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칼럼에서는 암사동(岩寺洞)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서울 강동구에 위치한 이 암사동은 한강을 바로 앞에 두고 있는 터다. 먼저 암사동이라는 지역명은 신라시대 절이 9개나 있어 구암사라 했는데 그 한자를 이름으로 사용하여 암사리라 했고 지금의 암사동이 되었다.

한강을 바로 앞에 두었으니 물이 많은 지역인 것은 당연하고 역사 유적들이 많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특히 신석기시대의 유적지가 있는데 취락의 형태를 갖춘 주거지로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다. 신석기시대의 생활상을 담은 전시관도 있다.

물은 풍수에서든 음양오행 학문에서든 주역에서든 모두 생명이 출현하는 근본으로 본다. 또한 풍수에서는 재물을 얻을 수 있는 명터로도 보는데 암사동은 한강을 중심으로 한 도시개발의 기회를 맞이했다.

그전에 유적지에 대해 조금 더 설명하자면 이곳엔 광주이씨광릉부원군파묘역이 있다. 조선 전기의 문신 광릉부원군 이극배(李克培)와 후손들이 묻혀있는 묘다.

산의 기운이 크게 이루어져 있지는 않지만 고덕산과 매봉산이 인근에 있다. 현재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9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세종부터 연산군에 이르기까지 7대왕을 섬긴 사람이다. 이극배는 1422~1495년까지 살았다.

암사동은 생태공원과 광나루한강공원을 앞에 두고 있고 개발로 인해 현재 상당히 발전하고 있으며 인구밀도도 높아지고 있다.

암사동의 길은 올림픽도로와 상일IC를 이용해 고속도로를 타고 뻗어가기 좋은 지역이다. 문화유적지로써 공업지역이 아닌 대체로 주거지역이므로 쾌적한 주거시설을 자랑하고 있다.

현대에 잘 들어맞는 이론은 아니지만 과거 풍수는 명당에 묘를 썼다. 명당에 조상의 묘를 잡으면 후손이 발복하기 때문이었다. 광주이씨의 즉 이극배의 후손이 현재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지 자세히 조사해 보진 않았지만, 암사동이라는 터가 이극배의 묘 터에 있는걸 보면 상당히 명터에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배산임수의 모습을 보이거나 한강 뒤로 명산의 기운이 받쳐주질 못하니 이 점은 아쉽다.

갈수록 더워지는 온난화 속에서 암사동이 갖는 지역적 조건은 밝다. 단지 요즘 심해지는 미세먼지에 있어서는 불가항력이다.

암사동에는 서원마을이 있는데 이곳의 위치가 좋다. 앞에 IC가 있어 다소 요란해 보이지만, 앞에 강을 바라보는 거리 정도와 옆에 위치한 이극배의 묘 터 그리고 뒤에 위치한 작은 야산의 모습이 좋다. 비록 한창 개발된 상업지구와의 거리감은 있지만 좋은 조건을 갖췄다.

그 뒤 양지마을도 좋은 터로 보이는데 점차 개발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 지역이 묘 터 근처라 개발제한 구역일 수도 있다.

암사동의 장점은 트인 시야를 갖췄다는 것이다. 운이 나쁜 사람은 앞 시야가 트여 있는 곳이 좋고, 막힘이 많아 인생이 답답한 사람도 터가 트여있으면 좋은 기운을 받는다.

한강에 끊겨 맞은편의 아차산 기운을 제대로 받진 못했지만 도시풍수적인 경관의 면에서 암사동의 경제적 가치는 높다. 앞에 강도 있고 산도 보이는 경관이기 때문이다. 이곳은 좀 더 높은 시야에서 보면 뒤에는 약 300미터의 금암산의 기운과 정면의 약 300미터의 아차산의 중간에 위치했다.

한강이 아니었다면 지금보다 의미 있는 명당일 수 있지만 한강의 물기 운이 워낙 좋기에 지금도 좋은 터다.

특히 암사동의 길은 시원스럽게 뻗어진 길이 있어 좋고 제법 널찍한 길들이 많다.

근처에 위치한 롯데캐슬퍼스트 아파트의 위치도 함께 붙어 있는데 이곳도 좋은 터로 보인다.

현재는 암사동의 땅값도 많이 올랐지만 행정구역상 서울이면서 좋은 터에 주거지를 잡기 원한다면 암사동을 추천한다.

이극배가 자리한 터는 좋은 명당인 만큼 암사동은 좋은 기운을 받는 자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