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파사라는 말이 생소한 사람도 꽤 있을 것 같다. 사전에 따르면 전파사(電波社)는 ‘라디오, 텔레비전 따위의 전자기파를 이용한 전기 기기를 주로 취급하는 가게’다.

무슨 전파를 만들어 내는 가게도 아닌데 이름이 참 거창하지만, 한마디로 전파사는 각종 전자제품을 고쳐주는 가게였다. 추억의 옛 시트콤 <한지붕 세가족>에 나오는 순돌이 아빠가 만물수리점을 했던가? 맥가이버가 와서 그에게 배우고 갔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몇십년 전에는 전자제품이라고 해봤자 기껏 선풍기, 브라운관이 있는 뚱뚱한 TV, 다리미, 라디오 정도가 있었고, 조금 지나서는 당시로는 획기적인 도시락 크기의 비디오 테이프를 넣는 플레이어가 나왔다.

지금은 성인은 물론 초등학생까지도 핸드폰이 있고 핸드폰으로 TV를 볼 수 있게 되었지만, 필자가 어렸을 때는 두 집 건너 한 집만 ‘테레비’가 있었다. 홍수환이나 유제두 같은 권투 세계 챔피언이 타이틀 방어전을 하면, 집에 TV가 없는 아저씨들이 하나 둘씩 ‘전파사’에 모여서 경기를 봤다.

왕년 이야기를 슬슬 지겨워하는 독자들을 위해 여기서 멈추도록 한다. 이런 얘긴 길게 할수록 아재 인증이 된다.

어느 날인가 돌출입수술을 하는데 필자의 머리에 쓰고 있던 헤드램프가 껌뻑거리다가 불이 꺼졌다.

물론 또 한 개 여분의 헤드램프가 있어서 헤드램프를 바꿔 쓰고 수술을 잘 마쳤다. 만약 헤드램프 두 개가 모두 일시에 고장이 난다고 해도, 수술실 천정에 원래 달려있는 무영등(無影燈)이 있다.

돌출입수술이 유독 빨리 끝났다. 필자는 보통 수술을 점심시간 이후에 시작한다. 턱끝수술 없이 돌출입수술만 하면 디테일을 살려 정성껏, 꼼꼼히 수술해도 한 시간 정도면 끝나는데 그날따라 40분 정도에 수술이 끝나 아직 해가 쨍쨍한 대낮이었다. 그 헤드램프를 구입한 의료기기상에게 바로 연락을 했다. 마침 근처에 외근 중이라며 병원에 들르겠다고 한다.

문제의 헤드램프를 살펴보니, 배터리에서 램프까지 연결된 전선의 접촉에 문제가 있었다. 한쪽으로 꺾으면 불이 켜지고, 반대쪽으로 꺾으면 불이 꺼졌다. 의료기기상은 ‘가망이 없다’고 했다. 같은 제품이 이미 단종되어서 A/S가 안 된다는 이야기였다. 일종의 사망선고였다. 그러니 새로운 헤드램프를 하나 장만하라는 것이었다.

1851년 출시된 ‘싱어’라는 미국산 재봉틀은 제품이 너무 튼튼하고 고장이 안 나 한번 사면 다시는 새 제품을 구매하지 않기 때문에, 어느 시점에서 매출이 더 이상 늘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논리에 의하면 헤드램프를 만드는 회사에서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단종시키고, 고장이 나고 A/S가 되지 않아야 새로운 헤드램프를 팔 수 있을 것이다.

업자가 새로운 헤드램프를 몇 개 가져와서 보여주었다. 수술할 때 밝게 불을 비춰주는 헤드램프 하나가 비싸봤자 얼마나 할까 하겠지만 이는 몇백만원을 호가한다. 최신형이라고 하는 헤드램프를 몇 개 써보았지만, 왠지 불편하고 거추장스러웠다. 원래 내 것, 옛 것이 좋았다. 사실, 필자는 원래 정든 물건들을 잘 버리지 못한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가, 반신반의하며 검색창에 ‘전파사’를 쳤다.

놀랍게도 병원 근처에 추억의 전.파.사. 가 존재하고 있었다.

필자는 사망진단을 받은 불쌍한 헤드램프를 들고 전파사를 찾아갔다.

그곳으로 걸어가는 길은 시간여행 같았다. 가게 안으로 들어가니, 그날 고칠 것을 이미 다 고치고 할 일 없어 보이는 가게 주인이, 인조가죽이 화상 상처처럼 벗겨진 리클라이너에 비스듬히 누워 <CSI 마이애미>를 열심히 보고 있다가, 불쑥 들어간 필자를 보고 흠칫 놀랐다.

헤드램프를 내밀었다. 아픈 아이를 데려간 부모 마음이었다.

헤드램프의 생명을 좌우하는 절대자인 전파사 주인은 증상을 듣고 찬찬히 살피더니, 문제가 되는 전선을 예고도 없이 니퍼로 잘랐다. ‘툭’ 하고 명줄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헛. 잘라도 되나요?

-잘라봐야 알지요.

초조한 10분이었다.

아이를 수술장으로 들여보내고, 더 이상 멸균구역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 부모 심정이었다.

전파사 사장은 몇 번 전류와 전압을 측정해주는 기계로 헤드램프의 여기저기를 조사하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납땜질을 했다. 어린 시절 전파사에서 보던 그 납 연기가 아롱아롱 피어올랐다.

-다 됐습니다.

사망한 헤드램프가 부활했다. 세상에~!!!

오오 대단하시다며, 전파사가 있어서 너무 다행이라며 수리비를 묻자 오천원이라고 했다.

필자에겐 아주 중요한 물건인데 너무 싸서 또 한 번 놀랐다. 꾸벅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왔다.

이렇게 해서 현재에도 필자가 돌출입수술을 할 때, 10년째 필자의 머리 위에서 제 할 일을 묵묵히 다해준 헤드램프는 그 자리에 그대로 멀쩡히 살아있다. 이 글을 읽고 ‘에이 원장님, 새거 하나 사시죠’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 칼럼 ‘징크스 이야기’에 썼듯이 수험생에게는 몇 년을 같이 해온 펜이 중요할 수 있고, 야구선수들에게도 제 손과 한몸 같은 글러브가 있을 것이다. 안경이 몇 개가 있는 사람도 그 중에 가장 편안한 안경이 있을 것이고, 펜싱선수에게는 시합 때만 쓰는 행운의 칼이 있을 것이다.

수술에 사용되는 기구든, 수술 그 자체든, 새로운 것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온고지신이라는 한자성어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필자가 십수년을 정제시켜 온 돌출입수술은 옛 임상경험들을 축적하고 조금씩 발전시켜 최신의 수술로 정립된 것이지, 옛것을 버리고 새롭게 도입한 것이 아니다. 명작을 만드는 화가가 새 이젤, 새 팔레트, 새 붓으로 새 기법의 그림을 그린다고 해서 더 훌륭한 결과물이 나오지는 않는다.

최신이며 새로워 보이는, 시대를 앞서가는 듯한, 특수기구를 사용하는, 그런 수술 명칭에 환자들이 현혹되기도 한다. 필자는 ‘그냥’ 돌출입수술을 한다. 수술을 잘 해야 한다. 수술 명칭이 멋진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제목이 화려한 시(詩)가 본문까지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가령 ‘3D 프린팅 가상수술을 이용한 다이아몬드 3차원 레이저 돌출입수술’이라는 그럴듯한 명칭의 수술이 있다고 가정하자. 그 실체는 무엇일까? 따져보면 실체란 없다.

가상수술을 하기 위한 잇몸석고본을, 실제로 환자 잇몸뼈의 3차원 CT를 찍은 후 3D 프린터로 만들어낼 수 있다. 멋져 보이지만 이는 지름길을 놔두고 먼 길로 돌아가는 바보 같은 짓이다. 실제 환자가 윗치아 아랫치아 사이에 알지네이트 등의 재료물질을 꽉 물어서 만든 틀에 석고를 부어 만든 치아모형이 훨씬 더 싱크로율이 높다. 다이아몬드는 무엇이냐고 물으면, 돌출입수술 시 쓰는 드릴 끝이 공업용 다이아몬드로 된 단단한 것을 써서 더 정밀하게 절골이 가능하다고 설명하면 그럴 듯도 하다.

3차원은? 돌출입수술 시 절골한 잇몸뼈는 후방으로 평행이동만 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조금씩 위·아래·좌·우로 움직인다. 늘 그렇다. 원래 그런 것을 수술 명칭에 3차원이라고 넣어놓으니 있어 보인다. 레이저는? 레이저로 뼈가 잘리지 않는다. 스타워즈의 레이저 검처럼 무엇이든 싹둑싹둑 잘릴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레이저는 뼈에 점, 선 정도의 절골선 디자인을 표시할 수 있는 정도이고 자르는 것은 어차피 절골용 톱을 사용해야 한다. 그럴 거면 굳이 레이저로 안 해도 된다. 그냥 잉크로 그리는 게 더 정확하다. 하지만 레이저를 쓰긴 쓴 것이니, 레이저 수술이라고 우기는 식이다.

이래서 되겠는가?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필자는 ‘그냥 돌출입수술’을 한다. 수술 방법은 십수년 전에 비해 괄목할 만큼 발전하고 정제되었지만, 수술 명칭은 ‘무제’ 그대로다.

옛 헤드램프를 고쳐준 전파사에서 본 납땜 연기도 몇십년 전과 다르지 않았다.

이제 필자의 옛 헤드램프가 새 생명을 얻어 수술 부위를 환하게 밝혀주듯이, 필자의 ‘그냥’ 돌출입수술이 돌출입 때문에 위축되고 상처받았던 많은 사람의 인생을 아름답게 밝혀주리라 믿는다.

충직한 헤드램프 두 개가 수술장 한켠에서 늘 출동준비를 완료하고 있다.

볼 때마다 든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