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이성규 기자] 3월 27일 열린 대한항공 정기주주총회에서 조양호 회장에 대한 임기 3년의 사내이사 재선을 놓고 표대결이 진행됐다. 결과는 ‘부결’. 조 회장은 경영권을 지켜내지 못했다.

그 배경에는 대한항공 2대주주인 국민연금(11.56%)의 힘이 작용한 측면도 있다.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원년을 맞아 원칙에 입각해 의결권을 행사했다는 주장이다. 제도 도입 후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통해 경영진이 물러나는 첫 사례인 만큼 향후 국민연금은 물론 주주들의 영향력도 확대될 것을 보인다.

국민연금을 둘러싼 논란도 다소 줄어들 것으로 관측된다. 그간 국민의 노후자금으로 재벌가의 승계를 도왔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았다. 대한항공 사례를 시작으로 기업의 경영투명성에 대한 관심은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단순 실적뿐만 아니라 경영진의 도덕성 등도 경영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이번 일에 대해 “스튜어드십코드 도입의 긍정적인 면을 보여준 것”이라고 평가했다.

긍정적이라는 점은 동의한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여지도 충분하다. 스튜어드십코드는 주주를 위한 제도다. 기업의 자본을 움켜쥐고 있는 존재들이다. 반면, 채권자는 기업의 부채를 담당한다. 자본과 부채는 ‘돈’이라는 측면에서 기업을 지탱하는 역할을 하지만 주주와 채권자라는 측면에서 보면 두 주체의 관점은 분명 다르다.

예를 들어 한 기업의 주주가 자신들을 위해 기업에 배당 등 과도한 요구를 하게 되면 채권자는 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다. 기업의 성장보다는 현금흐름과 상환능력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곳간이 부족해지면 채권자는 해당 기업에 발을 끊을 수 있다.

과도한 부채도 문제지만 자본만으로 살아갈 수 없는 것이 기업이다. 자본과 부채가 적절히 조화돼야 기업가치가 제고된다는 점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자본시장을 움직이는 가장 큰 요인은 채권, 이를 뒷받침하고 있는 신용평가사의 ‘등급’이다. 대한항공 사태를 자본시장으로 확대해서 보면 웃을 수만은 없다.

주주의 편에서 볼 때, 스튜어드십코드 시작은 맞지만 기업발전이라는 관점에선 주주와 채권자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경영이 필요하다. 경영진의 능력이 더욱 중요하다는 얘기는 여기서 출발한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수요하는 고객은 기본이며 주주는 물론 채권자도 이전 대비 신경 써야 하는 부분이 늘어난 셈이다.

단순히 주주의 입맛에 맞추는 행위는 다른 한쪽이 무너지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기업의 영속성을 보장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그만큼 경영진의 ‘균형’있는 태도가 중요한 시기라 할 수 있다.

물론 쉬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기업의 발전을 원한다면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사안이다. 새로운 것이 아닌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이다.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말이 현 상황을 적절히 표현하는 말이 아닐까.

대한항공이 스튜어드십코드의 첫 긍정적 사례라고 해서 들떠서는 안 된다. 말 그대로 이제 시작일 뿐이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도 있고,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우리가 지금부터 생각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 하면 기업을 둘러싼 이해관계자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지 여부다. 그것이 진정으로 한국 기업이 글로벌 시장에서 인정받는 길이라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