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값이 효능·효과와 경제성 등의 부문에 있어서 합리적이지 못하면 벌어지는 일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우선 보령제약의 고혈압 치료제 ‘카나브’는 효능이 우수해 많은 처방에 따라 매출을 확보하고 있지만, 낮은 약가에 따라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다. 업계 관계자는 “제약사도 기업이다. 최대한 이익이 남아야 이를 다시 연구개발(R&D)에 투자해 새로운 약물 개발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 번째는 의약품이 애초에 출시되지 않는 점이다. 동아ST의 슈퍼 항생제와 대화제약의 경구용 항암제는 지나치게 낮은 약가로 인해 국내에서 시판조차 하지 못했다. 국내에서 낮은 약가로 판매되면, 해외에 수출할 시 해당 국가의 감독당국이 한국에서의 약가를 기준으로 두고 가격을 낮출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두 부문 모두 제약사의 지속가능한 경영과 환자가 치료 혜택을 받지 못한다는 점에서 부담은 환자의 몫으로 돌아가므로 약가개선이 시급한 실정이다.

보령제약 고혈압신약 ‘카나브’… 더 성장할 수 있었다

한국의 낮은 약가 정책에도 탁월한 효능으로 꾸준히 매출을 지속하고 있는 의약품이 있다. 보령제약이 개발한 고혈압신약 ‘카나브(성분명 피마사르탄)’다. 의약품 시장조사기업 유비스트에 따르면 카나브 패밀리인 ‘카나브’, ‘카나브플러스(이뇨 복합제)’, ‘듀카브(암로디핀 복합제)’, ‘투베로(로수바스타틴, 고지혈증 복합제)’ 4개 품목은 2018년 10월 월매출 61억8000만원을 돌파했다.

▲ 효능효과가 우수해 지속해서 매출을 확보하고 있는 보령제약의 고혈압 치료제 카나브패밀리 제품 모습. 출처=보령제약

업계에 따르면 멕시코 고혈압치료제 시장에서 1위에 등극하기도 했던 카나브는 60㎎ 기준 20정 20포장이 약 610달러(약 70만원)다. 한 포장으로 계산하면 30.5달러(약 3만4000원)이며, 한 정으로 보면 7.625달러(약 1700원)다. 그러나 보험약가를 기준으로 같은 용량 카나브 한 정은 국내에서 665원이다. 2분의 1도 되지 않는 가격이다. 카나브 120㎎는 2014년 사용량에 따른 약가 인하 이후 2017년 실거래가 조사 조정을 통해 0.9% 추가로 인하되기도 했다.

카나브의 사정은 시벡스트로에 비해 나은 편으로 볼 수 있다. 보령제약은 올해 카나브 처방액 1000억원에 도전한다. 해외 진출도 속속 가시화되고 있다. 51개국에서 약 4억7000만달러(약 5360억원)에 이르는 기술수출·판매 등 계약을 체결했고, 18개국에서 판매 허가를 받았다. 2018년에는 중남미뿐만 아니라 러시아,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에서도 출시됐다.

보령제약은 연면적 2만8551㎡ 규모인 예산신공장에 기반을 두고 카나브 글로벌화에 더 속도를 낼 방침이다. 잘 만든 의약품 하나가 공장 증설·일자리 확충 등 부가가치를 일으키고 있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보령제약은 약 144명의 연구인력을 두고 있다. 지난해 기준으로는 연구개발비 약 333억원을 사용했다”면서 “당연한 얘기지만, 국내 약가가 더 합리적이었다면 처방 1000억원 돌파는 물론 기업가치를 높이는 데 일조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슈퍼박테리아 감염 지속 증가… 약 있어도 활용 못한다

질병관리본부는 2018년 11월 슈퍼 박테리아로 불리는 ‘카바페넴 내성 장내세균속균종 감염증(CRE)’를 앓고 있는 사람이 1만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감염자는 1만137명으로 2017년에 비해 약 두 배 늘은 것으로 확인됐다.

CRE는 최후의 항생제로 불리는 카바페넴 계열을 비롯한 대부분의 항생제로 치료를 할 수 없다. 이는 감염자의 상처나 대변 등을 통해 감염되는데, 감염자가 사용한 물건과 침구류 등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항생제 내성균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한 의사는 “CRE는 중환자실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다제내성균으로 감염된 중환자의 상태가 나아져 요양병원으로 이동, 요양병원의 다른 환자가 내성균에 감염돼 다시 중환자실로 돌아오는 악순환이 반복 중”이라고 설명했다.

▲ 약가 비교. 출처=제약업계

다제내성균 등에 대한 넓은 효능이 입증된 글로벌 제약사 MSD의 항생제 ‘저박사’는 비급여 처방이 이뤄지고 있고, 해외에서의 허가가 10년 이상 지나 복제약(제네릭)까지 출시된 ‘답토마이신’은 국내에 도입조차 되지 않았다.

한국 제약사인 동아ST가 개발한 ‘시벡스트로’는 국내 허가를 받고 급여목록에 등재됐지만, 시장성이 극도로 낮아 출시되지 않았다. 이는 결국 2018년 12월 1일을 기준으로 건강보험급여기준에서 삭제됐다. 시벡스트로의 1병 가격은 미국에서 약 292~313달러로 약 34만원 수준이지만, 국내에서는 12만8230원으로 책정됐다. 의약 선진국의 3분의 1 수준이다. 해당 가격으로 국내에 약을 출시하면 해외시장에서도 약가를 낮추라는 압박이 있을 수 있어 사실상 기업에는 큰 부담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풀이된다.

슈퍼박테리아 항생제 개발은 눈에 띄지 않고 있지만 그마저도 국내보다 해외 출시를 목표로 한 전략이 두드러지고 있다. 국내에서는 합리적인 약값을 받을 수 없다는 인식이 지배적이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인트론바이오는 후보물질을 해외에 기술수출했고, 레고켐바이오와 크리스탈지노믹스 등은 미국에서 임상을 진행하고 있다. 한 의사는 “국내는 새로운 항생제가 출시돼도 도입이 늦거나 비급여로 허가돼 환자 부담이 크고, 출시되지 않는 항생제도 많다”면서 “상급병원 중환자실뿐만 아니라 내성균에 취약한 요양병원과 약가 관리가 종합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리포락셀, 환자 편의성 높이고 부작용 줄였지만 출시 어려워

대화제약이 개발한 항암제 ‘리포락셀’은 주사제로만 시판 중인 파클리탁셀을 경구용으로 제형 변경한 개량신약이다. 해당 성분의 의약품으로는 ‘탁솔’이 유명하다. 대화제약은 자체 기술인 DH-LASED 플랫폼을 활용, 파클리탁셀을 경구용 제형에 성공한 것이다. 대화제약은 2017년 중국 RMX 바이오파마에 리포락셀을 총 계약금 약 283억원 규모로 기술수출했다. 이는 중국에서 임상 3상이 진행 중이다.

▲ 파트 2 낮은 약가에 따른 의약품 출시 현황. 출처=제약업계

마시는 방법을 활용하는 리포락셀은 병원을 찾아 약 3시간 동안 주사를 맞아야 하는 정맥제형(IV)보다 편의성이 높다. 또 약 흡수율이 5배 빠르고 구토·탈모 등 부작용이 적으면서 정맥 주사 시 요구되는 보조제 처치에 따른 호흡곤란과 전신 두드러기, 저혈압 등 급성 과민반응도 나타나지 않는다. 환자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의약품으로 풀이된다. 대화제약은 리포락셀을 개발하기 위해 20년 동안 약 200억원의 R&D 비용을 투자했다. 환자가 편리하게 항암치료를 할 수 있도록 만들었지만, 이는 약가 협상 시 충분히 고려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업계에 따르면 대화제약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제출한 약가는 24만원대였지만, 심평원은 10만원대 약값을 책정했다. 이는 결국 조건부비급여 판정을 받고 협상이 끝나는 날만이 기대되고 있다. 대화제약 관계자는 “약가협상을 마무리한 후 국내 환자들이 최대한 빨리 리포락셀을 활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