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믹리뷰=김승현 기자]자산유동화증권(ABS) 발행시장은 자산유동화법상 공시의무와 각종 규제에 대한 부담으로 상법상 유동화회사(SPC)를 통한 유동화를 중심으로 성장했다. 상법상 SPC를 통한 유동화는 공시의무가 없어, 발행절차가 간편하고 적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금융감독원의 ABS 발행시장 통계와 신용평가사들의 통계 총액은 100조원이 넘는 차이로 나타났다. 금감원은 ABS 발행시장 통계에 상법상 유동화를 통한 ABS를 포함하지 않기 때문이다.

위 같은 이유로 ABS 발행자들은 상법상 SPC를 통한 유동화를 선호한다. 그러나 상법상 SPC는 공시의무가 없는 만큼 공개되지 않은 정보가 많아 비리 수단 등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있어 문제가 제기된다.

권리와 위험을 분산

ABS는 부동산, 매출채권, 유가증권 등 바로 현금화하기 어려운 자산을 기초로 발행된 파생상품이다. 유동성이 낮은 자산을 현재 가치만큼 쪼개서 채권을 만들 수 있다. 소유하고 있는 자산을 쉽고 빠르게 유동화하기 위한 수단이 된다.

ABS는 어떤 자산을 담보대상으로 하느냐에 따라 종류가 다양하다. 회사채를 기초자산으로 한 CBO(회사채담보부증권), 금융기관의 대출채권을 기초로 한 CLO(대출채권담보부증권), 신용카드 매출채권 CARD(신용카드매출채권유동화증권), 기업어음 ABCP(자산유동화기업어음), 주택저당채권 MBS가 있다.

ABS를 발행하는 이유는 회사의 신용도와 관계없이 높은 유동성을 획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면 기업의 신용도가 근거가 된다. 그러나 ABS는 기업의 실물자산을 근거로 발행한다. 예컨대 은행이 대출채권을 유동화하면 차입자의 채무불이행 위험을 ABS 투자자와 분담할 수 있다. 투자자 역시 실물자산을 담보로 현금을 제공하기 때문에 비교적 안정적인 투자를 할 수 있다.

다만 ABS는 신용도와 관계가 없는 만큼 발급 구조가 복잡하다. 기업이 자산을 서류상으로 유동화전문회사에 매각하면, 주관사와 투자자 사이에서 거래가 발생한다. 거래 중에 수탁 기관이나 신용평가기관, 신용보강기관이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

개인이 직접 매매를 하거나, 증권을 발행할 수 없어 유동화를 목적으로 설립하는 페이퍼 컴퍼니인 특수목적회사(SPC)를 통해 발행한다. SPC는 기업으로부터 해당 자산을 서류상으로 사들인 뒤에, 그 자산을 담보로 ABS를 발행한다. 따라서 ABS 상환이 끝나면 이 회사도 해산한다.

금감원과 신평사의 ABS 발행규모의 차이를 빚은 ‘상법상 유동화회사’ 역시 채권·토지 등의 자산을 현금화해 자금조달을 원활하게 하고자 설립한 특수목적 회사(SPC)다. 상법상 유동화회사는 ▲발행절차 간소화 ▲비용 절감 ▲유동화 회사 재활용 등 다양한 측면에서 유동화전문회사보다 경쟁우위를 가지고 있다.

반면, 유동화 전문회사가 자산유동화법의 주요 특례를 적용받기 위해서는 유동화자산의 범위, 유동화증권의 종류, 관리방법 등을 금융위원회에 등록해야 하는 등 수개월이 소요된다. 또 등록 가능한 자산유동화 계획이 1개뿐으로 복수의 유동화 계획 추진 시 재등록의 번거로움, 공시의무 부담, 미준수 시 벌칙 부과 등으로 발행자들이 상법상 유동화회사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SPC를 활용한 유동화는 부실채권 매각, 해외 자원 개방 등 특수한 목적에만 투자하기 때문에 SPC를 설립한 모기업의 재무상태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 즉 SPC의 부채도 모기업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위험을 분산하고, 빠르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는 것이 SPC의 큰 장점이다.

확연한 차이, 위험 품은 ‘SPC’

부실기업이 상법상 SPC를 통해 자금을 조달하거나, 무리한 투자를 유치하는 등 악용되는 사례가 있어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전체 ABS 발행 시장의 90%가 상법상 SPC를 통한 유동화로 공개되지 않은 정보가 많기 때문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대출 부실사태에서 알 수 있듯이 ABS시장에는 부실 가능성이 낮은 채권뿐만 아니라 부실 가능성이 높은 채권도 유동화되고 있다.

지난 2016년 미래에셋대우는 2500억원 규모의 베트남 랜드마크72빌딩 ABS를 15개의 SPC로 나눠 771명에게 사모로 팔아 증권신고서 제출의무 위반으로 과징금 20억원과 기관주의 조치를 받았다.

현행법에서는 50인 이상의 투자를 받으면 공모로 분류돼 금감원에 증권신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그러나 미래에셋대우는 15개의 SPC가 참여한 사모 방식이었다며 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이에 금융당국은 실제 500명 이상의 투자자를 유치했으므로 공모라고 판단했다. 즉 미래에셋대우가 15개의 SPC로 나눠 공시의무를 우회했다는 판결이다.

과거 피해자가 대거 속출한 저축은행 영업정지 사태도 SPC 악용사례로 볼 수 있다. 저축은행 사태 당시 부산저축은행은 120개의 SPC에 예금자들의 돈 4조원을 투자했다. 결국 엄청난 손실만 남았는데, 대주주들의 비자금을 만들기 위한 수단이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SPC를 활용해 사익을 챙기는 등 각종 비리에 활용돼 투자자들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

정희채 국제금융센터 연구원은 “상법상 유동화회사는 ABS 발행자 입장에서는 비용절감 및 기간단축 등 이점이 있으나 투자자보호 차원에서는 유동화전문회사에 비해 열위하다”면서 “공시를 통한 정보 비대칭 완화, 투자자보호 및 투명성 제고를 위해서는 실효성 있는 특례와 발행절차 간소화를 통해 자산유동화법에 따른 ABS 발행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시장 자율성 보장 vs 거래 투명성 저하

SPC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는 가운데 ABS 발행시장의 성장이 전망된다. 비교적 넓은 범위의 통계치를 수집한 한기평은 ABS 발행시장은 성장 중이며, 상법상 SPC를 통한 유동화가 주류로 자리 잡았다고 진단했다.

한기평은 2019년 ABS 발행시장을 2018년과 같이 정기예금과 부동산 PF 유동화가 주도하는 흐름으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아울러 국내은행들의 규제비율 충족을 위한 예수금 조달 확대 유인이 큰 상황으로 정기예금 유동화 발행시장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금감원은 ABS 발행시장 규모가 감소세라고 밝혔다.

금감원과 신평사의 통계 차이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거래 투명성이 저하되고 투자자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통계방법의 차이일 뿐이며 문제 될 것이 없다는 의견도 있다.

일각에서는 투자기관 또는 개인뿐만 아니라 유통을 담당하는 주관사 등 시장참가자 모두를 위한 정보가 부족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한기평은 보고서를 통해 “상법상 유동화회사를 통한 유동화는 유동화법에 따른 각종 신고와 공시의무가 없어 사후관리 측면의 투명성이 확보되기 어렵다”면서 “각종 유동화 관련 통계에서도 빠짐으로써 실질적인 유동화시장의 현황을 파악하는 데도 어려움이 따른다”고 주장했다.

서지용 상명대학교 교수도 “투명한 정보공개가 이뤄지지 않아 채권의 만기구조가 명확하지 않아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가 많다”면서 “담당기관에서 ABS 내 수익률과 만기구조 등 정확한 정보를 공개할 수 있는 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신평사 통계도 안정성 부족

ABS 발행시장 전체의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통계자료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한 시장 관계자는 “투자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개별 투자처에 대한 정보만큼 금융시장 전반의 통계정보가 필요하다”면서 “시장의 쏠림현상과 같은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악하지 않고, 개별 상품만을 확인하고 투자하는 것은 리스크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금감원과 신평사의 통계 차이뿐만 아니라 신평사끼리의 차이도 지적하는 대목이다. 비슷한 수치이기는 하지만 신평사도 각 사와 신용등급 공시 거래가 일어난 경우만 통계 산정한 것으로 시장 전반에 대한 안정성은 결여될 수 있다는 판단이다. 즉 금감원의 통계는 상대적으로 비교대상과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안정성이 더욱 부족하다고 풀이된다.

2018년 중국구저에너지화공집단(CERCG)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 디폴트 사태를 사례로 볼 수 있다. CERCG가 보증한 자회사 채무의 만기 내 원금상환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CERCG가 지급보증한 달러화 자산을 기초자산으로 유동화회사가 발행한 ABCP도 채무불이행 위험이 높아졌다.

이에 손실위험에 노출된 증권사와 운용사는 해당 채권을 평가한 나이스신용평가와 유통을 담당한 한화·이베스투투자증권으로 책임을 요구했다. 주관사와 함께 나신평이 책임론에 휩싸인 이유는 CERCG의 상환 능력을 평가에 대한 적정성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CERCG의 잉여현금흐름(FCF)이 마이너스(-)였던 점을 간과한 것은 아니냐는 지적이다.

누구의 책임으로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이처럼 신용평가사의 상환능력 평가만을 참고하는 것은 안정성이 결여되는 측면이 있다. 만일 상법상 SPC를 통한 ABS에 투자를 원하는 투자자는 신용평가사에서 신용등급 등을 확인한다고 해도 그 위험은 고스란히 투자자가 떠안아야 한다.

한기평은 보고서를 통해 “신용평가기관의 위험통제는 전적으로 신용위험의 관점에서 이뤄진다”면서 “신용위험 이외의 잠재적인 위험의 통제와 유동화 시장의 투명성 확보를 위해서는 시장 참가자 모두의 노력과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규제가 아닌 지원책, 시장 자율성도 지켜줘야

발행자 입장에서는 상법상 SPC를 통한 유동화 역시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제도에 충실한 가운데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발행자는 상법상 SPC를 통한 유동화로 위험을 분산, 자산 포트폴리오 다각화, 비용 절감 등의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다만, 시장 투명성이 저하되는 문제는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금감원은 자산유동화에 관한 법률을 통해 발행되는 ABS는 규제가 아닌 지원을 위한 제도이며, 상법상 SPC를 통한 유동화는 시장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라고 설명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자산유동화에 관한 법률은 외환위기 당시 금융회사들의 부실채권 매각을 위해 도입된 지원제도이기 때문에 금감원에 등록해야 하는 의무가 따른다”면서 “상법상 SPC를 통한 유동화는 시장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기 위해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금감원은 통계자료 수집에 한계가 있다면서도, 비등록유동화증권 발행에 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금감원관계자는 “금감원에 등록되지 않은 ABS를 집계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다만 금감원은 지난 1월 ‘비은행권 거시건전성 관리강화방안’을 발표하고 비등록유동화증권 발행에는 유의할 필요가 있다며 대응방안을 제시했다. 공시 체계가 미흡할 경우 유동화증권 발행자는 부실한 기초자산을 이용해 유동화하려는 유인에 직면할 수 있으며, 부실 자산을 토대로 자산유동화가 과도하게 일어날 경우 시장충격 시 상당 규모의 부실이 증권 투자자에게 전이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금감원은 대응책으로 ▲비등록 유동화증권 발행 시 예탁결제원 증권정보포털(SEIBro) 정보입력 의무화 ▲등록·비등록 유동화증권 모두 유동화 관련 공시범위 확대 ▲위험보유(Risk Retention) 규제 도입(유동화증권 발행자에 대해 신용위험의 일정 비율을 보유) 등을 제시했다.

정희채 국제금융센터 연구원도 “그간 민간 위주로 관련법 개정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돼 왔으나, 개정은 미미한 수준에 그치며 자산유동화법에 따른 ABS 발행비중은 지속 하락했다”면서 “공시에 따른 정보 비대칭 완화, 거래 투명성 제고 및 투자자 보호를 위해서는 자산유동화법에 따른 ABS 발행으로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편, 금감원 관계자는 “자산을 묶어둔 채 발행해야 하는 ABS보다 신용등급을 기반으로 발행하는 일반 회사채가 회사의 자금조달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면서 “최근 일반회사채 발행은 증가하고, ABS 발행은 감소하는 이상적인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고 덧붙였다.