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에 보여준 시진핑 주석의 중국식 교역방식

이탈리아를 시작으로, 모나코와 프랑스로 이어지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유럽 방문은 연일 화제이다. 첫 방문지 이탈리아에서부터, 시진핑 주석은 중국의 위력을 과시했다. 유럽 방문을 마칠 즈음이면, 중국을 바라보는 세계의 시선은 달라질 것이다.

시진핑 주석은 경제 위기에 빠진 이탈리아 정부와 200억 유로(25조 6,500억 원) 규모의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그러자 이탈리아 정부는 796점의 중국 문화재를 돌려주겠다고 화답했다. 중국의 가는 말이 곱자, 이탈리아의 오는 말도 고왔던 것이다.

그러나 진짜 중요한 것은 시진핑 주석이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와 체결한 일대일로 MOU.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한 우려가 팽배한 가운데, 현재까지 상황은 미국과 EU 국가 전체가 일대일로에 대한 미온적 태도. 하지만 이탈리아는 중국을 택했다.

홍콩 매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이탈리아가 중국에 개방을 허락한 항구를 발표했다. 이탈리아는 기존에 발표한 트리에스테 항구 이외, 라베나 항구, 제노바 항구, 팔레르모 항구를 중국에 개방하기로 했다. 따라서 중국은 이탈리아 4개 항구의 지분을 보유하거나, 합작 법인을 세우는 방식으로 본격 관리에 돌입할 예정이다.

이번 시진핑 주석이 콘테 총리와 체결한 일대일로 MOU로, 중국은 천군만마를 얻었다. 서방선진 7개국(G7) 중 일대일로 참여를 공식화한 나라가 생겼으니, 시진핑 주석의 향후 행보는 가벼워질 수밖에 없다. 남은 나라는 영국, 프랑스, 독일 등 3개국.

 

프랑스로 이어진 시진핑 주석의 중국식 교역방식

프랑스의 경제 사정은 이탈리아보다 좋지 않다. 2019년 3월 23일, 19차로 이어진 노란조끼 시위로, 프랑스는 마크롱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의문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 그런데 바로 이때, 시진핑 주석이 프랑스를 찾았고, 마크롱 대통령과 회담했다.

시진핑 주석을 만나기 전까지, 마크롱 대통령의 부담은 말로 표현 못할 상황. 감당하기 어려운 국내 경제 사정에 대한 스트레스에, 이탈리아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고 일대일로 MOU까지 체결을 한 시진핑 주석과 만나 이탈리아 수준의 성과를 얻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자연히 위축된 심기가 경직된 표정으로 드러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3월 24일, 이탈리아에서 프랑스 휴양도시 니스로 건너온 시진핑 주석은 마크롱 대통령의 입이 쩍 벌어질 정도로 파격적인 선물을 제공했다. 프랑스의 에어버스 항공기 300대를 구매하겠다고 제안한 것이었다. 계약 체결 규모는 300억 유로(38조 5천억 원) 수준. 2018년, 마크롱 대통령 방중 당시 약속했던 184대를 넘어서는 엄청난 액수였다. 에어버스 구입은 경제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가 될 수 있었다.

서민 경제 불만에서 시작된 노란조끼 시위로 코너에 몰린 마크롱 대통령. 시진핑 주석의 프랑스 방문이 경제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수출 경기가 좋아지면, 내수 경제는 좋아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었다. 마크롱 대통령은 시진핑 주석으로부터 정권 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는 은전을 입었다.

이것이 바로 중국이 수천 년 전부터 지속해온 중국식 교역법이다. 무역을 하자던 영국 정부를 이해하지 못했던 청나라는 사대(事大)와 자소(字小)의 예를 가지고 있었다. 굴기를 외치는 중국은 지금 수천 년 지속해온 사대와 자소의 예를 재현 중이다.

 

중국의 서역 원정의 역사

유럽은 아시아를 동양(Orient)라고 불렀고, 자신들을 서방(Occident)라고 불렀다. 오리엔트는 해가 뜨는 곳, 옥시덴트는 해가 지는 곳이라는 라틴어이다. 유럽인들은 해가 뜨는 동양을 줄곧 문화의 출발이라고 생각해왔고, 강력한 신비함이 있다고 믿었다.

마찬가지로, 아시아를 대표하는 동양은 유럽을 서역(西域)이라고 불렀다. 중국이 중심이고, 위로는 북역, 오른쪽으로는 동역, 밑으로는 남역, 왼쪽으로는 전부 서역이었다. 그래서 중국의 입장에서 서역은 중국 이외의 왼쪽지역 전부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과거 수천 년 동안, 중국은 서역에 대한 인식이 있었다. 가깝게는 인도와 중동에서부터 멀게는 파미르 고원 너머의 유럽 열국의 실체에 대해서도 알고 있었던 것이다. 비단길을 통해서, 중국의 문물을 수입해나가는 대상들의 행렬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서역에 대해서, 중국은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몇 차례 크고, 작은 관계를 맺었다. 기원전 110년 경, 한 무제가 숙적 북방 흉노족을 치기 위해서 서방 월지국과 군사동맹을 맺고자 장건을 파견했던 것이 대표적인 사례이다. 장건은 교섭에 실패했지만, 이때부터 중국은 중앙아시아 각국에 대해 알게 되었고, 비단길을 통해 교류를 시작했다.

850년 뒤인 740년 경, 당 현종 시절, 고구려 유민의 후손 고선지는 군대를 이끌고, 달해부(투르쿠 일족) 원정을 시작으로, 소발률(파키스탄 훈자쿠트 족), 갈사국(부여지파 소국), 정토(타슈켄트), 석국(우즈베키스탄), 탈라스 전쟁(751년, 중국의 석국 정벌 후, 석국 왕이 이슬람제국에 원조 요청, 당 고선지 패배) 등 5차례 전쟁을 통해서 서역 원정을 단행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동양을 상징하는 중국은 유럽에 소개되었다.

1215년, 한족이 아닌 몽골제국의 칭기즈칸이 금나라를 세워 중원을 차지한 뒤, 중앙아시아, 러시아, 유럽을 공격한 것은 동서세계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엄청난 살륙을 자행한 몽골제국이었지만, 초원길을 이용한 동서교류를 시작하는 결과를 만들었다. 몽골제국의 지배하에 통일을 회복한 중국 남부 항구에서는 대형 화물선이 인도를 향해 항행하기도 했고, 페르시아, 인도, 중앙아시아, 흑해 주변의 러시아까지 교역했다.

 

새로운 방식으로 재현되는 중국의 사대자소

18세기 이후, 산업혁명에 성공한 영국 등 유럽 선진국들이 동양을 침탈할 때, 중국은 급격하게 쇄락했다. 19세기 중반 이후, 중국은 지난 150년간 세계 역사의 중심에서 소외되었다. 그리고 이제 다시 중국은 개혁개방 40년 만에 굴기를 시작하고 있다.

2019년 3월 26일, 콘테 이탈리아 총리,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시진핑 주석은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메르켈 독일 총리, 장클로드 융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위원장과 다자회담을 가졌다. 중국과 EU간의 주요 이슈를 논의하는 자리였다.

이탈리아와 일대일로 MOU를 체결한 시진핑 주석은 이미 반쯤 마음이 열린 마크롱 대통령 곁에 두고, 메르켈 총리를 압박했다. EU는 중국이 지정학적, 군사적 확장을 꾀한다는 우려를 가지고 있지만, 시진핑 주석은 그러든 말든 일대일로를 강조했다.

다자회담 후, 시진핑 주석은 “물론 유럽과 중국 간에는 차이가 있고, 경쟁이 있지만 이는 긍정적인 경쟁”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나아가고 있다. 불신이 우리가 뒤를 돌아보도록 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남은 것은 메르켈 총리와 융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위원장의 결단뿐이다. 중국은 다시 세계의 중심이 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은 과거의 중국처럼 무력을 행사하지도 않고, 사대를 강요하지 않는다. 위기에 몰린 국가 지도자들을 찾아다니며, 오히려 기꺼운 마음으로 자소를 먼저 베풀고 있다. 이것이 시진핑 주석의 교역방식이고, 일대일로 종착점 유럽 경영 전략이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격언은 이제 ‘모든 길은 중국으로 통한다.’로 바뀌고 있다. 선택은 개별 국가의 몫이다. 시진핑 주석의 2019년 3월 유럽 방문은 100년 후를 바라보는 세계 경영 전략의 일환이다. 시진핑 주석의 행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