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다툰 한미 양국의 5G 최초 개통

2019년 4월 3일 밤 11시, 한국의 이동통신 3사가 미리 선정한 고객을 대상으로 5G(5세대 이동통신) 스마트폰을 개통했다. 그리고 몇 시간 뒤, 한국의 뒤를 이어 미국의 버라이즌이 5G를 개통했다. 완벽한 상황은 아니지만 5G 시대가 개막한 것이다.

한국은 원래 4월 5일 개통을 목표로 했지만, 버라이즌이 11일로 예정된 상용화 일정을 4일로 앞당기자 서둘러 개통했다. 한미 양국이 각축 속에 한국이 한 발짝 먼저 서둘러서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한 것이다. 세계 2위 미국은 나름 불만이 많다.

어쨌든 바야흐로 세계는 5G 시대로 진입했다. 5G는 4G(4세대 이동통신) LTE와 비교하면 차이가 확연하다. 데이터 용량은 1000배 많고 속도는 200배 빠른 까닭이다.

지금도 빠른데 더 빨라서 뭘 하나 하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지만, 데이터 처리 속도가 빨라지고 용량이 많아진다는 것은 획기적인 일이다. 기차의 발전과 비교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과거 증기기관차로 10시간에 달렸던 부산-서울 구간을 이제는 2시간 30분에 주파하는 KTX가 달리고 있다. 이동 시간이 4분의 1로 줄어들면서 나타난 변화는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다. 서울 부산 간 출퇴근이 가능할 정도다.

4G에서 5G 시대로의 변화는 이런 변화와는 비교가 안 된다. 증기기관차 시대와 KTX 시대를 비교할 수 없듯, 4G 시대에 살면서 절대로 5G 시대를 예단할 수 없다. 5G와 관련된 모든 전망은 그저 상상일 뿐이다. 5G 시대는 살며 확인할 수밖에 없다.

4G 시대 초창기에는 유튜브와 넷플릭스가 지금처럼 성장할지 어느 누구도 짐작하지 못했다. 지금보다 데이터 처리 용량이 1000배 많아지고 속도가 200배 빨라지는 5G 시대가 본격화되면,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넘어서는 새로운 서비스들이 등장할 것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그것이 어떤 서비스가 될 것인지는 아직까지 말하지 못한다.

5G 시대와 신산업 생태계 형성

2019년 4월 8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은 서울 송파구 올림픽 공원 K-아트홀에서 열린 ‘세계 최초 5G 상용화, 대한민국이 시작합니다’ 행사에 참석했다. 이 행사는 5일 전인 지난 4월 3일, 한국이 세계 최초로 5G 상용화에 성공한 것을 축하한 자리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CDMA, 초고속인터넷에 이어 5G는 대한민국의 혁신성장을 가속화할 수 있는 세 번째 도약의 기회”라고 밝히면서, “국가 차원의 5G 전략’을 추진해 2026년 세계시장의 15%를 점유하고 양질의 일자리 60만개 창출, 730억달러 수출을 달성하겠다”고 말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은 “2026년이면 세계 5G 시장 규모는 1161조원으로 예상되는데 작년 반도체 시장 규모가 529조원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2배 이상 큰 대규모 미래시장이 창출되는 것”이라고 큰 기대감을 드러냈다.

한국이 5G 시대를 개시할 것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반도체는 물론이고 이동통신 분야에서도 절대 강국인 한국은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선도국가다. 한국은 5G를 바탕으로 네트워크 장비, VR·AR 디바이스, 5G 차량 간(V2X) 통신 등 10대 핵심산업과 실감콘텐츠, 스마트공장, 자율주행차 등 5대 핵심서비스를 신성장 동력으로 키울 목표를 가지고 있다. 세계 최첨단 IT전자 기술 개발은 이제 한국이 주도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관계부처와 민간 업계와 전문가가 참여하는 ‘5G 전략위원회’를 운영하기로 했다. 5G 전략위 공동위원장은 과기정통부 장관과 민간 전문가가 맡고 범부처 차원으로 추진될 예정이다. 또 정부는 민간과의 협력을 통해 총 30조원을 투자해서 통신망, 콘텐츠 등을 포함해 5G 전국망을 2022년까지 조기 구축하기로 했다.

2차례의 세계대전과 20세기 산업사회

현재 세계 GDP 순위는 다음과 같다. 미국(1위), 중국(2위), 일본(3위), 독일(4위), 영국(5위), 인도(6위), 프랑스(7위), 브라질(8위), 이탈리아(9위), 캐나다(10위), 러시아(11위), 한국(12위) 등의 순서다. 최근 순위에 진입한 나라는 중국, 인도, 한국뿐이다.

지난 70여년간 이들 세 나라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들의 세계 GDP 순위는 큰 변화가 없다. 그렇다면 이들 국가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세계대전 참전국이라는 것이다.

세계대전 참전이 중요한 이유는 군수산업이 종전 이후 국가 경쟁력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연합군 미국, 영국, 캐나다, 러시아와 추축국 일본, 독일, 이탈리아, 그리고 개전 직후 독일이 점령해서 병참기지화한 프랑스까지 군수산업의 덕을 봤다. 세계대전 참전국이 아니면서 세계 GDP 순위 상위권에 진입한 중국, 인도, 한국이 특별하다.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제국주의를 통해서 식민지 쟁탈전을 야기했고, 2차례의 세계대전은 선발 제국주의와 후발 제국주의 간의 패권경쟁이었다. 독일은 유럽을, 이탈리아는 아프리카를, 일본은 아시아를 점령하기 위해서 영국을 비롯한 연합군에 도발했고, 그렇게 시작된 세계대전을 통해 군수산업을 급속히 성장했다.

20세기를 주도하는 모든 산업은 2차례 세계대전의 결실이다. 비행기, 배, 자동차에서부터 군복과 군화가 개량된 양복과 신사숙녀화, 1회용 티슈와 인스턴트커피에 이르기까지, 현대사회의 소비재 대부분은 군수품을 제품화한 것들이다. 세계 GDP 상위권 나라들은 경공업 제품부터 중공업 제품까지 자력으로 생산할 수 있다.

정보고속도로 5G와 IT전자 기술 혁신

이제 세계는 전인미답의 5G 시대로 진입했다. 5G 시대를 개발한 기술력은 20세기를 주도한 선진국의 산업혁명 기술력과 비교할 수 있다. 18세기 중반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은 공장과 시장을 만들었고, 식민지를 건설하는 제국주의로 발전했다. 그리고 선발 제국주의와 후발 제국주의 사이의 갈등을 유발, 세계대전으로 막을 내렸다.

2차례의 세계대전은 끝났다. 하지만 군수산업은 민간경제로 이관, 국가경쟁력이 되었다. 그러므로 20세기는 세계대전 참전국이 주도하는 전쟁 후 역사라고 할 수 있다.

중국과 인도 같은 인구 경쟁력도 없는 한국. 분단국 한국이 70년 만에 세계 GDP 순위 12위에 오른 것은 기적이다. 이제 한국은 새로운 군수산업 5G 시대를 선도한다.

하지만 미국 이동통신산업협회(CTIA)는 2018년 세계 1위였던 한국의 5G 경쟁력이 2019년 미국, 중국에 뒤진 3위로 평가했다. CTIA는 ‘세계 5G경쟁력 보고서’에서 “5G망이나 산업과 연계한 활용방안 등에 대한 투자에서 미국, 중국이 앞서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것이 5G 시대를 개막한 한국 IT전자 기술력의 실상이다. 따라서 그런 의미로 보면, 최근 정부가 밝힌 5G 시대 IT전자 기술 전략은 뒤늦은 감이 없지 않다.

5G 개막과 함께 한국에 찾아온 IT전자 기술 시대. 세계 최초라는 타이틀에 매몰되어, 시장 상황을 놓치면 안 된다. 기술 개발에서 최우선 고려 요소는 시장 상황이다. 세계 최초로 개발한 기술력을 소비자들이 환영할 수 있게 만드는 감각이 필요하다.

디지털 카메라를 처음 만든 기업은 캐논이 아니라 코닥이었고, 스마트폰을 처음 만든 기업은 애플이 아니라 노키아였다. 세계 최초가 중요한 게 아니라, 세계 최초 기술을 산업 경쟁력으로 전환할 수 있는 판단력이 중요하다. 이제껏 한국은 한 번도 프론티어의 자리에 서 본 적이 없다. 프론티어의 자리에 선 한국은 지금 위기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