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태호 기자] “모두들 안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한진중공업의 필리핀 수빅조선소를 소개하는 문장 중 일부다. 수빅조선소는 결국 한진중공업의 완전자본잠식 원인이 됐고, 사업을 주도했던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은 결국 경영책임을 지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됐다. 

29일 한진중공업은 갈월동 사옥에서 열린 제12기 정기주주총회를 개최했다. 이날 주총에서 조남호 한진중공업홀딩스 회장은 사내이사로 추천되지 않았다.

조 회장과 관계된 지분 전량이 소각되는 차등 무상감자도 최종 결의됐다. 한진중공업은  지난 2월 말, 5대 1 비율의 무상감자를 실시하고 조남호 회장과 한진중공업홀딩스 지분은 전량 소각하겠다고 공시했다.

지분 소각 후 주 채권단인 산업은행과 필리핀은행 등이 6784억원을 출자전환하면서 한진중공업의 최대주주는 산업은행으로 바뀌었다.

조 회장의 ‘빅 싱크’ 수빅조선소... 완전자본잠식 원인 되다

필리핀 수빅조선소가 조 회장 경영권 박탈의 주요 원인이 됐다. 10여년 전, 조 회장은 미국 컬럼비아대 번트 슈미트 교수가 주창한 ‘빅 씽크’(Big Think)를 매료됐고 불현듯 조선업 불모지인 필리핀으로 눈을 돌렸다. 빅씽크는 창의성, 아이디어, 대담한 행동을 골자로 한다. 당시 한진중공업은 번트 슈미트 교수를 초청해 임직원 대상 강연회도 개최한 바 있다.

필리핀으로 눈을 돌린 것은 저렴한 인건비를 바탕으로 수익을 높일 복안이었다. 필리핀 통계청에 따르면 2017년 제조업 평균 일일 임금은 394.15페소(약 8500원)에 불과하다.

많은 반대가 잇따랐다. 필리핀은 숙련된 노동자 수급도 어려웠으며, 열대기후로 우기 강우량이 많아 외부작업을 하기에도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한진중공업은 우기 강우량을 극복하기 위해 우천대비용 쉘터(shelter) 공법까지 개발했다.

▲ 한진중공업이 개발한 수빅조선소용 이동식 쉘터. 사진=한진중공업

그만큼 조 회장의 의지는 강했다. “열악한 기후 조건 때문에, 미약한 기반 산업 때문에, 부족한 기술 인력 때문에 모두들 안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수빅조선소를 소개하는 문장 일부다.

문제는 조선업 업황이 악화되면서 점점 경쟁력을 잃어갔다는 점이다. 수빅조선소의 수주량은 급감해, 지난해 3분기 3억4212만달러에 불과했다. 2015년 수주잔고는 16억7855만달러였다.

남은 일감은 점점 줄어드는 반면, 들어오는 일감은 없었다. 이에 가동률은 지난해 3분기 기준 27.9%에 불과할 만큼 낮아졌다.

결국 수빅조선소는 한진중공업 완전자본잠식의 주요 원인이 됐다. 수빅조선소 순손실 상태는 수 년간 지속됐고, 결국 지난 1월 초 필리핀 현지 올롱가포 법원에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하게 됐다.

이 영향으로 미처리결손금이 지난해 말 기준 1조6721억원으로 크게 뛰며 자본총계 마이너스가 됐다. 완전자본잠식이 된 것이다.

실적에도 영향을 미쳤다. 한진중공업은 수빅조선소 지분 99%를 보유하고 있으므로 해당 지분만큼 손실이 반영됐다. 한진중공업의 지난해 별도기준 순손실은 9621억원에 이른다.

이병모 사장 신임 대표이사 선임... “재도약 발판 다질 것”

이날 주총에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직 박탈과 함께 이병모 사장이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이병모 사장은 서울대 조선공학과를 졸업하고 1982년 대우조선해양에 입사한 이래 근 40년간 조선업종에 근무해왔다.

▲ 29일 열린 정기 주총에서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된 이병모 사장. 사진=한진중공업

설계·영업·생산·경영 등 조선소의 요직을 두루 거치며 경력을 쌓았다. 지난 2011년과 2015년에는 대한조선 대표이사와 STX조선해양 대표이사를 역임한 바 있다. 2017년부터는 인하대학교 조선해양공학과 산학협력교수직을 수행했다.

이병모 신임 대표이사는 “오랜 세월 대형 및 중형조선소 현장에 몸담으며 쌓아온 노하우를 살려 회사의 조기 정상화를 목표로 내실과 재도약 발판을 단단히 다져나가겠다”며 포부를 전했다.

한편, 한진중공업은 이날 주총에서 2019년도 경영목표를 '경영정상화 및 새로운 출발'로 정했다. 세부 경영방침은 ▲기초역량 강화 ▲수익성 중심 경영 ▲미래 성장기반 확보 등으로 설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