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PEC 국가들의 최근 혼란이 이 카르텔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감산을 강화하는 격이되면서 국제 유가를 더욱 부추기고 있다.   출처= GeoPol Intelligence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베네수엘라는 끝 모를 정정 불안에 빠져 있다. 이란은 미국의 제재와 씨름하고 있다. 리비아의 내전은 더욱 격화되고 있다. 이들 3개 OPEC 회원국들의 혼돈은 미국의 유가를 다시 배럴당 64달러 이상으로 끌어 올렸다.  

최근 OPEC의 이런 혼란이 이 카르텔의 맹주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감산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현재의 고유가와 예산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생산과 대미 수출을 모두 감축시켰다.

미국 원유 생산량이 사상 최고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유가는 지난해 크리스마스 이브에 배럴당 42.53달러까지 떨어진 이후 50%나 급등했다. 그리고 미국 경제에 여러 가지 성장 둔화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가운데 유가는 계속 상승하고 있다.

에너지 분야 정보분석업체인 S&P 글로벌플랫츠(S&P Global Platts)의 공급 및 생산 분석팀장 김신 애널리스트는 CNN과의 인터뷰에서 "리비아 분쟁의 확대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석유 생산에 새로운 위험 요인이 더 커졌다"며 "이에 따라 유류 공급과 생산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미국 유가는 9일(현지시간) 오전 배럴당 64.79달러로 5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후 63.98 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네덜란드 라보뱅크(Rabobank)의 에너지 전략가 라이언 피츠마우리스는 "여름 이전에 유가가 70달러를 돌파하더라도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기준인 브렌트유는 11월 중순 이후 처음으로 배럴당 71달러에 다가섰다.

심각한 안보 위기에 처한 리비아

최근 며칠간 발생한 충돌로 폐허가 된 리비아는 하루 원유 130만 배럴 생산량이 위험에 처하게 됐다. 유엔(UN)의 지원을 받은 리비아 정부는 트리폴리의 공항 통제권을 잠시 잃었다가 지난 주말 반군의 공격을 물리쳤다고 밝혔다.

투자은행 RBC 캐피털 마케츠(RBC Capital Markets)의 헬리마 크로프트 글로벌 상품전략 책임자는 고객들에게 보내는 메모에서 "OPEC의 고질적인 '문제아' 리비아가 '심각한 안보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썼다.

미군은 지난 주말, 리비아의 "안보 상황이 점점 더 복잡하고 예측할 수 없게 되었다”며 미군 파견대를 철수시켰다.

리비아의 석유 생산은 피비린내 나는 내전으로 인해 수 년 동안 열외로 취급되었다가 최근 몇 달 동안 생산이 다시 증가하고 있다.

실제 OPEC의 공급이 (리비아 사태로 인해) 아직 영향을 받지 않았지만, 석유 거래자들은 상황을 면밀히 주시하고 있다.

BP 캐피털 어드바이저스(BP Capital Advisors)의 벤 쿡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시장이 매우 불안하다. 리비아가 카르텔에서 빠지게 되면 유가는 현재 수준에서 5달러에서 10달러까지 쉽게 치솟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제재 받는 이란, 불안에 휩싸인 베네수엘라

현재 리비아가 전쟁의 휩싸여 있지만, 실제 국제 석유 공급에 더 큰 차질을 빚게 만드는 것은 베네수엘라의 혼란이다.

베네수엘라는 트럼프 정부가 국영석유회사 PDVSA에 제재를 가함으로써 큰 타격을 입었다. 미국 정부 통계에 따르면, 미국은 3월 마지막 3주 동안 베네수엘라로부터 한 방울의 원유도 수입하지 않았다. 지난 1월 말 제재가 발표되기 전까지 미국은 하루 60만 배럴 안팎의 원유를 매주 베네수엘라로부터 수입해 왔다.

1973년 정부가 베네수엘라로부터의 원유 수입 지표를 추적하기 시작한 이후, 미국은 베네수엘라로부터 석유를 수입하지 않은 달이 없다.

게다가 베네수엘라의 대규모 정전으로 인해 이 나라의 석유 생산량은 더욱 악화되었고, 이 나라에 대한 인도주의적 위기까지 거론되었다.

한편 석유 투자자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몇몇 국가들에 대해 부여한 이란산 석유 수입 금지 면제를 연장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지난해 여름 시행한 이 면제 정책은 결국 공급 과잉을 초래해 원유 가격이 약세를 면치 못하게 된 원인이 되었다.

BP 캐피털의 벤 쿡 매니저는 지난해 가을에 있었던 중간 선거를 지적하며 "그런 면제 정책은 대부분 정치적으로 추진된 것이지만, 이번에는 그런 구실이 없다"고 말했다.

OPEC의 동맹국들은 오는 6월 비엔나에서 만나면 한 차례 승리의 축배를 들지 모른다. 그들의 감산 정책은 유가를 단기간에 올리는데 성공했다.

사우디아라비아가 특히 적극적이었다. 세계 최대 석유 수출국 사우디는 시장 균형에 대한 의지를 보여주기 위한 방편으로 대미 석유 수출을 대폭 줄였다.

미국의 셰일 오일 붐은?

유가 상승의 또 다른 동력은 헤지펀드와 몇몇 금융 회사들이 조성한 낙관적 투자였다.

지난해 유가가 약세에 빠진 후, 이 추세를 놓치지 않고 거래자들은 최근 몇 달 동안 원유에 꾸준히 베팅해 왔다. 이들의 투기적 입장이 가격 변동을 더욱 조장했다.

라보뱅크의 피츠마우리스 전략가는 "정말 극적이었다. 물가가 반등하면서 모든 돈이 다시 시장에 쏟아져 들어왔다. 그들은 확실하게 싼 가격에 석유를 확보했다”고 분석했다.

놀라운 것은 미국이 석유 생산을 크게 늘리고 있는 가운데 유가가 반등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에너지정보국(Energy Information Administration)에 따르면 미국은 2018년에 하루 평균 1096만 배럴을 공급해 전년보다 17%나 생산을 늘렸다. 12월에는 월별 최고치인 하루 1196만 배럴을 기록했다.

미국이 셰일 오일의 생산을 줄일 것 같지는 않다. EIA는 셰일 오일 붐에 의해 늘어난 미국의 석유생산량은 2019년에는 하루 1230만 배럴, 2020년에는 하루 1300만 배럴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트럼프의 대응과 러시아의 감산 반대

유가 급등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으로 하여금 OPEC에 대한 비판의 고삐를 다시 죄게 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전에 OPEC을 공격했을 때 유가는 단기적으로 하락세를 보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또 국가 비상용 석유인 전략비축유(Strategic Petroleum Reserve, 미국이 1973년 석유위기 이후 전쟁이나 수급차질 등에 대응하기 위해 비축해 놓은 석유)를 방출할 수도 있다.

그러나 피츠마우리스 전략가는 그러한 조치가 지속적인 대책이 되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정부는 유가가 최고 수준에 오를 때까지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총알을 사용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행히 9일 국제 유가는 진정세를 보였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고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무역갈등으로 위험회피 성향이 커졌다.

CNBC는 러시아가 ‘감산조치 연장’에 부정적 뜻을 보인 점도 유가 진정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도했다.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지금 수준의 유가가 적절하다고 말한데 이어 알렉산드르 노박 에너지부 장관도 “곧 시장 균형이 이루어질 것”이라며 “감산을 연장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