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장영성 기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대한항공 사내이사에서 물러난다. 지난 1999년 4월 부친인 고(故) 조중훈 회장에 이어 대한항공 사내이사를 맡아 이끌어온 지 20년 만에 대한항공 사내이사직을 내려놓는다.

조양호 회장의 대한항공 경영권 방어 실패는 앞서 예견돼왔다. 대한항공의 지분 11.56%를 가진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기업가치 훼손 이력 등의 이유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대한항공 사내이사 연임에 반대표를 던지기로 나선 것이다.

조 회장 연임에 반대하면서 국민연금은 기업가치를 훼손한 이력이 있다는 이유를 들었다.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기업 총수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주주권을 행사겠다는 국민연금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다. 여기에 외국인 주주와 기관, 소액주주들이 등지면서 대기업 총수가 주주손에 물러나는 첫 사례이자,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 행사로 영향력을 끼친 첫 사례가 나왔다.

대한항공은 27일 서울 강서구 대한항공빌딩에서 열린 제57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 등 4개 의안을 표결에 부쳤다.

관심이 집중된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안인 ‘제3호 이사 선임의 건’은 찬성 64.1%, 반대 35.9%로 부결됐다. 조양호 회장 연임에 찬성한 주식 수는 이날 주총에 참석한 의결권 있는 주식 수 가운데 64.1%에 달하는 4489만여주로 집계됐다. 반대 주식 수는 참석 주식 수의 35.9%에 2549만여주에 달한다.

대한항공 정관은 '사내이사 선임은 주총 참석 주주의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조 회장이 연임에 성공하려면 찬성 66.66% 이상이 필요하지만, 2.5%의 추가 지분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경영권 방어에 실패했다.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실패는 대기업 총수가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주주손에 물러나는 첫 번째 사례다. 동시에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코드 행사를 통해 영향력을 발휘한 첫 사례다. 앞서 국민연금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는 조 회장의 사내이사 연임 안건에 대해 “기업가치 훼손 내지 주주권 침해의 이력이 있다고 판단해 반대 결정을 했다”고 밝혔다.

조 회장은 대한항공 납품업체들로부터 항공기 장비·기내면세품을 사들이면서 총수 일가가 지배하는 페이퍼컴퍼니를 끼워 넣어 196억원 상당의 통행료를 챙겨 현재 총 270억원 규모의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이외에 ‘꼼수’ 주식 매매, 사무장 약국 운영 등으로도 재판을 받고 있다.

이에 국민연금은 지난 1월 대한항공을 '중점관리기업'으로 지정해 '경영 참여'에 해당하는 강도 높은 주주권 행사를 검토하기도 했다.

▲ 대한항공 지분 구조

대한항공 주식은 조 회장과 한진칼(29.96%) 등 특수관계인이 33.35%를 보유하고 있다. 국민연금(11.56%)이 반대하고 지분 22%가량이 동조할 경우 연임은 무산된다. 이 때문에 시장에서는 대한항공 지분 24.77%를 보유한 외국인 주주의 표심에 주목해 왔다.

앞서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기관인 ISS와 서스틴베스트, 좋은기업지배구조연구소 등은 조 회장 연임에 반대 권고를 했다. 해외 공적 연기금인 플로리다연금(SBAF), 캐나다연금(CPPIB), BCI(브리티시컬럼비아투자공사) 등도 의결권행사 사전 공시를 통해 조 회장 연임에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이러한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의 움직임이 외국인과 기관, 소액주주들의 투표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는 소액주주를 대상으로 벌이고 있는 의결권 위임 운동도 이날 조 회장의 경영권 박탈에 영향을 미쳤다.

조 회장 측은 “회사 가치 제고를 위해선 항공전문가 조 회장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회사 안팎에서 의결권 모으는 등 총력전을 벌여왔다. 대한항공 이사회는 “항공전문가인 조 회장의 리더십이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조 회장 경영권을 지키는 데 실패했다.

한편 조 회장은 과도한 이사겸직이라는 비판을 차단하기 위해 한진칼, 한진, 대한항공 이외 한진그룹 계열사에서는 임원직을 모두 내려놓겠다고 밝힌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