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용=주요 손해보험회사 치매보험 약관

[이코노믹리뷰=강수지 기자] 치매보험의 경증 치매 보장 조건을 놓고 보험업계가 시끄럽다. 경증 치매를 진단하는 방법이 간단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상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증 치매 보장 조건, 알고 보니?

그 동안 경증 치매는 치매 관련 전문의가 시행하는 CDR척도에 따라 어렵지 않게 판정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증 치매에 대한 CDR척도(임상치매평가, Clinical Dementia Rating)는 검사 결과가 1점인 '반복적 건망증' 단계로, 간단한 문답지 작성을 통해 이뤄진다.

금융감독원 보험사기대응단 관계자와 손해보험회사 관계자는 "문답식의 CDR척도에 따라 경증 치매 진단은 쉽게 내려진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알고 있던 소비자들은 유병 장수 시대를 맞아 공포의 질환으로 떠오른 치매를 대비하기 위해 앞 다퉈 치매보험을 가입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경증 치매에 대한 보험금은 CDR척도만으로 쉽게 받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뇌 전산화단층촬영(brain CT Scan)이나 자기공명영상(MRI), 뇌파검사, 뇌척수액검사 등을 기초로 한 진단이 포함돼야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같은 뇌 영상검사를 통해서는 경증 치매가 드러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약관에 숨겨져 있던 세부 조건

그 동안 보험회사들은 경증 치매에 대한 보장 내용과 함께 이를 지급받기 위해서는 CDR척도 점수 1점 이상이면 된다며 치매보험을 광고해왔다.

보험금을 지급받기 위해서는 뇌 영상검사가 필요하다는 세부 조건에 대한 내용을 쏙 빼놓고 치매보험을 홍보해 온 것이다.

현재 아직 상품 개정이 끝나지 않은 KB손해보험을 제외한 주요 손해보험회사인 삼성화재와 현대해상, DB손해보험, 메리츠화재의 경우는 홈페이지를 통해 '뇌 전산화단층촬영(brain CT Scan), 자기공명영상(MRI), 뇌파검사, 뇌척수액검사 등을 기초로 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 치매보험 약관을 확인할 수  있다. KB손해보험은 지난달 29일 오후 6시 이후부터 상품 개정에 따라 홈페이지에서 해당 약관을 찾아볼 수 없는 상태다.

또 메리츠화재를 제외한 이들 손해보험회사는 약관을 따로 살펴봐야지만 이 같은 조건을 알 수가 있었다.

상품 보장 내용과 주의 사항이 담긴 상품 안내서 혹은 요약서, 홈페이지 등에는 뇌 영상검사에 대한 부분이 빠져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보험회사들의 '치매보험 불완전판매'가 도마에 오르며 새로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 사진=이코노믹리뷰

금감원의 뒷북 면피 행태

경증 치매에 대한 보험금 지급 조건이 쉬운 줄로만 알았던 금감원은 소비자들의 보험 사기와 보험회사의 손해율을 걱정했다.

이에 금감원 보험사기대응단은 각 보험회사에 '소비자들의 치매 보험 중복 가입을 주의하며 판매를 지속할 것'을 안내했다. 또 보험회사들은 금감원의 이 같은 안내문에 따라 '누적 가입 한도 적용'을 검토 중이다.

이미 메리츠화재는 누적 가입 한도를 적용했으며, 보장 금액이 적은 생명보험회사들을 제외한 손해보험회사들은 모두 이를 적용하기 위해 검토 중인 상황이다.

누적 가입 한도란 일정 금액 이상으로 치매보험을 중복해서 가입할 수 없도록 정해 놓은 기준을 말한다.

메리츠화재의 경우 60세 이하라면 당사 2000만원, 업계 누적 3000만원이 가입 한도 기준이다. 61세 이상은 당사 500만원, 업계 누적 1000만원을 한도로 한다.

그러나 알고 보니 경증 치매와 관련한 보험금은 사실 지급 받기 어려운 조건을 갖고 있었다. 괜히 금감원에 의해 소비자들만 잠재적 보험사기자로 몰린 것이다. 심지어 경증 치매 환자들은 보험금을 지급받지 못 할 상황에 놓여 있었다.

상황이 이렇자 금융위원회와 금감원 보험감리국은 뒤늦게 '치매보험을 가입하기 전 경증 치매 진단 기준을 잘 살펴야 한다'고 안내했다.

금감원의 경우는 보험회사의 편에 서서 소비자의 보험사기 노출에 주의하라고 강조했던 보험사기대응단이 뒤로 숨고 보험감리국이 나섰다.

이에 금감원이 뒤늦게 면피를 하고자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앞서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보험 약관을 끝까지 읽은 적 없다고 말해 논란을 일으켰던 만큼 금감원 관계자들마저도 보험 약관을 모른 체 업무를 진행한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경증 치매 논란에 보험사 고민 중

경증 치매 보장을 놓고 이제 불완전판매 논란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경증 치매 환자들이 뇌 영상검사를 통해 보험회사에 질환을 증명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CDR척도만 믿고 가입했던 소비자들은 불만을 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치매보험이 올 초부터 큰 인기를 누리고 많이 판매돼 소비자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고 있는 만큼 보험회사들도 고민에 빠졌다.

경증 치매 진단 보험금 지급 조건에 뇌 영상검사를 넣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의 문제다.

손해보험회사 관계자는 "논란이 뜨거운 만큼 경증 치매 진단 조건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며 "경증의 경우 뇌 영상검사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으로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러나 보험회사의 손해율 등도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신중한 결정이 필요하다"며 "조만간 이에 대한 가닥이 잡힐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