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글로벌 OTT 플랫폼 넷플릭스가 18일(현지시간) 자사의 정체성을 기술기업이 아닌 미디어 기업으로 정의했다. 올해 초 국내 기자회견 당시 기술기업이자 미디어 기업이라는 점을 분명히 밝혔으나, 결국 ‘우디르급 태세전환’으로 미디어로 한 발 더 나아간 셈이다. 지금까지 갖은 견제에 시달리면서도 '우리는 문제없어'라는 정신승리를 고수하던 넷플릭스의 ‘단말마’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견제의 시대

리드 헤이팅스 넷플릭스 CEO는 “우리는 기술 기업이 아닌 미디어 기업”이라면서 “미디어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타진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넷플릭스 지금까지 폭식시청을 가능하게 만든 오리지널 콘텐츠의 배치부터 고객의 취향을 정밀하게 분석하는 기술력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넷플릭스는 누가 봐도 미디어 기업이며 엄청난 기술력을 가진 기업은 아니지만, 최근까지 스스로를 포장하며 기술기업의 포장지를 포기하지 않았다.

이러한 변화가 처음 감지된 것은 최근의 실적발표다. 당시 넷플릭스는 자사의 경쟁자로 디즈니가 아닌, 게임 포트나이트나 구글 유튜브로 명시했다. 결국 한정된 시장에서 싸우겠다는 의지가 아니라, 고객의 시간을 점유하는 싸움을 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 연장선에서 넷플릭스는 미디어 기업으로 포지셔닝되는 분위기다.

미디어로의 넷플릭스 미래는 어떻게 될까? 생각보다 암담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디즈니와 21세기폭스의 결합으로 훌루 플랫폼까지 틀어쥔 강력한 도전자의 존재감에 시선이 집중된다.

디즈니는 20일 713억달러에 21세기폭스 인수합병을 마무리했다. 로버트 밥 아이거 디즈니 사장은 ”영화시장의 혼동 시기가 빨라졌을 뿐"이라며 “폭스 인수를 통해 감독과 소비자를 연결하는 전략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디즈니는 여세를 몰아 올해 하반기 디즈니 플러스라는 자체 스트리밍 플랫폼도 출시할 예정이다. 넷플릭스 입장에서는 강한 압박을 받을 수 밖에 없다. 디즈니와 넷플릭스의 콘텐츠는 이미 종료된 상태다.

아이폰 매출 하락으로 새로운 활로가 필요한 애플도 넷플릭스의 뒤를 잡으려 한다. 텍스트 콘텐츠 업계의 넷플릭스로 불리는 텍스처를 인수한 상태에서 조금씩 전체 매출에서 해당 분야의 비중을 올리는 한편, 오는 25일 영상 스트리밍 플랫폼 공개를 예고하고 있다. 리드 헤이팅스 CEO는 이를 두고 “애플에 콘텐츠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며 견제구를 던졌다. 여기에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와 AT&T를 위시한 새로운 도전자들의 등장도 넷플릭스의 고민을 깊게 만들고 있다.

글로벌 전체 시장을 봐도 넷플릭스를 향한 전방위적 압박은 멈추지 않고 있다. 당장 유럽연합은 사실상 시장 독과점 상태인 넷플릭스를 겨냥해 GDPR을 통한 견제에 나서고 있다. 보스턴컨설팅그룹의 로이모건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2012년 영국에 진출해 현재 83%의 OTT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문화적 콧대가 높은 프랑스에서도 68%의 점유율로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각 국의 위기의식을 자극했다는 평가다.

오래된 논쟁인 극장계와의 분쟁도 논란이다. 이와 관련해 올해 칸 영화제에서 넷플릭스 콘텐츠를 찾아보기 어려워질 전망이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압박의 패턴이 발견된다. 지난해 LG유플러스와 협력해 국내 시장 진출에 속도를 내고 있으나, 미디어 시장 독과점과 콘텐츠 시장 교란이라는 비판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아시아, 특히 한국을 비롯한 지역에서 활동하는 넷플릭스 조직원들은 영업과 마케팅 등 분야를 막론하고 현지 미디어 업계에서 사실상 ‘갑(甲)족’으로 군림하며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이들은 자기들의 관심사가 높은 콘텐츠 업계와의 협력에는 전향적이고 합리적인 태세를 보여주고 있으나, 그 외 협력 파트너들에게는 고압적인 자세로 일관해 문제가 커지고 있다. LG유플러스가 넷플릭스와 계약을 맺으며 9:1이라는 최악의 수익배분을 결정했다는 ‘설’은 지금에 이르러 사실상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분위기다. 간혹 ‘넷플릭스 마피아’와 관련된 괴담 수준의 루머가 나오는 배경으로 꼽힌다.

망 사용료 문제 등에 있어서도 넷플릭스는 스스로를 신성불가침으로 여기는 자세로 협상에 임하고 있다는 비야냥도 나온다.

▲ 넷플릭스에 대한 압박이 커지고 있다. 출처=갈무리

미디어는 미디어의 규칙으로

새로운 경쟁자의 등장은 물론, 이와 관련된 다양한 압박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오는 가운데 넷플릭스는 미디어 기업으로의 정체성을 중심으로 가능성을 타진할 것으로 보인다.

넷플리스는 2017년 디즈니와 콘텐츠 제휴 종료에 나서던 당시 밀라월드를 인수한 바 있다. 밀라월드는 마블 코믹스의 핵심 작가이던 마크 밀러가 포진한 곳이다. 킹스맨과 원티드, 킥애스 등의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으며 판타지와 슈퍼히어로 영역의 강자다. 이를 바탕으로 콘텐츠 역량을 키워 자사의 영역을 지키는 로드맵을 가동할 전망이다.

문제는 경쟁자들의 견제가 너무 강한데다 확실한 우군도 없고, 진출하는 지역마다 잡음이 끊이지 않는 것에 있다. 넷플릭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