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크리스토퍼 웨버 다케다 제약 CEO는 카를로스 곤 전 닛산 회장의 퇴출 후 거의 유일한 일본 대기업 외국인 CEO다.   출처= Twitter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위험을 감수한 결정은 때로는 성공하고 때로는 실패한다. 때로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기도 한다. 위험을 감수한 최고경영자를 다룬 CNN의 ‘리스크 테이커’(Risk Taker) 특집 시리즈를 소개한다.

2018년 3월, 일본의 제약회사 다케다(Takeda Pharmaceutical Company Ltd.)의 크리스토프 웨버 최고경영자(CEO)가 거액을 들여 아일랜드의 경쟁업체 샤이어(Shire)를 인수하겠다고 말했을 때 투자자들은 그리 기뻐하지 않았다.

다케다는 250년 전통을 자랑하는 일본 기업이다. 웨버 CEO가 샤이어 인수 계획을 발표했을 때, 이 회사의 주가는 20% 가까이 떨어졌고 여전히 대주주로 남아있는 회사 설립자 가족들은 매우 불안해했다.

일본 국내 기업에서 글로벌 기업으로

몇 달 후, 웨버가 620억달러(70조원)라는 거액의 거래를 성사시켰을 때 업계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가격은 웨버가 처음 인수를 제안했을 때의 샤이어 주가보다 무려 60%나 높은 가격이었기 때문이다. 다케다는 또 금융권으로부터 약 300억달러를 차입하겠다고 말했다.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Moody’s)와 S&P 글로벌은 다케다의 신용등급을 즉시 하향했다.

투자조사회사 모닝스타(Morningstar)의 캐런 앤더슨 애널리스트는 “너무나 충격적이었다”고 회고했다.

“한 눈에 봐도 그 거래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위험해 보였습니다.”

위험을 자초한 것일까 아니면 시장의 판도를 변화시킬 것인가, 이 거래를 총지휘한 웨버의 과욕인가, 시장에서는 수많은 말이 오갔다.

이 거래는 지금까지 일본 기업의 인수로는 사상 최대 규모다.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투자자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 회장도 이 정도 규모의 인수 합병을 시도한 적이 없다(소프트뱅크가 지난 2016년 영국 ARM홀딩스를 318억달러에 인수한 것이 지금까지의 최대 해외 M&A 기록이다).

웨버는 샤이어 인수는 다케다가 글로벌 제약 시장의 주력으로 변화하기 위해 꼭 필요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지난해 12월 뉴욕에서 열린 패널 토론에서 “글로벌 플레이어가 되는 것이 정말 오랜 염원이었다”고 말했다.

다케다는 매출 기준 세계 18위, 샤이어는 19위로 두 회사의 매출을 합치면 310억달러(35조 2000억원)로 세계 9위 제약사로 도약한다.

▲ 웨버 CEO는 많은 사람들의 우려를 물리치고 아일랜드의 샤이어를 인수합병해 다케다가 글로벌 플레이어로 나아가는 방향을 선택했다.  출처= The Street

일본 대기업 유일의 외국인 CEO로 남아

프랑스 시민권자인 웨버는 영국 제약회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laxoSmithKline)에서 유럽, 아시아, 미국 지역의 경영책임을 맡아 오랫동안 근무한 후 2014년 다케다에 최고운영책임자(COO)로 합류했다.

다케다에서 그는 불과 1년 만에 최고 경영자의 자리에 올랐다. 다케다의 첫 외국인 보스로 그가 임명되자 업계에서는 많은 논란이 일었다. 일본에서는 외국인 CEO가 보기 드물 뿐 아니라 대개는 (위기에 빠져) 최후 수단으로만 선임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개 실적과 관련해 단명으로 끝났다. 카를로스 곤 닛산 전 회장의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다. 현재 일본 대기업의 외국인 CEO는 그가 거의 유일하다.

소프트뱅크의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 회장도 일본인으로 귀화하기 전까지 ‘국적이 어디냐’는 질문을 심심찮게 받아왔다. 구글 출신의 인도인 니케시 아로라를 후계자로 지명했을 때도 사내의 반발이 만만찮았다고 한다.

다케다는 250년 전인 18세기에 전통 일본 의약품을 파는 작은 가게로 출발했다. 도쿄 주식거래소에 상장된 것은 1949년이다.

비록 최근 매출과 수익이 크게 증가했지만, 이 회사는 앞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을 수도 있다. 다케다는 암을 치료하는 약을 만들었지만 아직 이 신제품의 시장 판매 네트워크는 그리 탄탄하지 않다. 이 회사는 또, 급속한 인구 고령화로 인해 규제 당국이 더 저렴한 일반 약품을 권장하는 일본에서만 대부분의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모닝스타의 앤더슨 애널리스트는 “다케다는 뭔가 극적인 일을 만들어 내야 하는 상황에 있었다. 샤이어 인수는 다케다에게 희귀병 의약품 같은 새로운 수입원과, 수익성이 좋은 미국 시장에 점유율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의 비판 걱정하지 않아

다케다에서 임원으로 재직하다가 현재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는 피터 펠딩거는 “웨버의 CEO 임명은 다케다에게 큰 변화였지만, 일본 측의 항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사람들은 다케다에 일본인 리더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실제로 웨버는 창업가 가족을 포함한 이 회사 임원 출신 주주들이 결성한 ‘다케다의 미래를 걱정하는 모임’의 반발에 시달려 왔다. 일본 재계에서는 웨버가 다케다의 기업 가치를 높여 외국 대형 제약업체에 매각할 것이라는 소문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그것은 옳은 조치였습니다. 당시 일본인 임원 가운데 CEO를 맡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웨버는 CEO에 취임하면서, 회사를 일본 밖으로까지 성장시켜야 한다는 것과 상당한 비용 절감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회사의 과감한 변신을 주도했다. 다케다는 오사카에 있는 본사 건물을 매각하고 연구개발비 지출 삭감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식의 접근은 일본에서는 잘 볼 수 없는 일이다.

펠딩거는 “웨버는 일본의 뿌리와 유산을 유지한 채 진정한 글로벌 제약기업으로서 부상할 것을 꿈꾸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샤이어 인수를 중단하라고(비록 실패했지만) 소액주주들에게 조언했던 미시마 시게루 전 애널리스트는 다케다가 앞으로 수년 동안 막대한 부채에 짓눌릴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도시바의 해외 확장 진출이 비싼 대가를 치르고 실패했던 점을 지적하며 다케다의 해외 모험이 잘못될 수 있다고 우려를 제기했다.

그는 다케다가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일본 시장에 집중하고 소규모 인수합병(M&A)에 주력했어야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샤이어 인수를 발표하면서 회사의 주가가 하락한 것은 웨버가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웨버는 남의 비판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

“대개 그렇게 대담한 결정을 하는 경우, 모든 사람을 납득시키기는 어려운 법입니다.”

그는 지난 1월 샤이어 인수 절차를 마무리하면서 “다케다 임시주총에서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의결돼 매우 기쁘게 생각한다”며 “전 세계 80여개 국가와 지역에 혁신적인 의약품을 제공함으로써 일본과 미국에서 선두적인 위치를 공고히 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