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최진홍 기자]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수퍼 사이클(호황)이 조금씩 동력을 상실하는 가운데 최근 우려하던 공급과잉 현상이 현실이 되는 분위기다. 메모리 반도체 쏠림 현상이 심각한 삼성전자가 메모리 반도체 점유율을 지키는 선에서 초기술 격차 로드맵을 펼치는 한편, 시스템 반도체 역량을 단박에 키우기 위한 ‘빅딜’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반도체 공급과잉 현상은 더욱 심각해질 전망이다. 시장조사업체 IC인사이츠 등에 따르면 새롭게 가동되는 300mm 웨어퍼팹만 모두 9곳이며 이는 2007년 12곳에 이어 두 번째로 최대 규모다. 2000년대 후반 300mm 웨이퍼가 대세로 부상한 후 순식간에 생산량이 커져 공급과잉에 이른 셈이다.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선도하는 한국 입장에서는 불길한 시나리오다. 시장조사업체 디램익스체인지는 2018년 기준 글로벌 D램 시장에서 삼성전자가 약 49조1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해 점유율 43.9%로 1위, SK하이닉스가 약 33조1000억원을 기록해 점유율 29.5%로 2위라고 발표했다. 두 회사의 점유율 합계는 2017년 74.2%보다 다소 줄어든 73.4%를 기록했으나, 여전히 D램 시장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삼성전자의 위기에 시선이 집중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매출 243조 7700억원, 영업이익 58조 8900억원, 당기순이익 44조 3400억원을 달성해 2년 연속 최대 실적을 달성했으나 4분기 매출 59조2700억원, 영업이익 10조8000억원에 그쳤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10.18% 올랐으나 영업이익은 무려 28.7%나 떨어졌다. 지금까지 삼성전자의 성장을 견인한 반도체가 위험하다. 지난해 4분기 반도체 매출은 18조7500억원, 영업이익은 7조7700억원을 기록했으며 전 분기 대비 각각 43%, 24% 폭락했다.

메모리 반도체 쏠림이 큰 상태에서 시장에서는 흔들림없는 존재감을 자랑하고 있으나, 업황 악화에 이어 공급과잉 쇼크까지 겹치면 당장의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IHS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해 4분기 이미 인텔에게 전체 반도체 시장의 왕좌 자리를 내어준 상태다. 실제로 인텔은 지난해 4분기 187억달러(약 20조9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삼성전자를 눌렀다.

낸드플래시와 D램 가격하락세가 다소 둔화됐으나 여전히 하락 일변도인 상태에서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어려움이 여전하다는 평가다.

삼성전자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먼저 파운드리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대만의 TSMC에 이어 글로벌 파운드리 업계 2위를 꿰차며 입지를 다졌다. 분사한 파운드리 사업부를 중심으로 하는 초기술 격차가 시장에 안착했다는 뜻이다. 여기에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모바일 AP 엑시노스를 키웠던 노하우를 활용, 그 외 지역으로 빠르게 손을 뻗어야 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쉬운 일은 아니다. 당장 ‘파운드리에서 점유율 50% 이상을 가진 TSMC의 아성을 어떻게 넘을 수 있을까’가 관건이다. TSMC는 3월말 7나노 EUV 노광장비를 사용한 칩 양산에 돌입했으며 이와 관련된 로드맵을 탄탄하게 구축한 것으로 평가된다. 올해 반도체 장비업체 ASML이 생산하는 EUV 노광장비 30대 중 무려 18대를 확보했다는 말이 나오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EUV 활용이 기대이하라는 지적도 있다. 시스템 반도체 전체에서는 인텔은 물론, 기타 군소 플랫폼과의 치열한 전투도 예정되어 있다.

여기에 빅딜, 즉 인수합병을 통해 시스템 반도체 인프라를 확실하게 채우는 방법이 거론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 2월 26일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왕세제를 만났다. UAE가 글로벌파운드리(GF)의 최대주주인 관계로, 삼성전자가 GF를 인수할 수 있다는 말이 나왔으나 이는 삼성전자의 공식 부인으로 없던 일이 됐다. GF를 인수해도 실익이 없다는 내부판단이 선 것으로 보인다.

▲ 이재용 부회장과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왕세제가 만나고 있다. 출처=삼성전자

다만 100조원에 달하는 기업 유보금을 가진 삼성전자 입장에서 여전히 또 다른 빅딜 가능성은 열려있다. 일각에서 퀄컴이 노렸던 네덜란드 반도체 기업 NXP와의 인수합병설을 거론하는 이유다. 역시 삼성전자가 인수합병설에 대해 공식 부인했으나, 이 부회장이 최근의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어떤 방식으로든 빅딜 카드를 꺼낼 가능성은 유효하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메모리 반도체 업황이 하반기 다시 반등할 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초기술 격차로 점유율 방어전에 나서는 한편 시스템 반도체 경쟁력을 단박에 키울 수 있는 인수합병 전략의 가능성에 업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