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황진중 기자] 검찰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을 재수사하면서 고광현 전 애경산업 대표 등 2명을 증거인멸 정황을 포착해 구속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가운데 ‘가습기 메이트’ 사용에 따라 발생하는 피해를 SK케미칼(현 SK디스커버리)이 책임진다는 애경산업과의 계약 내용이 주목된다.

20일 관련 업계 등에 따르면 SK케미칼은 애경산업과 2001년 5월 가습기 살균제 물품 공급 계약을 맺고, 이듬해 10월 제조물책임(PL, Product Liability)과 관련한 추가 계약을 체결했다.

가습기 메이트 라벨에는 제조원으로 'SK 케미칼'이 적혀 있고, 판매원으로 '애경산업주식회사'와 애경 로고, 고객센터번호 등이 명시돼 있다. 원료물질인 클로로메탈아이소티아졸리논(CMIT)‧메틸아이소티아졸리논(MIT) 생산과 제품 제조는 SK케미칼이 맡았다.

한 시민단체에 따르면 가습기 메이트는 옥시의 ‘옥시싹싹 가습기당번’ 다음으로 많은 피해자를 낸 제품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 2018년 3월을 기준으로 공식 피해자 수는 6002명, 희생자는 1312명이다.

두 기업의 제조물책임 계약에는 “SK케미칼이 제공한 상품의 원액 결함으로 제3자의 생명과 신체 등에 손해가 발생하면, 이를 전적으로 책임지고 손해를 배상한다”고 명시돼 있다.

계약서를 따르면 가습기 메이트 피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은 SK가 모두 책임져야 한다. 애경 측은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패소해 배상책임을 지더라도 SK에 구상권을 청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마트가 자체브랜드(PB) 상품으로 판매한 가습기 살균제도 가습기 메이트와 같은 제품이다. 이마트가 애경으로부터 제품을 받아 라벨만 변경해 판매했다. 업계 관계자는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SK‧애경‧이마트 등의 형사상 책임이 확인된다면 뒤따르는 민사소송에서 SK케미칼이 가장 큰 책임을 맡아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검찰은 SK와 애경이 체결한 PL을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기업이 주고받은 안전성‧책임 문제 관련 문건을 은폐하지 않았는지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PL을 두고 일각에서는 SK케미칼은 제조 후 애경산업에 판매한 가습기 메이트의 안전성을 확신하지 못했으므로 이와 같은 계약을 맺은 게 아니냐는 해석이 따른다.

SK 관계자는 “관련 계약은 2002년 7월 1일부터 제조물책임법이 시행되면서 작성된 것으로 법 시행에 따라 제조업체의 책임이 강화된 내용이 반영된 통상적인 계약사항이다”고 설명했다.

당시 제조물책임법에 따르면 제조업자는 ‘제조물에 성명‧상호‧상표 기타 식별 가능한 기호 등을 사용해 제조업자로 오인시킬 수 있는 표시를 한 자’도 포함되므로 애경에도 책임을 지울 수 있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통상적인 계약 조건이 아니라는 뜻으로 풀이된다.

업계에는 계약서에 SK가 안전성‧책임 문제를 전적으로 지는 것을 넘어서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애경이 SK를 적극 방어해야 한다는 내용도 있다고 알려졌지만,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파악됐다.

애경산업 관계자는 “애경이 SK를 적극 방어해야 한다는 내용은 해석이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서 “계약서상에 가습기 메이트로 인해서 문제가 발생을 한다거나 애경산업이 제3자로부터 소송을 제기 받았을 경우 이에 대한 방어를 SK케미칼이 한다는 내용이 있다. 이 문구 뒤에 ‘단, 애경은 SK케미칼의 방어에 협조한다’라는 문구가 있다”고 설명했다. 애경이 SK를 적극 방어해야 한다는 수준은 아닌 것으로 풀이된다.

한편, SK케미칼이 가습기 살균제 관련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유통사인 애경에 올바르게 제공했는지도 논란이 될 수 있다. MSDS는 제품에 활용한 화학물질의 명칭과 함유량, 유해성, 취급 주의사항 등을 설명한 자료다.

2016년 가습기 살균제 국정조사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 당시 애경은 SK로부터 제품을 받아 판매하기 시작할 무렵인 2002년 MSDS를 받지 못했고, 이후에 받았다고 주장했다. SK는 2002년부터 MSDS를 제공했다고 반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