성과다. 유력 IP 활용을 포기하지 않고 전략을 조금씩 수정한 그라비티의 행보는 결국 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