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쿠팡 제이 조르겐센 법무 및 컴플라이언스 최고책임자(CCO). 출처= 쿠팡

[이코노믹리뷰=박정훈 기자] 지난 3월 15일 이커머스 기업 쿠팡은 미국의 유통업체 월마트(Walmart)에서 부사장 겸 최고윤리경영책임자(CCO)를 역임한 ‘제이 조르겐센’을 새로운 법무(Compliance) 책임자로 영입했다고 밝혔다. 쿠팡이 IT를 기반으로 성장한 기업인 만큼 외국계 인력의 영입은 그렇게 특별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주력 비즈니스가 내수 지향성이 강한 쿠팡이 외국인 법무 전문가를 영입한 것은 서비스나 기술 전문가를 영입한 것과는 다른 의미로 해석되고 있다. 과연 쿠팡은 무엇을 준비하고 있을까.

제이 조르겐센 법무책임 영입으로 쿠팡이 개선할 수 있는 것은 조직의 윤리경영 체계다. 그는 지난 2012년부터 7년간 월마트(Walmart) 부사장 겸 최고윤리경영책임자(CCO)를 역임하면서 월마트의 경영 윤리와 내부 준법 프로그램을 개선했다. 그가 구축한 월마트의 프로그램은 2016년 뉴욕거래소 거버넌스 서비스(New York Stock Exchange Governance Services)가 뽑은 ‘최고의 거버넌스·리스크·컴플라이언스(법무) 프로그램’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쿠팡 글로벌?

만약 쿠팡이 제이 조르겐센 법무책임에게 그가 월마트에서 맡은 것과 같은 역할을 맡긴다면, 쿠팡의 윤리경영 체계를 월마트와 같은 글로벌 대기업들과 같은 수준으로 구축하는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이는 곧 쿠팡이 (어떤 사업 영역으로든) 글로벌 시장에 진출할 때 적어도 경영 체계로는 법적, 윤리적으로 전혀 문제가 없도록 준비한다고도 볼 수 있다.

쿠팡의 주력 비즈니스는 분명 국내 시장으로 한정됐지만 기업의 구조를 보면 글로벌 자본과 연결돼있다. 쿠팡의 지분 100%는 미국에 본사를 둔 모기업 쿠팡LLC(Coupang LLC)가 보유하고 있다. 쿠팡LLC는 한국의 쿠팡에 대한 해외 투자 자본을 직접 받는 주체이자 필요한 경우에는 자금의 긴급 수혈도 할 수 있는 주체다. 다시 말해 글로벌 기업인 모기업 쿠팡LLC의 존재는 준비가 되는 시기가 올 때 쿠팡이 언제든 글로벌로 나갈 수 있는 조건이기도 하다. 이를 준비하고자 한다는 전제가 있다면 제이 조르겐센 법무책임의 영입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현재 쿠팡의 주력 비즈니스는 크게 국내 시장을 기반으로 한 이커머스와 물류 두 가지다. 두 비즈니스는 쿠팡이 약 10년에 가까운 시간 그리고 최대 수조원에 이르는 막대한 돈을 투입해 이룬 성과들이다. 일련의 노력들은 작은 스타트업이었던 쿠팡이 국내 이커머스 분야에서 독보적 입지를 점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이었다. 그러나 철저하게 국내 시장 한정인 현재의 주력 비즈니스로 쿠팡이 해외 시장에 도전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 

▲ 국내 이커머스 해외 진출의 성공사례 중 하나. 터키 11번가 'n11' 출처= n11

이미 전 세계 이커머스 그리고 그와 연결된 물류는 아마존·알리바바·징둥닷컴 등 글로벌 거대 기업들이 자사의 막대한 자본을 기반으로 세계 곳곳에 진출해 있다. 쿠팡이 국내 사업 운영으로만 투입하는 자본의 투자로 큰 적자를 감당하고 있음을 감안하면 아마존이나 알라바바와 동등한 입장으로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것은 현재로써는 불가능하다.

글로벌 대기업들의 경쟁을 조금은 피할 수 있는 국가로의 이커머스 진출이라면 그나마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2013년 터키, 2014년 인도네시아, 2015년 말레이시아 2017년 태국에 연달아 진출한 11번가가 터키 법인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에서 심각한 적자를 견디지 못하고 끝내 인도네시아와 태국 법인의 지분을 전량 매각한 선례를 보면 이마저도 사실 쉽지는 않다.

일련의 상황 때문인지 한때 일설에는 쿠팡 김범석 대표이사는 현재 해외사업에 대해서는 크게 관심이 없는 것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쿠팡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기술 혹은 플랫폼이 없다면 현재 주력사업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다만, 경영은 수많은 희박한 가능성들을 현실로 구현시키는 행위이고 2010년 창업 당시의 쿠팡이 지금처럼 성장할 것을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듯 앞으로 무슨 일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적어도 지금 쿠팡의 행보는 많은 가능성들 중 하나를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충분히 해석이 가능하다.

쿠팡 관계자는 “월마트 전임 부사장까지 역임한 글로벌 인재가 쿠팡 합류를 결정했다는 것은 그만큼 그가 우리의 비전에 공감하고 큰 의미를 둔 것으로 본다”면서 “현재 글로벌 사업에 대해 어떤 것을 이야기할 단계는 아니지만, 모시기 어려운 분과 함께 하게 된 만큼 조르겐센 CCO를 도와 이전과는 분명히 다른 쿠팡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과연 쿠팡은 조르겐센 CCO와 함께 어떤 그림을 그려낼 수 있을까. 월마트급 글로벌 윤리 운영 체계 구축은 쿠팡에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줄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