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견다희 기자] 국민연금은 지난해 기관투자자가 기업의 의사결정에 적극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의결 행사권인 스튜어드십코드(Stewardship Code, 수탁자책임 원칙)를 도입했다. 국민연금은 3월 한 달간 총 288사의 주주총회에 참가했다. 국민연금은 올해 처음으로 주주총회에서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로 여느 때보다 많은 이슈들을 만들어 세간의 이목이 집중됐다.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대한항공이다. 지난 3월 27일 한진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대한항공에서 그룹 총수인 조양호 회장의 지위가 사라졌다.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이 부결되면서다.

조 회장의 연임안 표결은 2.5% 남짓한 지분이 승부를 갈랐다. 대한항공 지분 11.56%를 보유해 2대 주주로 자리한 국민연금은 반대표를 던지면서 결정타를 날렸다. 조 회장은 주주 손에 의해 물러난 첫 총수가 됐다.

대한항공은 그동안 오너리스크로 골머리를 앓았다. 더불어 기업의 가치가 하락했고 이는 국민연금과 국민의 손실로 이어졌다. 그러자 국민연금이 이번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칼을 뽑아든 것이다. 국민 연금과 함께 소액주주들도 그 위력을 보여줬다.

이번 대한항공 주주총회를 통해 우리나라 주요 기업의 대주주이자 투자자인 국민연금의 위상과 역할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국민연금은 288사의 주주총회에 참가해 185사, 254사 안건에 반대의견을 냈다. 64.2%에 이르는 회사의 주주총회 안건에 대해 반대 의견을 냈다. 구체적으로 정관변경 반대 44건, 재무제표 승인 반대 5건, 이사·감사 등 선임 반대 86건, 스톡옵션·이사 보수한도액·임원퇴직금 지급규정 변경의 건 반대 120건이다. 주주제안은 4개 회사에 했다.

이사, 감사 등의 선임 안건을 반대한 주요 사유로 과다겸임, 최대주주의 특수관계인, 장기연임, 직전 이사회 참석률 저조, 최근 5년 이내 상근임직원 해당 등을 언급했다.

그동안 국민연금은 주주들의 가치를 대변하지 않고 상장사들의 대리인과 같은 태도를 보여 ‘주총 거수기’라는 불명예를 안았다. 주총과 다른 입장을 취하더라도 결과를 뒤집지 못해 ‘종이호랑이’라는 비아냥을 들어 온 과거와 사뭇 다른 행보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국민연금을 통해 기업을 통제하는 ‘관치경제’, ‘연금사회주의’를 우려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한항공 사례와 같이 국민연금의 주주권 위력은 소액주주들의 동의가 함께 할 때 발휘된다. 정부의 개별 의지로 결정을 흔들 수는 없다.

그리고 국민연금의 적극적인 주주권행사 이후 긍정적인 변화들이 나타나고 있다. 기관투자자들을 중심으로 기업과 대화하려는 시도가 늘어나고 배당 수준을 높이는 등 주주총회 안건을 주주가 직접 상정하는 주주제안도 확대되고 있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는 보유 지분 이상의 막대한 의미와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 앞으로도 국민연금이 주인인 국민의 재산을 지키는 역할을 다해주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