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태호 기자] 뚜렷한 가늠자가 없어 예측이 어려운 해외 기업결합 승인심사가 국내 '빅1' 조선사 출범의 최대 걸림돌로 지목되고 있다. 중국과 유럽연합(EU)부터 제3국의 기업결합 승인 거부도 점쳐지는 중에 업계 전문가들은 승인 거부 이후에도 협상이나 조건부 승인을 통해 합병 지속 추진이 가능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28일 조선업계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한 실사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곧 실사에 돌입할 예정이다.

실사는 합병 최종 완료를 위해 거쳐야 할 마지막 관문인 '기업결합 심사'를 위해 필요하다. 기업결합 승인 신고를 위해 먼저 인수 대상 기업의 제반 정보를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현대중공업은 실사를 통해 대우조선해양의 재무, 회계, 기술력, 영업력 등 전반 사항을 파악할 것으로 보인다.

기업결합심사는 실사 이후 국내와 국제에서 동시 진행될 전망이다. 국내의 경우 공정거래위원회의 승인이 필요하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승인이 대체로 무리 없이 통과될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발언이 이같은 주장을 뒷받침하는 모양새다. 김상조 위원장은 지난 11일(현지시각) 벨기에 브뤼셀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해외 경쟁당국에서 우리 판단을 참고할 수 있는 수준의 결론을 내놓겠다"라며 "어느 경쟁당국보다 한국 공정위가 가장 먼저 결론을 낼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즉, 타국이 참조할 만한 결론을 빠르게 내놓을 것이라는 의미가 곧 국내 기업결합 승인이 이뤄질 것이라고 에둘러 해석되는 것이다. 실제 기업결합은 경쟁제한 폐해보다 전후방 산업 발전에 현저히 기여하는 등의 효율성 증대효과가 더욱 클 경우 승인 가능하다.

국가마다 기준 달라 예측 어려운 국제 기업결합 승인

문제는 국제 기업결합 승인이다. 현대중공업이 기업결합을 신고한 국가 중 단 한 곳에서라도 승인을 얻지 못하면 합병은 무산될 수밖에 없다.

실사조차 진행되지 않았으므로 현재는 총 몇 개 국가에서 승인을 받아야 하는 지 가늠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다만 과거 사례를 살펴볼 수는 있다. 글로벌 컨테이너선사 머스크는 총 23개국에서 기업결합 승인을 받은 후에야 함부르크 슈드 인수를 완료할 수 있었다.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합병은 이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현대중공업이 실사 이전부터 철저한 기업결합 전략을 준비하고 있는 이유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현재 법무법인과 컨설팅 회사 등을 고용해 기업결합을 준비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해외 기업결합 승인은 예측이 거의 불가능하다. 국제 표준이 없고 각 국의 법률해석에 좌우되기 때문이다. 선종별 점유율 분석 등 매우 세밀한 평가가 국가마다 달리 진행된다는 점도 예측을 어렵게 하는 요소다.

지광훈 한국기업평가 수석연구원은 "중국, 미국, EU 등 보수적 보호무역주의 경향이 확대되고 있는 해외시장에서의 결합심사는 그 결과나 발생 변수의 예측 자체가 어렵다"라고 말했다.

대체로 업계는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합병의 가장 큰 장애물로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과 초대형원유운반선(VLCC)의 점유율을 짚는다.

DB금융투자에 따르면 재화중량톤수(DWT) 기준 글로벌 LNG 운반선의 3월 수주잔고를 볼 때 대우조선해양 점유율은 30.9%고 현대중공업은 자회사 합산 27.6%를 기록하고 있다. 이들을 합치면 58.5%의 점유율이 된다. VLCC 점유율도 56.6%로 절반이 넘는다.

▲ 글로벌 조선 그룹 상위 10개사의 수주잔고기준 점유율. 출처=DB금융투자

김홍균 DB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LNG운반선과 VLCC 시장점유율이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 기업결합 과정에서 경쟁제한적인 요소로 주목받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분석했다.

업계 관계자도 "기업결합에서 가장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LNG운반선과 VLCC의 시장점유율"이라고 바라봤다.

최대 장벽은 중국? 유럽? 아니면 제3국?

예측이 어려운 상황이므로, 업계에서는 기업결합 심사의 최대 장벽이 될 국가에 대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

주로 언급되는 국가는 중국이다. 민병두 국회 정무위원장은 지난 1월 페이스북에서 "경쟁국인 미국, EU, 중국이 기업결합에 동의해야하는데 문제는 경쟁국인 중국"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업계 전문가는 “중국은 현재 조선소 합병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국내 기업결합을 문제 삼기에는 다소 어폐가 있는 상황"이라며 "다만 중국의 그간 행태를 감안하면 승인을 거부할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초대형원유운반선(VLCC). 사진=현대중공업그룹

일각에서는 중국보다는 오히려 유럽이 최대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바라보고 있다.

다른 업계 전문가는 “선박을 발주하는 선주사가 주로 유럽에 몰려있기 때문에 EU가 오히려 기업결합 승인을 거부할 수 있다"라며 "유럽 선주사들은 시장점유율이 높은 글로벌 조선사가 출범할 경우 가격협상 주도권을 일부 상실하게 돼 결국 자신들의 이익 규모가 줄어들게 될 것이라는 논리로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 전문가는 "기업결합을 승인하는 국가 입장에서는 선주사들의 이러한 요구를 귀담아 들을 수밖에 없지 않겠나"라고도 덧붙였다.

안드레아스 문트(Andreas Mundt) 독일 연방카르텔청장도 지난 15일(현지시각) 베를린에서 한국 기자들과 만나 "시장경제 관점에서 합병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는 방식은 진정한 해결책이 아니다"라며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침체에 빠진 회사를 합병으로 회생시키려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본다"라고 말한 바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중국, 유럽 외의 다른 국가가 기업결합을 승인하지 않을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한 업계 전문가는 “주로 거론되는 미국, 중국, 일본, 유럽 외의 제3국이 기업결합을 허가하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라며 "이 경우 주요 국가들의 판단이 지침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바라봤다.

"기업결합 거부돼도 협상이나 조건부 승인 통해 합병 추진 가능"

다만 업계는 일부 국가가 기업결합을 허가하지 않아도 곧바로 합병 무산이 되는 것은 아닐 것으로 바라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일부 국가가 반대해도 합병이 바로 무산되지는 않을 것" 이라며 "지속적인 협상을 통해 합병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안지은 한국신용평가 연구위원은 "특정 시정조치를 전제로 한 조건부 승인도 가능하다"라며 "과거 사례를 볼 때 시정조치를 전제로 하는 조건부 승인도 많았다"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시정조치 후 조건부 합병이 이뤄진 경우가 있다. DB금융투자에 따르면 국내 공정위는 지난 2016년 세계 1위 컨테이너선사 머스크의 함부르크 슈드를 인수 건에 대해 조건부 승인을 했다.

해당 기업결합에서 극동아시아-중미 카리브해 항로의 기업결합 이후 컨소시엄 단위 시장점유율은 54.1%를, 극동아시아-남미 서해안 항로 점유율은 65.9%를 기록한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이에 대해 공정위는 피인수 대상 기업인 함부르크 슈드가 극동아시아-중미 카리브해 항로 컨소시엄에서 탈퇴하는 것과 극동아시아-남미 서해한 항로의 컨소시엄 계약 기간 연장 금지 등의 시정조치 제시 후 기업결합을 최종 승인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