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불확실성의 경계로 내몰리며 우려가 커지고 있으나, 삼성전자를 둘러싼 대내외적 환경은 장기적인 관점으로 보면 생각보다 낙관적이라는 평가가 조심스럽게 나오고 있다. 일희일비할 필요없이 큰 그림을 그리며 초기술 격차 본능을 보여주는 한편 외부의 변화되는 환경을 적절히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시끌벅적한 축제는 끝났다"
삼성전자가 주력인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이 종료 수순을 밟아가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당장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던 수요와 공급선이 무너지고 있다. 반도체 공급 과잉 현상이 감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 등에 따르면 올해 새롭게 가동되는 300mm 웨어퍼팹만 모두 9곳이며 이는 2007년 12곳에 이어 두 번째로 최대 규모다. 수퍼 사이클 당시 계획된 공급처들이 가동을 시작하면 수요가 낮아지고 있는 시장 전반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질 수 있다.

메모리 반도체의 왕 삼성전자의 입지가 흔들리는 이유다. 업황 악화와 공급 과잉 가능성에, 당장의 수익을 결정하는 가격까지 모두 하락하고 있다.

그 여파로 삼성전자 반도체 매출은 지난해 4분기부터 흔들리기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매출 59조2700억원, 영업이익 10조8000억원을 기록한 가운데 반도체 매출은 18조7500억원, 영업이익은 7조7700억원을 기록했으며 전 분기 대비 각각 43%, 24% 폭락했다.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이미 인텔에게 전체 반도체 시장의 왕좌 자리를 내어준 상태다. 실제로 인텔은 지난해 4분기 187억달러(약 20조9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삼성전자를 눌렀다.

문제는 반등의 시기다. 업계에서는 최소 3분기는 되어야 메모리 반도체 공급과 수요가 균형을 이룰 것으로 본다. 데이터 센터 증설 트렌드가 이어지면서 낸드플래시를 중심으로 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은 높지만, 이는 하반기는 되어야 이뤄질 수 있다는 꿈이라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이 종료됐다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면서 "이러한 전제에서 판을 짜야 미래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 지난해 글로벌 반도체 시장 매출 순위. 출처=가트너

플랜A, B 모두 기회가 온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이 종료되며 업황 악화가 현실이 되고 있으나, 삼성전자에게는 플랜A와 B 모두 가동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최근까지는 플랜B에 해당되는 시스템 반도체 전략만 거론되고 있었으나 이제는 플랜A로 볼 수 있는 메모리 반도체 영역에서도 '의외의 한 방'이 빠르게 나올 수 있다는 주장이다.

플랜A는 삼성전자의 초기술 격차가 이어진다는 전제로 대외적 환경의 변화에 방점이 찍혔다. 미국과 중국의 상황 변화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이어 3위를 기록하고 있는 미국의 마이크론은 20일(현지시간) 물량 감산 계획을 발표했다. 마이크론은 "D램과 낸드플래시의 공급 조정을 위해 D램과 낸드플래시 웨이퍼 투입을 5%씩 낮출 것"이라고 말했다. 웨이퍼 투입을 낮춘다는 것은 재고 물량이 많이 쌓여있으며, 이를 소비하기 위해 일종의 완급조절에 나선다는 뜻이다.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 종료에 따른 여파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반사이익을 얻을 수 있다. '마이크론이 3분기까지 버틴 후 물량 감산 계획을 고려한다면 당장 완급조절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하반기 메모리 반도체 부활은 기정사실로 굳어지고 있다. 여기서 마이크론이 일찍 백기를 들고 물러나면, 현재의 점유율과 미래의 성장을 삼성전자 등이 가져갈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는 점유율 변화로 이어질 전망이다.

최근 중국의 푸젠진화가 D램 양산을 포기하고 파운드리로 돌아서는 등, 중국 반도체 굴기도 예상보다 강력하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플랜B는 삼성전자 입장에서 성장의 여백이 넓다. 그렇기 때문에 최근 들려오는 외부의 변화는 분명 호재다.

대만의 시장조사업체 트랜스포드는 올해 1분기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에서 매출 기준 TSMC가 부동의 1위를 기록한 가운데 삼성전자가 점유율 19.1%로 2위라고 발표했다. 매출 자체는 미중 무역전쟁의 여파로 전년 동기 대비 14.4% 떨어진 약 3조1498억원에 그쳤지만 이는 일시적인 현상일 가능성이 높다. 결국 전체 시장에서는 삼성전자가 성장하고 있는 셈이다.

더 고무적인 사실은 거래의 형태다. 삼성전자의 내부 물량 거래는 40%에 불과하며, 지금도 외부 파트너들은 빠르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2월 퀄컴과 7나노 EUV 공정 기반 5G 통신칩 생산 계약, 12월 IBM과 고성능 CPU 7나노 EUV 공정 계약을 연이어 따내며 빠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글로벌 파운드리(GF)가 흔들리고 있는 지점도 반사이익의 기회다. 일지감치 7나노 경쟁을 초기한 GF는 현재 각 팹을 분리해 매각하는 수순으로 사실상 시장 철수를 계획하고 있고, 한 때 삼성전자 인수설에 휘말리기도 했다.

삼성전자의 전체 시스템 반도체 시장 공략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9일 청와대 국무회의를 통해 "비메모리(시스템) 반도체 경쟁력을 높여 반도체 전체 성장 잠재력을 키워야 한다"면서 사실상 삼성전자에 힘을 실어줬다. 파운드리와 팹리스 전부 포함한 시장의 규모는 지속적으로 증가추세며, 메모리 반도체에만 의존하면 국가 경제의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전제에서 나온 말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삼성전자는 2030년 시스템 반도체 시장 글로벌 1위를 목표로 건 상태다.

▲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공정이 보인다. 출처=삼성전자

일희일비 말아야.."기회는 온다"
삼성전자가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유기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메모리에서 하반기를 기다리며 대내외적 환경에 반응하고, 시스템에서는 강력한 진격전을 보여야 한다. 일희일비하지 말고 실력으로 보여야 한다는 뜻이다.

이를 현실로 만들려면 가장 중요한 것이 초기술 격차다. 그리고 삼성전자는 여전히 강점을 보이고 있다. 당장 메모리의 핵심인 D램에서 가장 빠르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3세대 10나노급(1z) 8Gb(기가비트) DDR4(Double Data Rate 4) D램’을 개발했다고 21일 밝혔다.  2세대 10나노급(1y) D램을 양산한지 16개월 만에 3세대 10나노급(1z) 8Gb DDR4 D램을 개발하며 또 다시 역대 최고 미세 공정 한계를 극복했다는 설명이다. 3세대 10나노급(1z) D램은 초고가의 EUV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도 기존 10나노급(1y) D램보다 생산성을 20% 이상 향상시켰고, 속도 증가로 전력효율 역시 개선됐다.

▲ 3세대 10나노급(1z) 8Gb(기가비트) DDR4(Double Data Rate 4) D램이 보인다. 출처=삼성전자

이정배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 DRAM개발실 부사장은 "미세공정 한계를 극복한 혁신적인 D램 기술 개발로 초고속 초절전 차세대 라인업을 적기에 출시하게 되었다"면서 "향후 프리미엄 D램 라인업을 지속적으로 늘려 글로벌 고객의 차세대 시스템 적기 출시 및 프리미엄 메모리 시장의 빠른 성장세 실현에 기여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메모리와 시스템 모두 초기술 격차를 통해 존재감을 키운다는 설명이지만, 넘어야 할 산은 역시 외부에 있다. 마이크론과 푸젠진화의 어려움에 대한 반사이익과 파운드리 전체 시장의 협소함 모두 미중 무역전쟁이라는 외부의 환경 변화에 기인하는 것처럼, 결국 외부의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유연한 로드맵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특히 파운드리에서는 TSMC의 아성을 빠르게 뛰어넘는 노력이 필요하다. TSMC가 올해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이 생산하는 EUV 노광장비 30대 중 무려 18대를 확보했다는 말이 나오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EUV 활용이 기대이하라는 우려를 '실력'으로 불식시켜야 한다.

삼성전자가 판을 한 번에 바꿀 빅딜에 나설 가능성에 시선이 집중되는 이유다. 삼성전자는 현재 100조원에 달하는 기업 유보금을 가지고 있으며, 부인하고 있으나 GP와 NXP 인수설에 휘말리고 있다. 그 연장선에서 대규모 인수합병을 통해 시장의 판을 바꾸는 이재용 부회장 특유의 경영 전략이 가동될 가능성은 지금도 열려있다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