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3월에 열리는 정기 주총은 각 회사의 ‘1년 농사 방향’을 가늠케 하는 이정표 역할을 한다. 올해도 대부분의 주총에서는 향후 계획을 밝히는 총회 의장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지난해 실적을 바탕으로 한 이익배당, 이사 및 감사 선임과 이사 및 감사 보수 한도 승인에 대한 결의가 이어졌다. 그러나 주총 분위기는 과거와 많이 달랐다. 회사가 미리 짜놓은 ‘시나리오’에 맞춰 박수로 안건을 승인하는 ‘침묵하는 다수’에 불과했던 주주들이 회사의 현안과 앞으로의 경영방향에 대해 경영진에게 날카롭게 질의하는 능동적인 ‘회사의 주인’으로 거듭나기 시작한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50대 1의 액면분할 후 처음으로 주총을 연 삼성전자 총회장에는 1000명이 넘는 주주들이 몰려들어 다양한 주제를 놓고 3시간여 이상 뜨거운 난상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아예 노골적으로 ‘주주행동주의’를 표방하며 회사 경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경우도 있었다. 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 지분 중 약 3%를 보유한 글로벌 헤지펀드 엘리엇은 배당확대를 요구하며 사외이사 선임에 관한 주주제안을 했고, 한진칼 지분 중 약 12%를 보유한 국내 행동주의 사모펀드 KCGI(일명 강성부 펀드)는 조양호 일가의 경영 개입을 막기 위해 자신들이 추천하는 사외이사 2인, 감사 1인을 선임케 하는 사실상의 지배구조 개선안을 제안했다. 특히 KCGI는 한진칼이 비협조적인 태도로 KCGI의 주주제안을 방해하자 주총이 열리기도 전에 ‘주주명부 열람등사가처분’과 ‘의안상정가처분’을 신청하는 등 소송을 불사하는 모습도 보였다. 회사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올해는 ‘주주행동주의 시대’ 원년으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주주행동주의’는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으로 자리매김한 것이다.

‘주주행동주의 시대’를 맞아 회사는 앞으로 ‘주주행동주의’를 경계하면서도 이를 경영에 적극 활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기업들은 과거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 사례 등 행동주의 펀드에 대한 좋지 않은 기억 때문에 ‘주주행동주의’에 대해 대체로 적대적이다. 그러나 엘리엇의 현대자동차 그룹에 대한 배당확대 요구 등 회사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도외시한 의안이 연기금 등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주주들의 반대에 부딪혀 고전을 면치 못했던 것처럼 회사가 명분 있는 경영을 하면 주주들은 오히려 회사의 우군임을 자처한다. 반대로 조양호 회장 일가의 사회적 일탈로 ‘오너리스크’가 위험수위에 이른 한진칼의 경우 KCGI는 다른 주주들의 호응까지 이끌어 내며 기업의 장기적인 가치 성장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의 계기를 마련했다. 겉으로 보기에는 행동주의 펀드가 회사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 칼자루를 쥔 것은 회사가 바른 길을 걷는지를 지켜보는 절대 다수의 주주들인 것이다.

일각에서는 행동주의 펀드가 기업 사냥하는 것을 막기 위해 차등의결권, 포이즌필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분명 경청할 가치가 있고, 스타트업 창업자들의 경영권 방어 등의 목적 달성을 위해 실제 도입할 필요성도 있다. 그러나 보다 본질적으로 선행되어야 할 것은 주주의 다양화로 더 이상 경영진이 우호 지분을 확보하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주주들을 설득할 옳은 명분을 세우고 바른 경영을 하는 것이다. 이제 정도(正道) 경영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 버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