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래동화에, 효자로 소문난 지게꾼과 노모의 이야기가 있다. 노모가 손수 대야에 물을 떠서 노총각인 지게꾼 아들의 발을 씻겨주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이 어찌 저런 아들이 소문난 효자라 할 수 있냐고 수군거렸다. 하지만 사실은 효심이 깊은 아들은 어머니가 그렇게 하는 걸 너무나 행복해 하셔서 그렇게 하도록 했다는 이야기다.

필자도 결국 환자를 행복하게 만들어줘야 하는 입장이므로, 환자가 원하는 대로 이른바 ‘맞춤성형’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환자의 취향을 존중하고 환자가 원하는 모양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자의 사명인 셈이다. 특히 입을 넣는 정도와 턱 끝의 모양은 환자에게 수술 전 반드시 물어보고, 최대한 환자가 원하는 것에 맞추고 있다.

한편, ‘**성형외과 표 코’로 불리는 코 모양이 있다. 의사의 취향대로 비슷한 결과가 나온 셈이다. 사실, 돌출입수술을 20년 가까이 해온 필자의 경우에도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입매와 턱 끝이 있다. 트렌드도 반영해야 한다. 여자 환자라면 보다 자연스러운 입매와 좀 귀여운 느낌의 아담한 턱 끝을 선호하는 편이며, 남자의 경우에는 약간 더 강한 턱 끝을 선호한다.

그런데 만약 환자가 과도하게 쏙 들어간 입을 원하거나, 반대로 입을 덜 넣어달라고 고집을 부린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일까? 한두 번 만류하지만, 결국은 환자의 취향을 어느 정도 반영하게 된다.

“네, 원하는 대로 해드리겠습니다.”

필자는 이 말을 하는 순간, ‘내가 과연 환자에 대한 의사로서의 애정을 포기하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아무리 어머니가 원해서 발을 씻기도록 하지만, 자신은 쪽마루에 편히 앉은 채, 쭈그려 앉아 제 발을 씻기는 노모를 보면 마음이 편치만은 않을 것이다.

필자가 그렇다. 필자가 생각하는 아름다운 결과는 A나 B 정도인데, 아예 D로 만들어달라는 환자를 보면 답답하다. 또한, 수술 결과는 하나하나가 필자의 ‘작품’인 셈인데, 필자 눈에 상대적으로 덜 아름다워 보이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마음이 불편하다. 하지만 오랜 경험에서 내린 결론은 역시, 최대한 개인의 선택과 취향을 반영해주는 것이다.

다음 세 가지의 에피소드를 추려본다.

1. 돌출입수술만 빼고 해주세요.

여자 환자는 의대생이었다. 돌출입과 광대뼈, 사각턱, 그리고 눈밑지방(소위 다크써클)이 꽤 심한 이른바 노안이었다. 환자와 보호자는 광대뼈와 사각턱 수술만을 원했다. 필자로서는 답답했다. 만약 환자가 돌출입과 광대뼈, 사각턱 이 세 가지 수술의 대상이 맞다면, 돌출입수술이 그중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를 낸다. 그러나 결국 필자가 졌다. 사실 지지 않을 도리도 없다. 성형수술이란 환자의 선택이고, 의사는 환자가 선택한 수술에서 안전하고 아름다운 최선의 결과를 내면 그만이라고 할 수도 있다.

보호자로 온 환자의 아버지는 치과의사였다. 어쩌면 치과의사이기 때문에, 수술 범위에 치아가 포함된 돌출입수술을 성형외과 의사에게 맡기는 것이 탐탁치 않았을 수도 있다. 바꾸어 말하면, 환자의 아버지가 치과의사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더 많이 예뻐질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것도 운명이다.

광대뼈, 사각턱수술만 하고 정확히 6개월이 지나 환자가 찾아왔다. 수술 결과는 만족한다며 이번에는 광대뼈수술 시 사용한 금속 핀을 제거하고 싶다는 것이다. 핀과 나사를 제거하는 수술을 필자는 별로 권하지는 않는다. 그냥 두어도 건강에 지장이 없고 수술 부위를 다시 열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환자가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2. 돌출입수술만 하고, 광대뼈는 놔둘래요

필자에게 진료를 받으러 온 환자를 통해 다음과 같은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병원에 갔더니 필자의 실명을 직접 거론하며, 필자가 돌출입수술 외에 불필요한 턱끝수술, 광대뼈, 사각턱수술을 권한다면서, 과잉진료에 양심부족이라고 힐난했다는 것이다. 이런 비난은 서로 원조를 자처하는 족발집끼리도 하지 않는다.

필자는 불필요한 수술을 권하지 않는다.

돌출입수술에서 동시턱끝수술은 화룡점정(畵龍點睛)과 같은 것이다. 애초부터 앞턱 끝이 이상적인 위치에 딱 맞는 돌출입이란 존재하기 어렵다. 때문에 돌출입수술을 할 때 턱끝절골수술이 거의 반드시 동시에 필요하게 된다. 그래서 턱끝수술은 당연히 추가 부담없이 돌출입수술에 포함시켜오고 있다. 필자가 돌출입 환자를 위해서 하는 동시턱끝수술이 과잉진료일 수가 없는 이유다. 동시턱끝수술은 불필요한 수술이 전혀 아닐 뿐더러, 턱끝수술을 추가해서 경제적 이득도 없다.

예를 들어 툭 튀어나온 광대뼈는 특히 돌출입이 해결되고 나면 더 도드라진다. 얼굴의 아래 1/3의 부피가 줄어들기 때문에 중간 1/3의 부피가 상대적으로 더 커보이는 원리다. 정확한 예측과 판단은 해주어야 맞다. 미리 알려주지 않으면 입은 예뻐졌는데 광대뼈가 더 나와 보인다고 원망을 들을 수도 있다. 하지만 동시 광대뼈수술을 강권할 이유는 없다. 돌출입수술만 하고 나서 그제서야 필자의 예측대로 광대뼈가 더 도드라져 보인다고 환자가 느끼고 스스로 원할 때 수술해도 늦지 않고, 오히려 만족감이 더 클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후일 한 번 더 수술대에 눕게 되는 점은 안타깝다.

돌출입을 가진 22세의 남자환자에게 광대뼈도 꽤 있다고 알려주자, 자신의 광대뼈가 마음에 든다고 했다. 광대뼈는 놔두고 돌출입수술만 하겠다고 하길래, 원하는 대로 해주었다. 1년 뒤에 그가 결국 광대뼈수술을 하겠다고, 원장님 말이 맞았다고 필자를 찾아온 것은 비밀이 아니다.

3. 입을 덜 넣어주세요.

공무원인 그녀의 돌출입은 최상급이었다. 치아를 뺀 공간만큼 모두 집어넣어도 부족할 판국에, 환자의 요청은 ‘입을 덜 넣어달라’는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것처럼 난처한 요청도 없다. 정답은 거의 정해져 있는데, 오답 중 하나를 고르라는 것과 비슷하다. 과연 ‘얼마나 덜’ 넣으면 만족할 것인가?

몇 번 만류를 했건만, 환자는 끝까지 그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결론은 같고, 필자가 졌다. ‘네 원하는 대로 해드리겠습니다.’ 수술 후 몇 달이 지나, 필자는 ‘덜 넣으니까 좋으세요?’ 하고 다소 시니컬하게 물었지만, 진심 행복해 하는 환자의 얼굴을 보고 머쓱해졌다. 역시 노모가 발을 씻기도록 해드려야 하는 것인가?

물론, 환자가 아무리 우겨도 원하는 대로 해줄 수 없는 것들이 있다.

수술할 정도의 돌출입이 아닌데 굳이 돌출입수술을 해달라고 한다거나, 마녀처럼 뾰족한 턱 끝을 만들어달라고 한다거나, 사각턱을 수술하는데 소위 개턱을 만들어달라고 한다면, 이것은 원하는 대로 해줄 수가 없다.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금기이기 때문이다. 집 나간 남편을 돌아오게 하려고 돌출입수술을 하겠다든가, 보호관찰 중인데 법망을 빠져나가기 위해 돌출입수술을 하고 싶다는 환자도 있었다. 원하는 대로 해주지 않았다.

글을 마치며 생각해보니 이런 글은 필자가 스스로를 옭아 맨 것인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필자를 찾아오는 환자가 ‘그 칼럼 잘 읽었습니다. 저는 원하는 게 따로 없고 원장님 판단대로 맡길 테니 예쁘게 부탁드립니다’라고 한다면, 필자의 어깨만 더 무거워지는 셈이다. 이제와 곰곰이 생각해보니, 환자가 원하는 그대로 해주는 게 더 쉬운 것 같기도 하다.

거창하긴 하지만, 앙드레지드의 소설 <좁은 문>의 제명은 신약성서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에 이르는 문은 크고 또 그 길이 넓어서…’에서 따왔다고 한다. 완벽에 가깝지 않은 모든 것은 더 쉽고 흔하다. 환자를 위해서라면 ‘이만하면 됐지’ 하는 쉬운 길보다 ‘끝까지 다듬자’라는 좁고 험한 길을 택하는 집념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