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네이버 노동조합 공동성명이 20일 오후 6시 비 내리는 네이버 본사 앞에서 3차 쟁의를 벌였다. 기존 1, 2차 쟁의가 사옥 안에서 진행됐다면 3차는 외부에서 퇴근하는 노조원들과 함께한 점이 다르다.

현장에 카카오, 스마일게이트, 오라클 등 주요 IT 업체 노조원도 참여한 가운데 네이버 노조는 "이해진은 응답하라"는 구호와 함께 사측의 적극적인 소통 자세를 주문했다. 네이버 노조는 조만간 열리는 주주총회에 참석해 구성원들의 의사를 전달하는 한편, 노조 설립 1주년인 4월 3일을 맞아 새로운 형식의 쟁의도 예고하고 나섰다. 다만 당장 파업을 거론하는 수준은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 네이버 노조의 3차 쟁의가 열리고 있다. 사진=최진홍 기자

동지대신 친구, 투쟁가대신 가요
네이버 노조는 사옥 앞 3차 쟁의를 진행하며 기존 기업의 노조와는 사뭇 다른 IT 스타일의 쟁의를 보여줬다. 네이버 노조의 마스코트인 네이비가 노조원들의 참여를 독려하며 춤추고 함께 사진을 찍는 등 이색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노조 집단행동 현장에서 들리는 "동지 여러분" 대신 "친구"라는 단어도 나와 눈길을 끌었다. 현장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음악도 기존 투쟁가가 아닌 가요였다. 노조원들이 손풍선을 들고 참여한 장면도 흥미로웠다. 이들은 구호를 외치거나 사회자의 진행에 맞춰 마치 야구장 분위기를 연출했다.

비가 내리는 상황에서 쟁의활동에 아직 미숙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여전했다. 몇몇 발언자들은 준비한 글을 적은 종이가 물에 젖어 몇 차례 행사가 지연되는 일이 벌어졌다. 1시간 남짓 진행된 쟁의 도중 힙합가수의 공연을 준비한 대목도 눈길을 끌었다.

젊은 IT기업다운 쟁의활동이지만 노조는 이러한 분위기가 본연의 목적을 가리는 것에 우려하는 뉘앙스다. 이수운 네이버 노조 홍보국장은 20일 쟁의활동을 예고하며 " IT스러움에 매몰되다 보면 노조가 단체행동을 하는 목적이 묻힐 것 같아 새로운 아이템을 발굴하는 것에는 너무 많은 에너지를 쏟지 말자는 것이 내부의 의견"이라면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나오면 이후 단체행동에서 자연스럽게 녹여볼 예정"이라고 말했다.

▲ 마스코트 네이비가 구성원들을 독려하고 있다. 사진=최진홍 기자

"네이버가, 이해진 총수가 결단 내려야 한다"
연단에 오른 차상준 스마일게이트노조 지회장은 "말의 눈을 가리고 서로를 보지 못하게 한 다음 달리도록 하는 것처럼, 네이버 사측은 직원들에게 경쟁만 강조하고 있으며 이 과정에서 신뢰가 사라지고 있다"면서 "네이버 노조가 포기하지 말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 말이 있지만, 회사가 잘못됐으니 우리가 고친다는 말이 더 어울린다"고 말했다.

신환섭 화섬노조 위원장은 "초기 네이버 사측과의 이야기가 잘 풀리는 듯 했으나 결국 거기까지였다"면서 "IT 기업은 열린 사고방식을 가져야 하지만 네이버 사측은 기존 생산 제조업 단계에 머물러 있다. 사측이 변화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경식 컴파트너스 부지회장은 "우리는 감정 노동자"라면서 "본사인 네이버 사측이 결단을 내려야 한다. 임금꺾기 등의 문제가 너무 만연한 상태에서 책임을 회피하지 말고 소통에 나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오세윤 네이버 노조 지회장은 이해진 총수가 직접 소통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 지회장은 "회사에는 경영진만 있는 것이 아니다"면서 "노조와 경영진이 함께 회사를 만들어야 한다. 이해진 총수가 나서야 하는 이유"라고 역설했다.

▲ 오세윤 네이버 노조 지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최진홍 기자

오 지회장은 이해진 총수를 더욱 직접적으로 겨냥했다. 그는 "네이버가 위기라면 권한이 있는 사람이 책임을 져야 한다"면서 "권한이 없는 척 하지 말고 전면에 나서 권한을 행사하면서 책임도 져라. 만약 책임을 지기 부담스러우면 우리와 나누자"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총수 지정 당시 네이버의 지배적 위치와 거리를 둔 이 총수의 책임감 부재를 지적하는 한편 적극적인 소통에 나서 달라는 주문이다. 오 지회장은 "주주총회에 참석해 구성원들의 뜻을 전할 것"이라면서 "노조 설립 1주년이 되는 4월 3일부터 2주 간격으로 쟁의활동을 하겠다"고 말했다.

오 지회장은 또 "200년전 노예제도를 폐지하자고 주장한 사람은 미친 사람이었으나 지금은 당연한 일이 됐다"면서 "노예폐지는 거저 얻은 성과가 아니다. 누군가 행동했기 때문이며, 행동하면 반드시 바뀐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사측이 핵심인력에 부여하기로 한 스톡옵션을 두고도 "경쟁만 유발하려는 행위"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최근 네이버는 책임리더라는 직급을 신설해 계열사 68명을 선임하며 사실상 임원제도를 부활시켰으며 주주총회를 통해 핵심인력에 대한 스톡옵션 부여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 네이버 노조의 3차 쟁의가 열리고 있다. 사진=최진홍 기자

어떻게 흘러갈까?
네이버 노조는 지난해 4월 설립된 후 5월 2000명 이상의 직원 의견을 수렴해 만든 125개 조항의 단체교섭 요구안을 사측에 전달했다. 이후 7월 5차 교섭이 있기까지 사측은 복리후생과 관련된 안을 제출하지 않았고, 8월 8차 교섭과 10월 11차 교섭에서야 사측은 별도 TF를 운영해 새롭게 논의하자는 제안을 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TF 논의안은 철회되고 양측의 협정근로자 논의도 끝내 표류했다.

이후 네이버 노사 안건은 중앙노동위원회로 넘어갔고 조정위원들은 안식휴가 15일, 남성 출산휴가 유급 10일, 인센티브 지급 기준 설명을 조정안으로 제시했다. 노조는 이를 받아들였으나 사측은 거부하며 노조는 쟁의활동에 나서게 됐다. 노조는 1월 28일부터 31일까지 네이버, NBP, 컴파트너스 소속 노조원을 대상으로 쟁의행위 찬반투표를 진행한 결과 네이버 96.06%(투표율 97.98%), NBP 83.33%(투표율 97.96%), 컴파트너스 90.57%(투표율 100%)의 찬성표를 얻어 합법적인 쟁의행위를 할 수 있는 쟁의권을 가지게 됐다.

노조는 사측이 전향적인 소통에 나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더 이상의 쟁의활동을 멈출 수 있는 결단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사측의 공식적인 접촉은 20일까지 없었다는 설명이다.

네이버 노조는 주주총회 참석을 끝낸 후 4월 3일 쟁의활동을 예정대로 진행하며 구성원들의 마음을 모으는 한편 사측의 소통을 지속적으로 끌어낸다는 각오다. 이 과정에서 파업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오 지회장은 4월 3일 쟁의의 성격을 묻는 질문에 "파업은 염두에 두고있지 않다"고 답했다.

다만 4월 3일 쟁의에서 사측의 마음을 바꾸기 위한 계획을 공개한다는 방침이기 때문에, 결국 주주총회를 기점으로 노조의 쟁의활동 성격이 극적으로 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네이버는 노조의 계획에 대해 "특별히 드릴 말은 없다"고 답해왔다.

업계에서는 이번 논란이 최근 노사 협의를 통해 포괄임금제 폐지를 잠정 합의한 넥슨과 스마일게이트의 사례로 흘러갈 가능성도 있지만, 관건은 사측의 태도라는 점에 이견의 여지가 없다. 우려스러운 지점은 소모적인 평행선이다. 양측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사태가 장기화될 경우 국내 ICT 업계의 간판이자 성장 동력인 네이버의 내분이 커지면서 누구도 바라지 않는 최악의 상황이 올 수 있다는 말도 나온다. 사측과 노조가 일정정도 양보하며 완충지대를 구축, 신중하지만 속도감있게 접점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