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서 구식총 갖고 이길 수 있겠나?

임직원 교육은 신식무기 지급하는 것”

1950년 경북 상주 출생 / 1976년 고려대 건축공학 학사 / 2008년 서울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AMP) 수료 / 2008년 고려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AMP) 수료 / 2009년 서울대 인문대학원 최고지도자인문학과정(AFP) 수료 / 1976년 현대건설 건축사업본부 입사 / 2006년 현대건설 주택영업본부장(부사장) / 2007년 현대엔지니어링 대표이사(사장) / 2009년 현대건설 대표이사(사장)

다산 정약용의 글 가운데 ‘어망득홍(魚網得鴻)’이라는 말이 나온다. ‘고기 잡으려고 그물을 쳤는데 기러기가 걸렸다’는 의미로 학문 간 교류를 통해 뜻하지 않게 창조적 아이디어를 발견, 행동으로 옮겼을 때를 뜻하는 용어다. ‘어망득홍’형 경영자로 가장 먼저 떠오르는 CEO가 바로 김중겸 현대건설 사장이다.

김 사장은 주택사업을 단순한 건설이 아니라 문화사업으로 봤다. 마치 겹눈을 가진 곤충처럼, 그는 ‘겹쳐보기’ 전문가다. 주택을 문화로 보는 순간, 문화와 역사가 살아 숨 쉬는 공간인 ‘힐스테이트’가 탄생했다.

김 사장은 힐스테이트를 직접 고안해 현대건설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게 한 주역이다. 건축공학도 출신이지만 서울대 인문대학원을 수료하는 등 평소 인문학적 소양을 높이는 데 많은 공력을 쌓았기에 그의 통섭형 지혜가 더욱 돋보인다.

김 사장은 “공학도는 30%를 인문학 공부에, 인문학도 역시 30%를 공학 공부에 할애해야 한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그의 지론은 ‘건축물 하나를 짓더라도 문사철(文史哲)을 겸비해야 수백 년을 가는 건축물이 나온다’는 말로 압축된다. 건설업에 인문학을 접목, 앞서가는 건설산업을 강조하는 김 사장을 만나니 자연스럽게 통섭이 화제가 됐다.

Q. 외형 1위에 걸맞게 현대건설도 이젠 글로벌 기업의 역량을 키워야 할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취임 이후 한 말씀들을 모아보니 현대건설도 젊은 조직으로 다시 태어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건설업계에 몸담았지만 그동안 인문학 분야에도 남다른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건설업이야말로 상상력 등 인문학적 소양이 필요한 업종입니다. 20세기가 전문화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통합의 시대입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만남, 자연과학과 예술의 만남 등 다양한 분야의 학문과 지식이 서로 통합해 더욱 새롭고 창조적인 지식을 창출해야 한다는 뜻이지요. 경영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성, 노키아, 소니 등 유수의 글로벌 기업들은 임직원에게 전문지식과 함께 인문학적 소양을 갖출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임직원에 대한 맞춤식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과거에 스페셜리스트(Specialist) 양성에 주력했다면, 이젠 멀티플레이어(Multi-player), 더 나아가 제너럴리스트(Generalist)로 가는 것이 정답입니다.

현대건설에는 한마디로 훌륭한 ‘출연자’가 많으니 이제는 ‘연출가’의 역할이 필요할 때입니다. 연출가를 많이 만들면 글로벌 기업의 대열에 빨리 합류할 수 있다고 봅니다.

엔지니어라고 해도 경영에 대해, 영업통이라도 마케팅 전략이나 정치·사회문화에 등에 대해 두루 이해하지 못하면 결코 조직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없는 시대가 왔습니다. 한 분야에 능통하기보다는 전 분야에 대해 지적 능력을 발휘하는 제너럴리스트가 중요하다는 것이지요.

Q. 기업은 창의에 의해 성장하지 권력에 의해 성장하지 않는다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말이 생각납니다. 말씀하신 대로 현대건설이 인문학적인 소양을 통해 젊은 조직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 사장의 이런 계획이 우리나라 건설산업 문화를 한 차원 끌어올리는 촉진제가 될 것으로 믿습니다. 조직문화도 그런 식으로 바뀌어져야 할 텐데요.

맞습니다. 이제는 단순한 시공만으로는 생존할 수 없습니다. 건설도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지향점이 바뀌어야 합니다.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에서 3만달러 시대로 가면, 고객에게 ‘몸’보다는 ‘가슴’을 쓰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직원들한테 고객과의 접점인 ‘진실의 순간(the Moment of Truth)’에 가슴으로 대화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가슴으로 말하고 상상을 많이 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외환위기 이후 현대건설은 주인 없는 기업으로 전락했다. 하지만 현대건설은 옛 현대그룹의 모태(母胎)이면서 대통령을 배출한 업체라는 상징성을 갖고 있는 대표적 건설업체다.

현대그룹과 현대중공업 등 범(汎)현대가 현대건설 인수 의향을 밝힌 만큼 언제 새 주인을 맞게 될지 모른다. 3년 임기의 전문경영자인 김 사장의 심경은 어떨까.

Q. 지금 현대건설에는 주인이 없습니다. 관리를 당하는 입장이다 보니 김 사장의 생각대로 뜻을 펼치기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형식은 주주협의회이지만 경영간섭이나 통제가 적지 않을 텐데요.

외부에서 볼 때와 달리 자율경영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이는 나중에 CEO의 연간평가와도 관련이 있습니다. 주주협의회도 기업의 가치를 올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합니다.

현재 가치는 정량적이고 미래가치는 정성적이라 볼 수 있는데, 지속성장과 회사의 발전을 위해서는 두 가치 모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어차피 새 주인을 맞아야 할 입장이다 보니 임직원들은 눈치를 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누가 사장이든 임원이든 미래가치보다는 단기성과에 신경을 쓰게 될 텐데, 김 사장의 야심에 찬 계획들이 잘될 수 있을까요?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외부에서는 ‘주인 찾는 기업’이라는 시각 때문에 R&D 우수인력 확보 등 무형자산에 대한 투자는 소홀히 하면서 단기실적 위주의 경영에 치중할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렇다면 인수자 입장에서는 현대건설이 속이 비었다고 생각하겠지요. 사실 현재가치에 충실하다 보면 미래가치를 소홀히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저는 현재를 미래가치에 맞춰 새로운 불모지를 개척하듯 나서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2007년 현대엔지니어링 사장으로 부임하자마자 직원 급료를 올리고 복지후생에 신경 쓰면서도 기술개발과 교육훈련에 100억원을 투자했습니다.

그렇게 하니까 1년 만에 350억원이 이익으로 돌아오고, 2년이 되니까 이익금이 1100억원으로 불어났습니다. 미래 비전과 가치, 시스템, 교육훈련, 기술개발 등에 투자하니까 자연스럽게 현재가치가 높아지더군요.

김 사장은 기업경쟁력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사고의 혁신’을 꼽았다. 그가 사무실을 새로 임대해 1인당 2.2㎡이던 사무공간을 3.3㎡(1평)로 넓힌 것도, 구형 컴퓨터(PC)를 신형으로 모두 교체한 것도 발상의 전환을 실천으로 옮긴 사례일 뿐이다.

그는 “전쟁에서 구식 총을 갖고 어떻게 싸움에서 이길 수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도 했다. 그동안 수작업으로만 이뤄졌던 결재도 전자결재로 바꿨다고 한다. 대면 결재로 업무시간의 10%가 손실됐는데, 이를 금액으로 따져보니 무려 100억원에 달했다는 것이 김 사장의 설명이다.

Q. 취임 후 자기성찰이랄까, 현대건설에 대한 반성이랄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건설하는 것 못지않게 인재를 키워내는 기업을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습니다. 현대건설의 기존 전통에 김 사장의 이런 계획이 실현되면 세계적인 건설 명가가 될 것입니다.

“건축물을 짓는 건설회사이지만 사람을 만드는 회사를 만들어나가겠다”는 것이 김중겸 현대건설 사장의 지론이다. 김중겸 사장(오른쪽)이 본지 권대우 회장의 한국건설산업의 미래 개척에 관한 방법론을 경청하고 있다.

임직원에 대한 교육은 곧 무형자산에 투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수익은 저절로 창출됩니다. 그것은 현대엔지니어링에서 직접 체험한 것이기도 합니다. 부임하면서 해외연수제도를 도입했고, 직원들 스스로의 가치도 상승됐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제 발로 나갔던 직원들이 다시 찾아오더군요.

이를 비용으로 볼 것인지, 투자의 개념으로 생각할지는 전적으로 경영자의 몫이라고 봅니다. 일례로 한 부모는 자식을 교육시키기보다는 주변의 땅을 사서 유산으로 물려주는 데 치중했습니다.

반면 땅을 팔아 자식을 공부시키는 데 사용한 집이 있었습니다. 땅을 유산으로 받은 자식은 그 땅을 그대로 갖고 농사만 짓지만, 땅을 팔아 공부시킨 자식은 나중에 더 많은 땅을 살 수도 있지 않습니까. 한쪽은 교육을 비용으로 봤고, 다른 쪽은 공부를 투자로 본 것이 다른 셈이지요. 사람에 대한 투자는 이처럼 계속돼야 합니다.

단기적인 실적에 연연하다 보면 직원에 대한 투자가 소홀해지기 마련이고 우수인력을 잃게 됩니다. 실적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사람을 만드는 회사로 키우고 싶습니다.

Q. 현대건설은 한국 건설산업의 상징입니다. 현대건설의 미래는 한국 건설산업의 미래이기도 합니다. 7000명에 이르는 임직원을 하나로 묶어 생산성을 올리자면 그만큼 무형자산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리라 봅니다. 회사의 최우선이 직원들이고, 그 다음이 고객이라는 말이 있듯이 김 사장식의 투자가 곧 직원과 고객을 동시에 만족시키게 될 것입니다.

회사를 위한 교육, 개인을 위한 교육 등으로 세분화해 놓았습니다. 인문·사회·계열 직원들에게는 이공계 공부를, 엔지니어에게는 경영공부를 시켜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것도 소통 아닙니까. 소통을 통해 업무효율을 배가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회사를 내 가정이라고 생각해 보십시오. 자식에게 교육투자를 안 하겠습니까. 직원들을 자녀 대하듯, 회사를 가정으로 생각하면 위기해법은 절로 나오기 마련입니다.

Q. 창업자인 고 정주영 회장은 “길이 없으면 찾아가라, 찾아도 없으면 길을 만들라”는 말을 자주 했습니다. 21세기 변화무쌍한 시대에서는 이 같은 ‘불도저식 리더십’도 색깔을 달리할 필요가 있지 않겠습니까.

고 정주영 회장은 창의력이 뛰어난 분이었습니다. 그분의 리더십도 창의성에서 나왔다고 봅니다. 창의적 지도자 중에는 아침형 인간이 많은 것 같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현대건설 사장 시절 창의성 측면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합니다.

저의 경우, 보통 새벽 4시에 일어나 집 근처 양재천을 1시간 넘게 속보로 걸으며 많은 생각을 합니다. 생각에 집중하다가 집을 지나친 적도 종종 있습니다. 사전에 신중하게 거듭 생각하고 일단 하기로 결정하면 행동은 누구보다 빠르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지 않은 이들은 제가 무턱대고 결정만 빨리하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웃음)

김 사장은 현대건설 부사장을 지내다 현대엔지니어링에 부임했을 때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이라는 각오로 임했다고 한다. 현대엔지니어링의 부활에는 그의 이런 의지가 버팀목 역할을 했음이 분명하다.

개인의 영달보다 대의 명분을 중시하는 김사장의 신조도 특유의 생사관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지난 2005년 S그룹에서 거액의 연봉을 제시하며 스카우트를 제의해 왔을 때, 현대건설이 채권단 관리하에 놓인 상황에서 혼자만 살기 위해 회사를 떠나기 어려웠다는 그의 말에는 진솔함이 짙게 묻어났다.

회사가 어려울 때 목숨을 걸고 죽기살기로 일에 뛰어드는 그의 투철한 인생관이야말로 공학도로서 인문학적 소양을 강조하는 통섭의 도(道)와도 맥이 닿아있는 듯싶다.

정리=아시아경제신문 이규성 기자 (bobos@asiae.co.kr)
사진=아시아경제신문 윤동주 기자 (doso7@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