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동규 기자] 작년부터 올해 초까지 이어진 ESS(에너지저장장치) 화재사고로 인해 국내 ESS시장이 얼어붙었다. 현재 산업통상자원부는 조사단을 꾸려 사고 원인을 조사 중이고 최종 결과는 5월에 발표할 예정이다. 상승세를 보이던 국내 ESS시장도 올해는 수직하락할 가능성이 클 것으로 업계는 예상한다. 상반기 국내 ESS 신규 수주가 올스톱인 가운데 중소 ESS업체들의 연쇄부도 위기가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 울산 가스공장 ESS 화재 현장. 출처=MBC뉴스 캡처

국내 ESS화재 현황과 대책은?

3월 20일 산업통상자원부(산자부)와 업계에 따르면 작년 8월부터 현재까지 발생한 국내 ESS화재 사고는 총 21건으로 알려졌다. 가장 많은 화재가 발생한 ESS는 태양광발전 연계 ESS였고 이 밖에도 공장, 주파수 조정용 ESS, 풍력발전 연계 ESS에서도 화재가 발생했다. 특히 작년 11월은 같은 날에 2건의 ESS화재가 발생할 정도로 화재가 빈번한 달이었다.

국내 ESS에서 화재가 잇따르자 정부도 작년 11월 대책을 내놨다. 정부는 당시 약 1300개에 이르는 국내 ESS사업장에 대한 정밀 안전진단을 2018년 12월부터 2019년 1월에 걸쳐 시행키로 했다. 정밀 안전진단은 업계와 민관합동 특별점검 태스크포스(TF)가 시행했다.

업계에서는 배터리 제조사인 LG화학, 삼성SDI, 한국전력 등 3사가 자체 진단능력을 활용해 정밀 진단키로 했고, TF는 관련업계, 전문가, 유관기관 등 민관협력으로 구성됐다. TF는 주로 배터리 납품업체 등 제조사의 자체 진단 여력이 없는 사업장에 투입됐다.

여기에 더해 사고 시 인명피해가 우려되는 백화점과 같은 다중이용시설에 설치된 ESS를 우선 점검을 실시하고, 긴급 차단 등 안전성 제고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시스템은 관련 기준 개정 이전이라도 업계가 자발적으로 도입하도록 제도를 설계키로 했다.

제도개선 측면에서도 정부는 시공단계 안전기준을 보완하고 ESS 시스템 안전기준을 마련키로 했다. 당시 산자부는 ESS시스템 안전기준에 대해 “한국이 ESS의 최대 수요국임을 감안해 국제표준 제정을 주도하고, 국제표준 마련 후 국내 관련 기준을 신속히 도입키로 했다”고 밝혔다. ESS 시스템 안전 국제표준안의 단체표준 우선 도입은 3월 안에 완료된다.

정부가 ESS화재 대책을 내놓은 지 20여일 만인 작년 12월 17일 충북 제천 아세아시멘트에 설치된 ESS에서 또 화재가 발생하자 정부는 사고 당일 긴급 조치를 발표했다. 산자부는 당시 아세아시멘트 사고 현장에 정부, 전기안전공사, 소방청 등으로 구성된 현장 조사단을 급파해 원인 조사를 했고, 정밀진단이 완료되지 않은 모든 ESS사업장의 가동을 중단하고 정밀안전점검 이후 가동할 것을 권고했다.

▲ LG화학 익산공장 ESS 배터리 모듈. 출처=LG화학

ESS화재 원인은?

산자부는 12일 ‘ESS 화재사고 관련기업 간담회’도 비공개로 개최했다. 간담회의 목적은 사고원인 조사결과 공유와 의견 수렴이었는데 이날 간담회에서는 4가지의 ESS화재 원인이 거론된 것으로 알려졌다. 알려진 ESS화재의 4대 원인은 ESS시스템 통합 제어 미흡, 배터리 외부 충격, 배터리 설계의 문제, 설치와 운영관리 문제 등이었다.

배터리 자체 문제부터 PCS(파워컨디셔닝 시스템), BMS(배터리운용시스템), EMS(전기량 모니터링 시스템) 등 ESS를 구성하는 주요 요소들에서 다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산자부는 비공개 간담회에서 나온 내용을 보다 구체화해 공식적으로 5월에 발표할 예정이다.

산자부 관계자는 “현재 정부는 원인파악부터 다중이용시설을 포함한 화재 위험성이 있는 ESS설치 장소에는 가동 중단을 권고하는 등 작년 발표한 ESS화재 대책을 꾸준히 이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 현대중공업 그린에너지 ESS 내부 전경. (화재와는 무관) 이코노믹리뷰 김동규 기자

ESS 신규 발주 스톱, 중소업체 연쇄부도 우려

업계에 따르면 ESS 화재로 인해 현재 올해 상반기 ESS 신규 발주는 거의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에 설치된 ESS도 정부 권고로 약 30%가 가동 중단인 것으로 알려져 ESS에 투자한 업체들의 손해 역시 지속되고 있다. ESS업계는 5월 정부 발표 이후 올해 하반기부터는 국내 ESS시장의 정상화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지만 완전 정상화까지는 시간이 오래 걸릴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서강석 한국ESS산업진흥회 사무국장은 “ESS업체들은 5월 정부의 공식적인 화재 원인 발표가 나온 후에 하반기 발주가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다”면서 “현재 여러 애로사항이 있기는 하지만 산자부 발표 후에는 시장이 살아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조현렬 삼성증권 연구원은 “배터리 업체를 포함한 ESS업체를 향한 투자심리는 화재로 인해 많이 줄어든 상태”라면서 “산자부의 5월 공식 발표 이후에는 ESS 관련 투자심리가 회복될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다.

한편 ESS에 올인한 중소업체들은 생존의 위기까지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ESS 업계 관계자는 “ESS 설치를 위해 무리하게 대출을 했거나 국내 ESS시장에만 집중한 기업들은 대기업이 아닌 이상 올해 수익추구가 매우 힘들게 됐다”면서 “일부 중소 ESS업체들은 정부 발표가 5월보다 더 빨리 이뤄져 조금이라도 이른 시기에 ESS시장이 살아나길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ESS시설 투자를 하면서 무리하게 자금을 끌어온 업체들은 상환을 하지 못해 줄도산 위기까지 처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ESS기업은 보험업체들이 아예 보험을 안 받아 주거나 보험료를 높여서 낸다고 해도 보험사가 꺼리는 분위기가 있다”면서 “보험사 입장에서도 20건 이상의 화재가 발생한 업종에서 사업을 영위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LG화학, 삼성SDI와 같은 ESS용 배터리 공급업체들도 올해 국내 ESS분야 매출 하락이 불가피하다. 양사 관계자는 “ESS화재로 인해 국내 ESS용 배터리 매출 하락이 예상된다”면서 “현재로서는 정부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만약 산자부의 조사 결과에서 ESS용 배터리 셀에 문제가 있다고 판명되면 LG화학과 삼성SDI의 ESS사업 자체의 타격도 불가피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국내도 문제지만 세계 ESS시장 배터리 수주에서 치명타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산자부에 따르면 2018년 상반기까지 국내 ESS시장 규모는 2017년 상반기 89MWh 대비 20배 이상 증가한 1800MWh가 보급됐다. 이는 2018년 이전 6년간의 총 ESS보급량인 1100MWh를 넘는 수준이다. 용도별로 보면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연계용이 683MWh가 구축된 것으로 나타났다. 피크저감용 ESS도 1129MWh가 2018년 상반기에 구축된 것으로 파악돼 2017년 동기 대비 226배 증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