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장영성 기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8일 새벽 미국에서 폐 질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0세. 장례 및 운구 일정은 미정이다. 조양호 회장은 술, 담배, 골프를 멀리해 ‘3무 회장님’으로 불릴 만큼 건강관리에 철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조 회장은 폐가 굳어지는 질환을 장기간 앓고 있었고 최근 스트레스가 심해 병세가 더욱 악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회장은 1974년 대한항공에 입사 후 45년간 정비, 자재, 기획, IT, 영업 등 항공업무에 필요한 실무 분야를 두루 거쳤다. 1992년 대한항공 사장, 1999년 대한항공 회장 등을 거쳐 2003년 선진 조중훈 회장에 이어 한진그룹 회장 자리에 올랐다.

조 회장은 엔진 정비 하나도 직접 챙길 정도로 꼼꼼한 경영으로 유명했다. 특히 댓글로 경영을 지시할 정도로 섬세한 경영 스타일을 유지했다. 업계에 대해 해박해 직원들이 제대로 업무를 파악하지 않은 채 보고를 들어갔다가 크게 혼났다는 일화도 다수 전해진다.

경영권 향배는

업계는 한진그룹의 경영권에 대해 관심을 보인다. 문제는 조 회장이 가진 지분 약 17.84%를 어떻게 상속하느냐다. 현재 불거진 경영권 갈등이 더 심각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현금으로 상속세를 내고 주식을 방어하지 못하면 오너가의 지분이 상당히 낮아질 수 있다. KCGI 등 사모펀드들이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진칼을 중심으로 한 그룹 지배구조가 경영권 전반을 흔들 수 있다. 한진그룹은 주 회사인 한진칼을 중심으로 대한항공·한진(자회사)→손자회사→오너일가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갖고 있다. 한진칼은 한진그룹의 주력사인 대한항공 지분을 29.96%를 보유한 데 이어 진에어(60%), 칼호텔네트워크(100%), 한진(22.2%), 정석기업(48.3%) 등으로 갖고 있다. 

한진칼은 조 회장을 비롯해 조원태·조현아·조현민 등 한진그룹 오너일가가 회사지분 28.95%를 쥐고 있다. KCGI 및 국민연금공단의 합산 지분은 20.81%다. 상속세 관련 할증과 실제 세금납부를 위한 현금 조달 여부 등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책과 관계 없이, 단순 지분 기준만으로도 최대주주 위치를 위협받는 구조다.

조 회장의 부인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 큰딸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차녀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아들인 조원태 사장이 조 회장의 지분을 받을 수 있다. 조원태 사장은 한진칼 지분 2.34%,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과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는 각각 2.31%, 2.30%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조 회장을 제외한 지분율은 11.11%다.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조원태 사장에게 지분을 통째로 넘기는 방법이다. 그러나 이명희 이사장을 보함한 나머지 삼남매에게 균등하게 지분이 상속될 수 있다는 의견이 모아진다. 균등한 지분률 상속은 경영권이 바뀔 수 있다. 상속세를 납부하면 지분률이 크게 하락하기 때문이다.

현행 상속·증여세는 과세표준에 따라 누진세율이 적용된다. 30억원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50%를 상속세로 낸다. 주식은 경영권 프리미엄에 대한 할증 20~30%를 적용한다. 상속세율이 최대 65% 수준에 이른다. 상장기업의 상속세는 주식물납을 할 수 없다. 특히 모두 현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특수관계자 상속이 이어지면 상속세율이 50%에 달해 최대 8~9%대의 지분 상속이 이뤄진다. 이를 토대로 삼남매가 보유하고 있는 지분과 상속받을 지분은 15~16% 수준에 그친다. 13.47%의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KCGI의 목소리가 커질 수 있다.

조양호 회장의 핸들링, '3세 경영'에서도 보여질까

일각에서는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의 3세 경영체제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조 회장도 조중훈 회장이 2002년 세상을 떠난 다음 해 2대 회장직에 올랐다.

조 사장은 대한항공에서 15년간 경영수업을 받아왔다. 대표이사 선임 이후엔 대외 공식활동에도 모습을 자주 비추며 경영 정면에 나섰다. 조 사장은 오는 6월 서울에서 열릴 ‘항공업계 UN회의’ IATA 연차 총회에서 조 회장이 주관사 자격으로 맡았던 IATA 총회 의장직을 이어받게 될 예정이다.

재계 관계자는 “대한항공은 총수 중심으로 빠른 의사결정과 과감한 투자 등을 펼쳐왔지만 상대적으로 투명성이 낮다는 점에서 오너리스크가 발생한다는 위험을 안고 있었다”면서 “앞서 대한항공이 겪은 일화를 계기로 올해는 젊은 리더의 경영 능력 평가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조원태 사장에 대한 기대감이 큰 것은 조양호 회장이 보여준 운용능력 때문이다. 조 회장은 경제 전반 지식이 해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 위기를 타개한 사례도 다수 있다. 특히 재무부담이 크게 늘어난 회사의 유동성을 타개하기 위한 탄력적인 기재 운용능력을 보였다.

2018년 기준 대한항공 매출액은 12조6512억원으로 조 회장이 대한항공 회장에 취임하기 전해인 1998년(4조5854억원)보다 3배 가량 늘어났다. 보유 항공기 대수는 113대에서 166대로, 취항국가 및 도시는 27개국 74개 도시에서 44개국 124개 도시로 성장했다. 국제선 여객 운항 횟수는 154배 늘었으며, 연간 수송 여객 숫자 38배, 화물 수송량은 538배 성장했다.

반면 재무부담은 크게 늘었다. 미국 로스엔젤레스에 윌샤이어그랜드타워(Wilshire Grand Tower)를 재건축하는 종속회사 한진인터네셔널에 2014~2016년 약 7500억원의 유상증자를 실시하였고, 차입금에 대한 지급보증도 제공하였다. 한진해운에 대해서는 2013년 2,500억원의 자금대여, 2014년 약 4448억원 유상증자를 실시했다. 그 외에도 아이에이티, 왕산레저개발 등 기타 계열사에 대한 출자 자금소요를 결정했다. 에스오일 지분을 보유한 한진에너지 청산 과정에서 8000억원이상의 자금이 유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열사 관련 자금 순유출 규모는 8000억원에 달한다.

2000년대 중반부터 LCC(저비용항공사)가 대한항공을 위협하는 요소로 자리잡았다. 2015년 이후 저유가 기조로 유류할증료 부담이 줄어들며 항공권 가격부담이 하락, LCC들이 급속도로 성장했다. 2012년 말 7.5%에 불과하였던 LCC의 국제선 점유율은 2017년 말 26.4%로 증가하였다. 국내선 점유율은 50%를 넘어섰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국제선 시장점유율은 각각 2012년 36%, 24%에서 2017년 25%, 17%로 낮아졌다.

조 회장은 항공기단을 크게 늘리면서 상황을 타개했다. 특히 모두 장거리 여객기인 B747-400을 도입하면서 LCC와 차별화된 전략을 고수했다. 조 회장은 2012년부터 2018년 말까지 21대 항공기를 들였는데 모두 장거리 여객 기단이었다. 이에 따라 장거리 기자재가 차지하는 비중은 45%에서 51%로 상승했다. 주력 기종인 B747-400을 좌석당 연료소비량이 15~20% 적은 B747-8과 A380으로 대부분 대체해 연료효율성도 키웠다.

대규모 투자로 인한 재무부담은 늘었지만, 규모나 기종 구성 측면에서 효율이 뛰어난 기단을 적극들였다. 이를 통해 단기적인 수요 변동이나 중기적인 항공 운송 트렌드 변화가 발생할 때 탄력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낸 것이다.

앞서 조 회장은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자체 소유 항공기 매각 후 리스를 통해 유동성 위기를 확보, 외환위기가 정점인 1998년 유리한 조건으로 보잉 737항공기 27대를 구매하는 데 크게 일조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