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진후 기자] 부동산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가려졌던 주거공간의 중요성이 자연스럽게 노출되고 있다. 온라인 쇼핑시대, 그리고 1인 가구, 고령화 시대와 함께 주거공간으로서의 주택에 대한 개념이 이미 바뀌고 있었다. 최근 악화되고 있는 미세먼지마저도 주거에 대한 본질적인 기능으로 회귀하게 하는 기폭제의 역할을 했다.

투자와 투기의 대상이었던 우리들의 집은 이제 건강과 문화 그리고 행복한 삶에 있어서 최고의 공간으로 다시 조명 받고 있다. 얼어붙은 부동산시장을 목도하고 있는 건설사들도 이제는 삶의 질을 높이는 주택 건설을 경쟁력으로 삼고 재무장하고 있다. 주택이 진화하고 있다.

이번에는 삶의 질이라는 분명한 목적을 향해 주택이 진화하고 있다. 부동산 경기 둔화가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건설사들은 새로운 주거모델 개발에 한창이다. 아파트 가격 하락은 주택가치의 초점이 점차 가격지향에서 거주기능지향으로 옮겨가는 흐름을 가리킨다. 이에 따라 2018년 이후 새로 분양하는 아파트 단지들의 견본주택에서 발견할 수 있는 특이점은 크게 세 가지로 집약된다. 하나는 공기청정시스템이고 다른 하나는 발코니 확장이나 가변형 벽채처럼 공간을 소유자의 취향에 따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제 수요자들에 게 집이란 사철을 횡행하는 미세먼지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수단으로 기능하고, 동시에 위험하고 번거로운 바깥세상에서의 소비활동을 대체할 수 있는 나만의 무대로 자리 잡는 것이다. 굳이 바깥으로 나가지 않아도 맑은 공기를 마시며 다양한 니즈와 자기실현이 가능한 주택을 소비자들은 원한다.

▲ 롯데건설은 실내에서 가꿀 수 있는 정원인 '캐슬홈가든'을 선보였다. 출처=롯데건설.

실제로 롯데건설 인테리어팀의 소비자 트렌드 조사결과, 소비자들은 미세먼지 등 환경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고, ‘워라밸’에 따라 휴식과 취미를 즐길 수 있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는 추세인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건설의 경우 2019년의 주거 트렌드 키워드로 ‘안전제일’, ‘취향존중’, 현대적 복고인 ‘뉴트로’(New-tro)를 선정하고 이를 반영한 주거공간인 ‘AZIT2.0’을 론칭했다.

말 그대로 ‘아지트’로 명명된 롯데캐슬의 특화 시스템은 올 초 분양할 계획인 ‘길음역 롯데캐슬 클라시아’ 견본 주택에서 첫 선을 보인 후 모든 사업장에 적용될 방침이다. AZIT2.0은 안전, 수납, 맞춤상품, 인테리어 스타일의 네 가지 측면에서 정의된다. 롯데캐슬은 안전부문에 있어 현관에서부터 미세먼지를 차단할 수 있는 에어 샤워기, 식탁 조명을 통한 주방 공기청정 등을 도입했다. 맞춤상품, 맞춤공간에 있어서는 실내에서 화초를 키우거나 정원을 가꿀 수 있는 ‘캐슬홈가든’과 함께 빌트인 와인냉장고 등 변화하는 생활양식을 반영했다. 삼성물산은 사물인터넷(IoT)과 연결된 첨단 제어시스템을 선보인다.

 

삼성물산의 주택브랜드인 래미안에는 ‘클린게이트’와 ‘에어드레서’를 적용해 현관에 들어서면서부터 옷에 붙은 먼지와 세균을 제거할 수 있다. 이렇게 떨어진 먼지는 천장 매립형 공기청정시스템이 오염도를 감지한 후, 현관 신발장 아래 설치된 흡기구로 흡수되는 시스템도 구현된다. 거실에는 친환경 IoT 장치인 거울형 스마트월을 설치해 환기시스템을 제어할 수 있고, 세대 출입 시 자동 환기도 가능하다. 주방에는 미세먼지를 감지하는 렌지 후드가 도입된다. 연동된 ‘IoT 홈큐브’가 사용자의 음성정보를 인식하면 실내 미세먼지 농도를 안내하거나, 천장 디퓨저를 가동하는 방식이다. 또한 거주자는 햇빛, 기온 등 외부와 비슷한 조건이 조성된 스 마트팜에서 약 30종의 채소를 재배할 수도 있다.

GS건설은 국내 최초 환기형 공기 청정 시스템인 ‘Sys Clien(시스클라인)’을 개발하고 3월 말 제품을 공개할 계획이다. 해당 모델은 시스템에어컨 형식의 환기형 빌트인 공기청정 시스템으로, 밀폐식 공기청정기가 가진 이산화탄소 농도의 단점을 극복하고 가구 내부 전체를 환기가 필요 없도록 해준다는 게 GS건설 측의 설명이다. 천정형인 시스클라인은 공간 제약을 없애면서 홈네트워크시스템, IoT로 제어해 실별 자동운전 모드 등이 가능하다. 시스클라인 시스템은 하반기 주요 분양단지를 시작으로 향후 모든 ‘자이’ 아파트에 설치될 전망이고, 아파트나 기존 주택뿐 아니라 오피스빌딩까지 설치가 가능하다.

트렌드를 변화시킬 또 다른 요인은 인구구조의 변화다. 가구 형태는 시대에 따라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핵가족에서 1인 가구 등 소가족 형태로 변화하고 있다. 주거 측면에서 이들은 더 세분화된다. 젊은 세대가 독립해 나가면 노부부가 또 하나의 가족 형태로 나타나고, 거꾸로 독립하지 않으면 캥거루족으로 남는다. 또한 1인 가구 중에서도 젊은 층이 있는가 하면 고령층 가운데서도 1인 가구가 생겨난다. 가구 구성이 달라지면서 공간을 점유하는 구성원의 성격에 따라 공간의 성격도 달라질 것으로 예측되는 부분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몇 년 전에는 40평 아파트에 방 네 개가 트렌드였고 30~40대 주부는 드레스룸을 요구 하는 기호를 보였다”면서 “최근엔 공용공간·거실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면서 방이 좁아지거나, 벽채를 틔워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자식이 하나둘 또는 아예 없는 집도 있는데 굳이 방이 네 개일 필요가 없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하면서 “일반적인 평면 구성에서 탈피하고는 있지만, 아직 소비자 수요가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작기 때문에 트렌드 자체로 인식하되 메인으로 구성하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건축 규제 역시 트렌드 변동에 한 몫을 담당한다. 건설사 관계자는 “규제와 환경적 요인이 주거 트렌드에 미치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다”면서 “‘스카이브릿지’와 같은 특화 시스템이 보여주듯 공적공간 확보, 소음과 일조권 등에서 건축 설계에 다양한 제약이 있다”고 설명했다. 관계자는 “제한된 틀 내에서 가장 효율적인 도면을 뽑아내는 게 잘 상품화되고 마케팅을 거치면 트렌드로 자리 잡기도 한다”면서 “최근 분양하는 단지들은 노인정과 어린이집, 다양한 커뮤니티시설을 기본으로 갖추면서 한편에선 소방과 안전 문제를 강조하고 있다” 고 말했다.

 

전문가가 바라본 주거 트렌드는?

노진호 '젊은건축가그룹 에이더스' 대표는 “한국인들은 자기만의 특별하고 차별화한 공간 구성을 선호하고 디자인도 중시하는 경향이 짙다”면서 “빠르게 변화하는 트렌드, 세대별로 선호가 다른 구성에 맞춰갈 수 있는 가변적인 공간구조를 선호한다”고 분석했다. 노진호 대표는 앞으로 다가올 주거 양식 트렌드를 두고 “여러 데이터를 감안할 때 앞으로 인구가 감소할 것이란 예측을 전제로, 차츰 주택이 투자의 대상보다는 최소한의 삶을 영위해 나갈 수 있는 ‘미니멀한 유닛’의 단위로 기능할 것”이라면서 “기존 주택에 대한 가격 합리성과 현실성에 있어서 소유에 대한 개념이 완벽하게 바뀌거나 흔들리지는 않을 것으로 판단하지만, 지금의 부동산과 건축보다는 좀 더 양극화가 두드러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 때문에 나만의 공간을 소유하길 원하는 높은 층위의 소비계층의 주택 과 미니멀한 생활유닛은 구분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다수 연예인들의 주택을 설계한 경험을 보유한 노진호 대표는 소위 ‘스타’들의 설계에도 이러한 특성이 반영된다고 설명한다. 노 대표는 “의뢰인마다 라이프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각자에 맞춘 디자인과 스페이스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부적으로는 자기의 정체성 이 드러날 수 있는 건물 형태, 매스디자인과 조형적인 요소를 주변 환경적 맥락에서 풀어내는 사례가 많다. 반면 내부적 요소로는 실내 체육관, 미니 극장, 사색과 차를 즐길 수 있는 테라스, 미술품·피규어 등 수집가를 위한 작은 전시공간 등 기존에 볼 수 없는 나만의 공간을 기획설계 단계부터 적용한다.

▲ 서울 시내 주택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는 '아파트'. 사진=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노진호 대표는 가장 대중적인 주택 유형으로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아파트의 특이성을 두고 “국내의 아파트 평면 구성은 지속적인 평면 개발을 통해 세계적으로 뛰어난 평가를 받고 있고, 해외에서 벤치마킹하는 사례도 많다”면서도 “획일화된 평면 구성이 거주자들의 생활양식을 동일하게 만들어버리는 단점도 있다”고 지적했다.

노 대표는 “아파트는 전용면적뿐 아니라 공용면적의 활용을 어떻게 유용하게 풀어내느냐가 향후 트렌드를 좌우할 것으로 생각한다”면서 “높은 활용성을 지닌 서비스 면적 공간과 차별화된 아이디어가 녹아든 평면구성이 아파트 내에서의 다양한 생활양식을 수용하고 변화를 유도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입주자만을 위해 잘 갖춰진 편의시설이 삶의 질을 좌우하기 때문에 커뮤니티센터, 차별화된 복지시설을 갖춘 단지는 그만큼 브랜드 가치, 부동산 시세로 이어지기도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러나 공동주택인 아파트는 공동체 의식과 묵시적 합의에 의한 질서가 중요하고, 벽식 구조에 의한 세대 간 층간소음 등 개선돼야 할 문제점을 갖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노진호 대표는 “최적의 형태는 아니지만 인구밀도가 높은 도심지역의 공간 활용을 극대화하고 그 갈증을 해소할 수 있는 주거 형태로 인기를 끌었다”면서 “작은 대지 위에 짓는 협소주택처럼 시장이 둔화되면 합리적인 가격에 최적의 디자인 퀄리티를 구현하려는 ‘가성비’ 현상이 현재의 시대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해석했다.

김현철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투기 수요를 줄이고 실거주에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직주근접이 가능한 서울 강남북 도심지에 젊은 세대를 위한 임대주택을 대거 건축해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김현철 교수는 “지금까지 재개발·재건축 방식은 용적률·건폐율을 높이고 일반분양을 함으로써 수지를 맞추는 식”이었다면서 “이 때문에 도시 인프라, 공공공간을 활용하기 힘든 대단지 구조가 쌓이면서 도시의 기능이 비효율적으로 변했다”고 분석했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식으로 김 교수는 “용적률을 더 높이지 않아도, 기존 주택을 보유한 연령층 내지 인구구조가 고령화됨에 따라 그렇게 큰 면적이 필요하지 않게 된다”면서 “기존 주택을 각각 30%, 60%로 나눠 고령세대에겐 임대수익과 연금수익을 쥐어주고, 젊은 층엔 직주 여건이 좋은 곳에서 저렴한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방안을 연구 중”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