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드 1999, 캔버스에 유화, 145.5×97㎝(Nude 1999, Oil on canvas, 145.5×97㎝)

누드화에서도 도발적인 정면 포즈보다는 뒷모습의 포즈를 선호하는 것도 이에 연유한다. 완전히 드러내는 것보다 적당히 감추는데서 오는 은근함이야말로 동양적인 미학의 한 특징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있다. 직접적인 표현이 아닌 간접적인 표현이 오히려 여운이 길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튼 그의 누드화에서는 체모를 찾아보기가 힘들다. 의식적으로 자극적이고 도발적인 이미지를 지양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부분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누드화는 성적인 매력이 현저히 감소하고 있다. 반면에 누드의 오적인 형태에 대한 미적인 탐닉의 시간은 길어지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감상자의 시선을 편하게 만들어주는 까닭이다.

아무래도 동양인에게 누드화는 편한 상대가 아니다. 체모가 드러나는 정면포즈일 경우에는 더욱 그렇다. 하지만 그의(ARTIST KOO CHA SOONG,具滋勝,서양화가 구자승,구자승 작가,구자승 화백,KOO CHA SOONG)작품에서 느낄 수 있듯이 체모를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뒷모습의포즈는 여체의 윤곽이 만들어내는 곡선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심취하게 만드는 시간적인 여유를 준다.

△글=신항섭/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