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틸> 토마스 라폴트 지음, 강민경 옮김, 앵글 북스 펴냄.

‘그가 청바지 호주머니에서 애플 아이폰을 꺼내며 이렇게 잘라 말했다. “나는 ‘이것’이 혁신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폴로 우주선의 계획과 비교한다면 말입니다. 물론 아이폰에 사용된 ‘기술’은 아폴로 계획에 필적할 만해요. 그런데, 그 기술이 지금 어디에 쓰이고 있나요? 화가 난 새(앵그리 버드)를 돼지에게 쏘아 보내는 모바일 게임이나 자기가 기르는 고양이 동영상을 자랑하는 데 사용되고 있을 뿐이죠.’

이 책의 주인공 피터 틸(52)의 말이다. 그는 기술기업 창업과 투자 측면에서 경이적 실적을 낸 실리콘밸리의 ‘살아 있는 전설’이다. 페이팔, 페이스북, 팰런티어 등 유수의 창의적 기업들을 창업하거나 투자하면서 성공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그가 실리콘밸리에서 위대한 ‘기술의 선구자’로 추앙받는 것은 깊이 있는 투자 철학 때문이다. 현대 세계를 심각한 정체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는 것은 ‘기술’이며, 기술은 인간에 봉사하고 세상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닷컴 버블 붕괴 직후 벤처캐피털들이 페이스북을 외면했을 때 틸은 페이스북의 첫 외부투자자가 되었다. SNS의 가치를 꿰뚫어 본 것이다. 지금도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는 “틸은 페이스북을 탄생시킨, 내 인생 최고의 조언자”라고 말한다.

앞서 틸은 1998년 페이팔을 창업했다. 페이팔의 비전은 정부가 주도하는 ‘통화의 속박’으로부터 세계를 해방시키고, 국가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새로운 인터넷 화폐를 만드는 것이다. 이는 권력의 속박에서 벗어나려 하는 틸의 자유지상주의적인 세계관 그 자체였다. 핀테크라는 개념은 세계 최초의 글로벌 금융계 인터넷 기업이 탄생한 지 15년쯤 지난 다음에야 비로소 정착됐다.

전 세계가 9.11 테러로 인한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던 2004년에는 팰런티어를 설립했다. 그는 기술의 힘으로 테러를 방지하고 시민의 자유도 보호할 수 있다고 믿었다. 훗날 팰런티어의 범죄탐지 기술은 오사마 빈라덴 추적과 초대형 금융사기범 버나드 메이도프 체포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17년 기준 페이팔의 기업가치는 520억달러, 페이스북은 4320억달러, 팰런티어는 200억달러에 이르렀다. 3곳의 기업가치는 대략 5000억달러에 달한다.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이 50여년째 운영하는 버크셔 해서웨이의 기업가치(4100억달러)를 넘어선다. 틸은 2017년 기준 8년간의 페이스북 투자를 통해 3400배의 투자이익률을 기록했다. 팰런티어를 통해서도 14년간 36~60배 정도의 수익을 올렸다.

틸의 다른 투자사례들을 보면, 대부분 역발상적 행보가 돋보인다. 그는 트렌드를 거스르는 위험한 베팅을 서슴지 않았다. 숨겨진 뛰어난 혁신을 간파하여 적절한 타이밍이 왔을 때 승부수를 던졌다. 다른 투자자들이 일본 국채를 팔아치울 때 사들였고, 석유 공급이 어려워지면 치솟는 유가에 베팅했다. 결과는 막대한 이익으로 돌아왔다. 틸이 헤지펀드 ‘클래리엄 캐피털’을 설립하면서 투자한 원금 1000만달러는 6년 만에 70억달러로 불어났다. 700배였다.

“숨겨진 문, 한쪽 구석에 있어서 아무도 들어가려 하지 않는 문으로 들어가라(Don’t always go through the tiny little door that everyone is trying to rush through, go around the corner and go through the vast gate that no one’s taking.)” 실리콘밸리에서 명언으로 꼽히는 틸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