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살면서 생긴 습관 중의 하나가 1시간 가까이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할 일이 생기면 반드시 화장실에 들렀다가 나가는 것이다.

서울처럼 웬만한 대형 빌딩의 1층에는 화장실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개방되어 있고, 백화점도 층마다 화장실이 있는 곳이 미국에는 없기 때문이다.

운전해서 가다가 들리는 휴게소나 주유소의 화장실은 어쩔 수 없는 경우에만 이용하고, 기차역의 화장실도 노숙자들만 들락거리는 것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백화점의 화장실도 한국의 백화점 화장실을 생각하면 큰 오산이며, 오히려 한국의 버스터미널 화장실 수준으로 생각해야 한다.

깨끗하고 청결한 화장실을 이용하고 싶다면 결국은 돈을 내고 서비스를 이용해야 하는 음식점이나 카페의 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화장실 한 번 가자고 최소 만원 정도를 쓸 수는 없으니 화장실을 반드시 챙기는 버릇이 생긴 것이다.

또 한국에서는 많은 지하철역 화장실이 개찰구 외부에 있어서 지하철을 이용하지 않더라도 이동 중에 화장실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뉴욕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여행오는 사람들에게 절대 지하철 화장실을 이용하지 말라고 여행책자에 적혀있거나 친구들에게 말하는 경우도 많다.

한국에서도 최근 몰래 여성들의 신체를 촬영하는 등으로 인해 지하철역 화장실을 기피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뉴욕 지하철은 뉴욕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도 한 번도 이용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아예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뉴욕 지하철의 화장실은 그 숫자가 아주 미미하다. 전체 뉴욕 지하철 역사 472곳 가운데 이용 가능한 화장실이 있는 곳은 불과 51개다.

하루에 뉴욕시 지하철을 이용하는 승객이 560만명임을 감안하면 승객 5만3000명당 화장실이 1개이니 사용할 생각은 아예 꿈도 꾸지 않는 것이 나을 정도다.

뉴욕 메트로폴리탄교통공사(MTA)도 이와 같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서 지난해에 12개의 화장실을 수리해서 이용 가능토록 했으며 올해는 화장실 25곳을 수리할 예정이다.

최근 뉴욕타임스가 뉴욕 지하철역의 화장실 사진을 찍어서 보도했는데 너무나 더럽고 비위생적이라서 이를 본 독자들은 절대 이용하지 않겠다고 굳은 다짐을 할 정도였다.

무려 12개 노선이 지나가는 뉴욕 타임스퀘어 지하철역 화장실의 경우 한 사람씩 들어가서 이용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개별 화장실이 4칸에 불과하다.

화장실 앞에는 들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버튼을 눌러 문을 열어주는 화장실 관리인이 있는데 화장실 이용시간도 5분으로 제한된다.

그나마 이 화장실은 관리인이 있기 때문에 비누나 휴지와 같은 기본적인 용품들이 모두 갖춰진 편이지만 금속으로 만들어진 변기와 세면대 등은 언뜻 교도소를 연상케 한다.

다른 뉴욕지하철역 화장실의 사정은 더욱 나빠서 화장실 휴지를 훔쳐가지 못하도록 휴지를 체인으로 꽁꽁 묶어놓은 곳도 있다.

옷이나 가방을 걸어놓을 수 있는 고리가 없어서 더럽기 짝이 없는 바닥에 가방이나 옷을 내려놓던지, 불편하게 한 손으로 들고 있어야 한다.

더구나 라이커스 교도소에 영치품을 보내주는 대행서비스 안내스티커 등이 붙여있는 화장실은 가뜩이나 교도소 화장실 같은 느낌은 더욱 가중시킨다.

휴지나 비누도 없고 손을 닦을 종이타월도 없는 대다수의 지하철 화장실을 일반 지하철 승객들이 이용할 가능성은 없고, 주로 지하철 역사나 거리에서 쪽잠을 자는 노숙자들이 애용한다.

지하철 화장실은 뜨거운 바람이 나오는 히터로 난방이 잘 되어 있어 겨울에 노숙자들이 종종 몸을 녹이러 들어가거나 혹은 히터에 차갑게 식은 음식을 올려놓고 데워먹기도 한다.

간혹 화장실 히터에서 화재가 발생하는 것도 이들이 올려놓는 음식이나 옷가지 때문이다.

일부 화장실은 문이 잠기지 않아서 여자 화장실에 남자가 있는 경우가 목격되기도 한다.

뉴욕 지하철 화장실을 뉴요커들조차 절대로 이용하지 않는 충분한 이유가 되고도 남는다.

다만, 최근에 개통된 어퍼이스트 지역의 지하철 화장실은 아주 깨끗하다고 하는데 뉴요커들은 그게 얼마나 지속될지 의구심을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