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한진칼 정기 주총을 끝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19년 주총 시즌도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여느 해와 다르게 올해는 정기 주총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부터 연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 행동주의 펀드가 주도하는 주주행동주의, 섀도 보팅(shadow voting) 제도 폐지로 인한 의결정족수 충족 문제 등 여러 가지 이슈들이 맞물려 획기적인 변화가 예상되었고, 세간의 관심 역시 그에 쏠렸었다. 그렇다면 과연 2019년 정기 주총의 실제 ‘성적표’는 어떨까? 2019년 주총 시즌을 마무리하며 그 성과와 한계를 되짚어 본다.

 

1.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었던’ 연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행사

이번 정기 주총 시즌이 시작되기 전 가장 주목받은 것은 연기금이었다.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는 사전에 홈페이지를 통해 연기금이 주식을 보유하고 있는 주요 상장사에 대한 의결권 행사 방향을 공개하면서 대기업 대주주의 중대한 탈법과 위법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스튜어드십 코드를 행사할 뜻을 밝혀왔었다. 실제로 연기금은 기업별로 5~10% 가량의 지분을 가진 소수주주로서 이사·감사 선임, 이사 보수 한도액 승인, 정관 변경 등 상대적으로 많은 의결권을 보유한 회사와 대주주가 상정안 안건에 대하여 일부 반대 의견을 피력했다. 하지만 연기금의 이 같은 ‘반란’에도 불구하고 거의 대부분의 주총에서 회사와 대주주의 의사가 반영된 안건이 통과됨에 따라 연기금은 괜히 모양새만 빠지는 결과를 맞이했다.

그나마 연기금의 입장에서 위안으로 삼을 수 있는 부분은 지난 27일 열린 대한항공 정기 주총에서 조양호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에 대하여 연기금이 반대 의결권을 행사하였고, 그 결과 정관에 따라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인 66.66%의 찬성이 필요한’ 본 안건에서 조 회장은 64.1%의 찬성표를 얻는 것에 그쳐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을 부결시켰다는 점이다. 그러나 총회 직후 대한항공이 낸 보도자료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연기금은 비록 조 회장을 대한항공 사내이사 자리에서 끌어 내리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경영권에는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고, 오히려 대한항공 내에서 조 회장을 지지하는 주주가 여전히 과반을 차지한다는 사실만 확인해주는 결과를 낳았다.

또 한편으로는 연기금의 일관성 없는 의결권 행사 방향 설정도 문제였다.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위는 25일과 26일 양일간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에 대하여 어떠한 입장을 취할 것인지와 관련해 열띤 논쟁을 벌인 후 ‘반대 의견’을 내어 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작 대한항공 최대주주인 한진칼의 대표이사인 석태수 대표의 사내이사 연임안에는 큰 이견 없이 찬성하였다. 석 대표이사는 한진 그룹 내에서도 조 회장의 ‘오른팔’로 통하는 인사여서, 따지고 보면 연기금은 조 회장 퇴진을 통해 조 회장 일가의 ‘목줄’을 죈다는 명분을 내세웠음에도 대한항공 최대주주인 한진칼의 대표이사에 조 회장의 최측근을 앉히는 ‘모순’을 보인 셈이다. 연기금은 공공연히 자신들의 의결권 행사가 수탁자인 국민을 위한 것임을 내세우고 있지만, 의결권 행사의 기준 자체가 불분명할 뿐 아니라 의결권 행사 방향 자체로 앞뒤가 맞지 않는 결정은 국민들의 혼란만 가중시킬 따름이다. 물론 연기금의 의결권 행사는 국민들의 노후를 책임질 자산 증식에 부합하게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번 주총에서 연기금이 보여준 의결권 행사 방향이 모두 그러했는지도 별도로 따져봐야 할 문제일 것이다.

 

2. 여전히 가능성만 보여준 행동주의 펀드

이번 주총에서는 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 지분 중 약 3%를 보유한 글로벌 헤지펀드 엘리엇과 한진칼 지분 중 약 12%를 보유한 국내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일명 강성부 펀드)가 크게 부각되었지만, 이렇다 할 성과는 거두는 데에는 실패했다. 우선 엘리엇의 경우 주주제안권을 행사해 총 7조 700억원에 달하는 배당과 자신들이 추천하는 다수의 사외이사 선임을 요구했었다. 그러나 그들의 주주제안은 절대 다수를 이루는 주주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다. 이는 엘리엇이 그 동안 국내 기업들을 상대로 기업의 성장은 외면한 채 ‘단기적인 이익’만을 취해온 비난받을만한 전력 때문이기도 하려니와 ‘정의선’호(號) 출범과 더불어 현대자동차 그룹의 장기적인 성장을 바라는 주주들이 더 많았던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KCGI의 경우에는 이번 기회에 ‘오너리스크’를 제거해야 한다는 ‘명분’은 쌓았지만, 주식 보유기간이 짧아 한진칼과 치열한 법정공방을 벌이는 등 아직 준비가 부족한 모습을 보여 결국 뒷심을 발휘하지 못했다. 다만, KCGI가 이번 주총에서 이루지 못한 ‘꿈’은 조 회장 일가의 근본적인 변화 노력이 없는 한 다음 주총에서는 다시 한 번 도전해 볼만한 것이어서 그 가능성은 충분히 확인했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