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말을 맞아 100만명의 런던 시민들이 '시민에게 맡겨라'(Put it to the people)는 팻말을 들고 브렉시트 반대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출처= MSN

[이코노믹리뷰=홍석윤 기자] 영국 내각 각료들이 테리사 메이 총리의 사퇴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주말을 맞은 런던 시민들은 거리로 몰려나와 '제2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대규모 집회를 연뒤, '시민에게 맡겨라'(Put it to the people)는 팻말을 들고 브렉시트 반대를 요구하는 행진을 벌였다.

현지 언론들은 집회 참가자를 1백만 명 이상으로 추산하면서 영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집회 중 하나라고 일제히 보도했다.

프랑스의 유럽연합(EU) 담당 장관은 영국의 EU 탈퇴를 고양이에 빗대 풍자했다. 문을 열어 달라고 난리 쳐서 열어줬더니 정작 못 나가고 있는 고양이와 같다는 것이다.

영국은 지난 20일 EU에 공식적으로 브렉시트 연기를 요청했다. EU는 21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정상회의를 열고 당초 오는 3월 29일로 예정된 브렉시트 연기 문제에 대해 ‘투 트랙’ 연장안을 제안했다.

EU는 영국 하원이 브렉시트 합의안에 동의할 경우 오는 5월 22일까지 브렉시트 시점을 연장한다는 방침이다. 이는 5월 23~26일 예정된 유럽의회 선거 직전까지만 허용하는 것이다. 영국 하원은 이번 주 메이 총리의 합의안을 놓고 승인 투표를 진행한다.

하지만 영국 하원이 합의안을 가결하지 못할 경우에는 브렉시트 시점은 4월 12일까지만 연장된다. 영국이 차기 유럽의회 선거 참여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4월 11일까지 시간을 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브렉시트 시국은 이미 영국 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주고 있다고 CNN이 2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

2016년 6월 국민투표에서 EU 탈퇴를 선택한 이후 영국의 파운드화는 크게 하락했고, 영국 경제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을 초래하면서 경제 활동은 위축되고 투자 부진이 이어졌다.

영국은행에 따르면, 영국이 EU에 그대로 남아있기를 선택했을 경우보다 현재 경제가 2% 더 수축됐다. 국민투표 이후 손실된 경제 생산(economic output)은 주당 약 8억 파운드(1조 2천억원), 시간당 470만 파운드(70억원)에 달한다.

영국 경제 생산에 이와 같은 천문학적 손실이 쌓여가고 있지만 영국의 對EU 및 기타 국가들과의 무역 관계에는 아직 아무런 구조적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영국은 최대 교역 상대인 유럽연합(EU)에 상품과 서비스를 계속 팔아왔고, 영국 기업들은 쉽게 EU 근로자들을 고용하고 국경을 넘나드는 공급망을 유지해 왔다. 그런데 정치인들은 이혼 협상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 브렉시트 투표 이후 영국 파운드화는 15% 하락했고, 브렉시트의 불확실성으로 이미 1조 3천억 파운드의 자산과 7000개의 금융업 일자리가 빠져나갔다. 출처= Food Navigator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표 이후 거의 3년에 가까운 시간이 지나는 동안, 영국 정부는 미래의 무역 조건을 명확히 밝히지 않아 기업들의 미래 계획 구상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그러는 동안 투자는 지연되거나 취소되었고, 많은 기업들이 브렉시트를 대비해 수백만 달러를 쏟아 부었다.

영국 정치가 이 같은 혼란을 보이면서 브렉시트는 코 앞에 다가왔고, 영국은 무역 보호를 위한 과도기적인 협상 없이 EU를 떠날 위험에 처했다. 영국은행은 이 시나리오의 여파가 2008년 금융위기보다 더 심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각한 경기 둔화

2016년 6월, 영국 유권자들이 투표장으로 발걸음을 향할 때에만 해도, 영국은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G7 경제국 중 하나였다. 영국은행은 브렉시트가 통과될 가능성을 예상하고 발 빠른 조치를 취하며 침체를 피해갔고 실업률도 낮은 수준을 유지했다.

그러나 이제 영국은 G7 순위에서 최하위로 떨어졌다. 경제 성장은 연간 2% 속도에서 현재 1% 미만으로 떨어졌다.

국민투표 이후 영국 기업들의 투자는 거의 정체되더니 2018년에는 3.7% 떨어졌다. 반면 나머지G7 국가의 투자는 같은 시기 매년 6% 증가했다.

영국의 기업 신뢰도도 1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영국은행의 거트얀 블리헤 금융통화위원은 지난달, "세계와 비교했을 때 영국의 이런 저조한 성과는 브렉시트 전망에 따른 불확실성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 고통은 일반 가정에서도 느껴졌다. 2016년 투표 이후 파운드화가 달러 대비 15% 이상 폭락하면서 수입품 가격이 그만큼 올랐다. 이것이 인플레이션을 촉발했고, 월급 생활자들의 급여가치가 떨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트라우마에 빠진 기업들

기업들은 브렉시트에 대비하는 대책(Breach-proof)을 시도함으로써 불확실성에 대응했다.

기업 로비단체인 영국 상공회의소(British Chambers of Commerce)의 아담 마샬 국장은 "많은 기업들이 지속적인 불확실성으로 인해 투자와 채용 결정에 제동을 거는 등, 정치적 무대책이 이미 경제적 대가를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 프랑스의 유럽연합(EU) 담당 장관은 영국을 문을 열어 달라고 난리 쳐서 열어줬더니 정작 못 나가고 있는 고양이와 같다고 비유했다.  출처= https://pixers.ca

여러 은행들은, 브렉시트 이후 이 지역 사업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독일, 프랑스, 아일랜드 등 다른 EU 국가에 새로운 사무실을 내기 시작했다. 금융 서비스 회사들도 EU 규제 기관들의 관련 법령에 따라 상당한 자산을 현지로 옮겨야 한다. 컨설팅 회사 EY에 따르면, 최소 1조 파운드(1500조원)의 자산이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

소니와 파나소닉 같은 외국 회사들은 모두 유럽 본사를 네덜란드로 이전하고 있다.

원활한 공급망을 유지해야 하는 제조 회사들도 움직이고 있다. 일본 자동차 회사 니산(Nissan)은브렉시트의 불확실성을 이유로 영국에 세우려던 신모델 공장 건설 계획을 백지화했다. 독일의 엔지니어링 그룹 셰플러(Schaeffler)도 같은 이유로 영국에 있는 3개 공장 중 2개를 폐쇄하고 있다.

가장 큰 위험

가장 위험한 시나리오인 무질서한 브렉시트, 즉 아무런 협상 없이 EU를 탈퇴하는 노딜 브렉시트의 가능성은 여전하다.

EU는 지난 21일 일단 영국의 브렉시트 잠정 연장을 허락했지만, 영국 국회의원들이 앞으로 나아갈 길(새 합의안)을 승인하지 않는 경우, 영국은 4월 11일까지 EU를 탈퇴해야 한다. 그동안 우려했던 노딜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는 것이다.

영국 재계를 대표하는 영국산업연맹(Confederation of British Industry)과 노동계를 대표하는 전국 단위 노동단체 노동조합의회(Trades Union Congress)의 고위 관리들도, 만약 정치인들이 노딜 브렉시트 상황을 초래한다면 영국은 ‘국가 비상사태’에 직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들은 메이 총리에게 보낸 서한에서 "영국 전역의 기업과 지역사회는 그런 결과에 대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우리 경제에 대한 충격은 다가올 세대들 에게까지 이어질 것"이라고 썼다.

맥도날드와 KFC는 영국 슈퍼마켓들과 연대해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 모든 공급망이 파괴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에어버스도 “그렇게 되면 향후 투자를 영국으로부터 다른 나라로 돌릴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